히 10:19-25

1.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의 영원한 효력 을 믿는 신자는 외형적 생활보다 먼저 양심에 변화가 일어난다. 양심은 진정한 마음의 다른 표현이다. 거듭날 때 생긴 양심의 악을 깨닫고 그 리스도의 공로를 진실로 믿어 변화를 경험한 신자는 그 때부터 새 생활이 시작된다. 그 후 이 새로운 양심은 항상 새로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피 뿌 림이 필요하다. 구약에서 암송아지 잿물을 뿌려 부정한 모든 것을 정결하 게 한 것처럼, 그리고 속죄일에 짐승의 피를 뿌려 죄를 사하는 것처럼 신자의 양심은 계속 그 공로가 적용되어져야 한다. 이것은 이미 완성된 과거의 공로가 현실적으로 체험되어지는 것이지, 다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이 즉시 용서하시고 죄가 끊어지는 체험이 일어난다고 말한다.(요일1:9) 이 자백을 회개라고 말하 는데 그 속에는 죄에 대한 시인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죽음을 내 것으로 적용하는 믿음이 반드시 포함된다. 성령이 우리의 믿음의 자백 속에 적용하 시는 일을 하기에 우리는 선한 양심을 따라 “감사합니다” “친양합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목욕한 나는 발 씻는 일을 힘쓴다.

2. “짐짓 죄(25)”- 이것은 의도적 반복적 그리고 고의적인 죄를 가리 킨다. 주님은 성령 훼방죄라 했고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했다. 이 죄를 범한 자의 결과는 심각한 형벌과 저주이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이 죄를 범할 수가 없다. 이 말은 약해서 범하고 실수해서 범하는 것이지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지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일 그런 죄에 들어간다면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이 죄는 유대주의 이단적 교훈을 따 른 자를 겨냥한 것이다. 그리스도만을 믿고 그의 공로만을 의지하는 순수성을 상실한 자 곧, 교묘한 이단 교훈을 따른 자는 무서운 심판을 받는다 는 것이다. 오직 예수의 신앙에 머무는 것이 나의 의무이며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