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로 교육 선교를 마친 나는 캄보디아의 소망에 관해 생각하며 그것을 이룰 방법을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1400만 인구에 99%가 소승불교에 사로잡힌 가난하고 문맹인 나라에 유일한 소망은 복음이다. 이 복음을 저들의 가슴에 심는 일은 신자의 공통된 목표이다. 귀국하기 3일전에 프놈팬 시에 있는 한 안경점에서 나를 도와준 직원인 비치라는 여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면서 크리스 챤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니지만 성경을 1번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간단히 복음을 증거했더니 한번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다. 프놈팬 대학에 회계학을 전공한 그녀는 영어를 잘했고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러나 복음마저 상냥하게 거절했다. 그들을 공략하여 복음을 심으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을 느꼈다. 인내가 필요하고 삶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학교에서도 내가 가르쳐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몸이 불편한 것이 그들에게 주목거리이고 마음의 작은 감동을 주는 것을 보았다. 힘이 들어도 수업 30분전에 가서 앉아 있고 성한 사람과 똑같이 하려고 노력하는 나를 보고 동정이 가면서도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절룩거리면서도 마을 전도를 따라가서 그들과 같이 움직이 고 앉아 있으면 그들이 찾아온다. 여기나 저기나 그들이 보는 것은 그대로 사는 삶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이 불편한 것을 최대한 이용하여 그들을 접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문제는 마음이 진실된 사랑의 수고를 가지면서 진실되 이 행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복음의 계절이 온다면 내 몸이 조금 힘이 들어도 좋 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게도 바울처럼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는 체험을 하게 하셨다. 사역 중에 부친이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함께 기도하고 내가 모든 임무를 마치기까지 급히 가지 않고 그대 로 행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는 삶의 본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나라에 16-17세기의 퓨리 탄주의를 적용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생겼다. 개혁주의를 삶으로 표현한 그들의 사상과 생활을 그 나라에 정착할 때 큰 유익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학생 들에게 청교도주의를 자기의 생활과 가정과 사회에 정착시킬 꿈을 꾸도록 에세이 를 하나씩 써 오라고 과제를 낸 일이 있다. 나 역시 그 나라를 복음화 하는 일은 성경 지도자를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킬링필드의 참혹한 역사 속에 절망에 사로잡힌 그들을 소망자(hoper)가 되게 해야 하고 불교문화의 무력함을 복음의 빛 아래서 생각하게 하는 사색자(thinker)가 되게 하는 일과 뱀신 과 불교 우상으로 수 천년을 굳어 버린 저들에게 성경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worshiper)가 되게 하는 일이며 그리고 가난과 질병과 어려움을 만날 때 운명에 맡기고 포기하지 말고 새로운 창조역사를 위하여 도전하는 용사(warrior)가 되게 하는 일이라고 보여 진다. 마치 우리 한국의 1960-70년도의 농촌과 시장과 공장을 생각하게 하는 분위기에서 다행히 교회의 지도자들이 청교도의 생활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한국을 이루었다면 그들에게 이것을 적용할 때 우리의 비죤에 이를 것처럼 보인다. 대형집회도 필요하지만 소수의 사람이라도 청교도의 사상으로 무장한 개혁주의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필요하다. 다행히 ITCS(캄보디아 국제개혁신학교)가 이 일을 하려는 수고는 복된 일이다. 나 역시 이 일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는다. 모든 영광을 주께만 돌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