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동생 셋이 모두 살고 있다. 첫 여동생은 전도사로 가정을 꾸려가며 영어 학원보조교사로 애를 쓰고 둘째는 경기도 가평에서 목회하는 사모로 섬기고 막내 남동생은 정신적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는 형편이다.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여 연대 철학과를 거쳐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선교사가 되겠다던 그가 이렇게 된 것을 생각하면 그저 답답하기만 하고 종이 상전의 손을 바라보듯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현재 약을 먹고 안정을 찾아 살아간다. 여동생 둘이 번갈아 가며 돌보느라고 여간 수고가 아니다. 나까지 이렇게 되다보니 돕기가 점점 어렵다. 그리고 작년에는 어머님이 먼저 천국가시고 아버님만 홀로 계시다가 설상가상으로 한국 방문 중 마이너 스트로크를 맞아 큰일을 치를 뻔 했는데 한방치료를 통해 하나님이 거의 정상이 되게 해 주셨다. 이런 엎친 덮친 일들이 목회하고 선교한다고 해서 비껴가진 않았다. 우리가 저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리라는 바울의 말씀대로 나에게 도 허락한 고난의 짐이라면 감사함으로 받아야겠다. 분명한 것은 반드시 연단하여 정금처럼 쓰시고 합력해 선을 이루는 목적이 변치 않는 사실 때문에 찬송한다.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이 많아 미안하지만 현재의 생활에 성실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영광 받으신다는 좋은 마음이 지배적이다.
내가 캄보디아 방문하기 2 주 전, 총장님이 다녀가셨다. 그런데 총장님의 의료 사고로 먼저 하나님께로 가셨다. 김의환 총장님은 내가 대학 시절 총신채플에서 강의와 설교를 통해 멀리서만 보던 분으로서 당시 학생들의 주목 대상이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교수로 섬기면서 통역도 잘하고 뛰어난 강의를 한 특이한 분이셨다. 그 분을 캄보디아 신학교의 총장으로 만나게 되니 정말 기대도 되고 좋은 관계로 섬길 것을 생각했었다. 2년 전 제 아내와 같이 갔을 때 그가 손수 뚝둑이 뒤에 타고 시장에 가서 과일을 사다 주신 일을 기억한다. 자상한 마음과 뛰어난 지도력은 정말 배울 것이 많은 분이다. 그동안 박윤선 목사님과 합동신학교에 대한 그의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선입견을 가졌으나 가까이 대하자 그 오해가 풀려버렸다. 그 후 같이 일할 기회가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미국에 오자 천국으로 가신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누구든지 가야만 하는 이 절박성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가 보다, 초대 총장이신 장상선 목사님도 나와 같이 갔다 돌아오신 후, 3일 만에 돌아가셔서 놀랐는데 이번에는 김총장님도 그렇게 가셨다. 부족한 이 죄인이 먼저가야 될 터인데도 하나님이 남겨두신 이유는 그들이 하지 못한 남은 사역을 감당하라는 섭리로 받고 성실하려 한다.
이 신학교가 제대로 된 일은 복음장로교회의 김상덕 목사님과 그의 교회 그리고 현지에서 수고하는 김현 목사님의 노고가 컸다. 교회 건축위한 30만불을 신학교 건물 짓고 땅 사는데 바쳐 3층으로 된 좋은 건물이 세워졌다. 그러나 선교지의 개혁신학교는 건물과 시스템보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수의 가르침과 학생들을 잘 받아 개혁신앙으로 무장된 일꾼이 양성되는 일이다. 그 일에 또 다른 각고가 계속되어야 한다. 동남아시아를 향한 브니엘 신학과 신앙 곧, 개혁신학의 비젼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부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