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모 글을 읽다가 오직 예수의 신앙이 점점 모호하게 되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 있었다. 여러 신뢰 대상 중 하나로 전락된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절대 예수신앙은 모든 삶의 가치와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에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예수만을 믿는 신앙을 양보하자는 생각은 이 시대의 마귀의 유혹이다. 어떤 영향인가?
첫째, 종교 다원주의가 미친 결과이다. 종교다원주의란 석가 , 공자, 소크라테스, 모하멧 역시 그 시대의 정황에 맞는 구세주이라는 사상이다. 고로 아무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신자들에게도 예수만을 믿어 구원받는 가르침은 너무 이기적이며 독선적이란 해석이다. 일전에 한 존경받는 사람의 입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어떤 종교이든지 잘 믿고 착하게 살면 된다는 식으로 대답한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이것은 주님의 명백한 주장이신 “아무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수 없다(요14:6)”고 하는 분명한 가르침에 위배가 된다. 오직 예수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 것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것과 다를 바 없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뉴에이지 사상의 영향이다. 뉴 에이지 사상은 한 마디로 너 자신이 신이고 신의 잠재력이 네 속에 들어있으니까 자기를 잘 다스리면 신적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든 삶의 주체가 예수가 아니고 자기 자신이란 것이다. 배후 사상과 상관없이 거리낌이 요가를 거리낌 없이 쉽게 수용하는 것은 이 사상에 감염된 증거이다. 성경에 신자를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요, 성령 받은 신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한다.(요1:12-13, 벧후 1:4) 그러나 이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되는 일임을 전제로 할 것으로 예수를 떠나 자기가 신이 되었으니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성경의 예수 절대 신앙을 믿지 않는 신자가 타락하면 자기도 모르게 자아주의자가 되어 세상의 극도의 인본주의 흐름을 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과 같다.
셋째, 포스트모던 사상의 영향이라고 보여진다. 이것은 모든 권위를 파괴하는 극도의 인본주의 사상으로 어떤 대안 없이 주변의 모든 권위를 끌어내리는 사상이다. 일종의 극도의 파괴주의이다. 르네상스 운동처럼 어떤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전제처럼 보이나 더 큰 혼란에 빠지게 하는 무서운 사상이다. 기준이 없는 균형이란 없기 때문이다. 예수 외에 천하에 구원받을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 (행4:12)는 사도의 신앙이 이 문제에 쐐기를 박는다. 균형을 잃을 때 찾아오는 혼란은 더 심각하다. 절대 예수신앙을 지켜나가는 길만이 사는 길이다.
캄캄한 밤에 악한 자가 뿌린 가라지 처럼, 신자의 가슴에 너무 뿌리 내려 예수 상대신앙의 증거의 열매가 여기 저기에 나타남을 보는 현실에서도 눈물을 뿌리며 예수 절대 신앙의 씨를 심어 풍성한 생명을 온 세상에 증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