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후에 일어날 두 사건

주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엄숙한 분위기 중 들려온 말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요16:15, 참조: 요14: 19, 16:17-19)”라는 약속의 의미가 무엇일까? 두 번이나 반복해서 “조금 있으면…”이라 한 것은 시간이 지난 후 일어날 두 사건을 말한 것이 분명하고 그 것도 잠깐 지난 후 되어 진다는 것이다. 제자들도 의문을 가진 이 두 가지 사건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가?

첫째 사건은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요한복음에 보여진 “내 때(요7:8,30 등)”라는 반복된 말이 십자가 죽음을 가리킴이 요한복음 전체를 읽을 때 분명히 드러나는데 첫 번 조금 후 보지 못하는 사건을 가리킴이 분명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주님과의 모든 육적 관계가 잠시 중단되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구속을 이루는 정점으로 역사의 분수령을 가져오며 옛 것을 처리하고 새 것을 만드는 새 창조의 준비였기 때문이다. 나사로를 살리시는 사건 전에 죽음이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다시 보는 사건 전에 죽음의 사건이 일어나야만 한다. 요나가 당한 물고기 뱃속의 어두움처럼 사방이 막혀 전혀 소망 없는 스올(지옥)에서 3일이 지나 살아난 요나가 주어진 사명을 잘 수행한 것처럼, 우리 주님은 죽으시기 위하여 떠나가신 것이다. 그 죽음은 제자들뿐 아니라 교회의 유일한 위로의 근거가 된다. 구원의 길을 열어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만드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모든 기적도 바로 이 죽음을 통한 것이고 아브라함과 모세의 놀라운 사역, 이스라엘이 맛본 모든 기적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직접 간접으로 연결되어 있고 아니, 그리스도 죽음 이전뿐 아니라 이후에도 그 공로로만 구원이 일어났고 일어나는 것이다. 주님 죽으심의 효능은 정말 구체적이고 영원한 것이다. 이 은혜는 분깃점에 서 있는 제자들에게 얼마나 풍성했겠는가?

둘째, 두 번째 조금 있으면… 다시 본다는 말은 부활의 연장선인 성령 강림을 가리킨다. 죽음 이후 즉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대면했지만 본 사건은 그 보다 더 깊은 경험을 말해준다. “거처를 너희와 함께하리라”는 약속을 덧 붙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영원히 함께하리라는 약속이다.(마28:20, 요16:20) 즉, 성령의 내주하심(요14:17,26)을 가리킨다. 성령 받음으로 시작하는 우리 구원이 그래서 놀라운 사건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의 제한된 지역에서 사역하시다가 성령이 오신 후에는 21세기 미국에 살고있는 신자 개인 안에 살아계셔서 작은 감정 하나까지라도 친히 간섭하시는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갈2:20)

두 사건이 성취된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구약과 예수님 시대에 살던 사람들 보다 더 복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