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세상 속에 세워진 교회

구약 전도서의 계시를 묵상하노라면 허무의 토양 위에 세워진 복음과 교회를 볼 수 있다. 혹자는 전도서에 교회란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할지 모르나 “이 성경이 곧 나를 증거하는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충실하다면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 전도서의 진한 흐름 속에서도 참 교회의 실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전도서는 주님의 교회를 증거하는가?

첫째, 인간 실상이 허무라는 것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전도자인 솔로몬은 탁월한 지혜로 세상의 “모든 것을 연구했다(1:13)고 할 정도로 깊은 사색 에 잠겨있는 사람으로서 세상사는 고통이고 허무고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 아래는 유익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관찰한 그의 결론이다. 그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맛본 자이기에 우리에게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 그를 통해 성령이 죄아래 있는 세상의 실상을 보인 것이다. 죄로 인해 찾아 온 사망이란 그 증상만이 아니라 실상이 점점 더 드러날 것이다. 지금은 사망의 그림자를 보지만 장차 사망의 실상이 얼마나 극심한 지를 알게 될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락주의, 물질주의, 명예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 등등의 이즘(ism)은 하 나님을 떠난 인생의 비참한 실상의 모습일 뿐이다. 솔로몬은 미친것과 미련한 것을 다 연구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 결론도 허무였다. 참된 유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해 아래의 모든 수고이다. 그러고 보면 구원받은 성도로 교회를 이루시는 하나님은 지금 이 허무의 토양 위에 씨를 심으신 것이다.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음으로 시작하는 구원은 자기가 철저한 죄인임을 아는 영적 허무를 통해 완성으로 나간다. 그래서 성령의 빛 아래서 인생허무의 실상을 아는 일은 참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전제이다.

둘째, 이 허무의 토양 위에 복음의 씨가 심기워 아름다운 천국을 이루는 곳이 교회이다. 전도자는 일의 결국을 논하면서 결론적으로 여호와 경외와 그의 말씀에 순종함이 인생 본분이라고 한다. (전12:12-14)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자의 모임이 분명하다면 그 믿음은 무엇인가? 전도자가 말한 대로 여호와를 경외함과 그의 말씀의 순종이다. 경외신앙이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골자라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두려워하는 경외심과 그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열매로 나타나야한다는 말이다. 솔로몬은 구약시대 인물이지만 바로 그 세계를 본 것 같다. 해 위에 있는 천상교회의 실상이 허무의 세상에서 메시야를 통해 완성될 그 날을 쳐다 본 것이다. 허무의 토양 속에 심긴 주의 말씀은 반드시 천국 열매를 맺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도서 속에 보인 교회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 시대 교회가 이룰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