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근본 (잠1:1-7) 찬422장
잠언은 인생 시작에 관해 어떤 지혜를 보여줍니까?
첫째, 잠언을 깨달음으로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경구로 된 잠언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입니다. 귀고리나 목걸이를 다는 것처럼 잠언을 삶에 적용할 때 우리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알게 됩니다.
둘째, 열매를 맺힐 기대로 시작해야합니다. 우리 목표가 “내면 변화”에 있는 것을 아는 잠언은 명철, 지혜, 의, 공평, 정직, 훈계, 슬기, 지식 그리고 근신이 무엇임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의 원천인 성경을 순종하면 영적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딤후3:16-17)
셋째, 여호와 경외함을 즐김으로 시작해야합니다. 지식의 근본인 여호와를 경외함을 즐겨야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할 때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붙잡을 것 두 가지 (잠1:8-19) 찬379장
본문은 신자가 붙들어야 할 방향 두 가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어떤 것인가요?
첫째, 말씀을 들음으로 나가라 권합니다.
8-9절에 보면 훈계를 들으며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나온 아비와 어미는 성경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에 날마다 말씀을 먹고(마4:4) 묵상하면생명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처럼 성경말씀을 깨달음으로 은혜받을 것을 결심하고 실천해야합니다.
둘째, 악인의 꾀를 경계하라고 권합니다.(10-19) 10절에 4가지를 “쫓지 말라”고 하기를 사람의 피 흘리는 꾀 (무자비), 통채로 삼키려는 꾀 (탐욕주의), 전대 하나만 두자는 악한 연합 (연합주의) (15), 그리고 가만히 엎드리는 죄 (은밀한 죄) (16)를 대적하라고 하십니다. 이 죄들을 철저히 경계하여 헛된 일을 버려야합니다.
지혜의 탄식을 듣자 (잠1:20-33) 찬102장
본문 내용은 지혜의 애타는 호소를 듣고 즉시 응답하라고 권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외침에 응답하는 삶이란?
첫째, 지혜의 간절한 호소를 들을 줄 알아야합니다. 20-27에 보면 길거리, 광장, 훤화하는 길머리와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지혜의신을 보내어 정성을 다해 부르짖습니다.(23) 그리고 종말론적 경고를 보이면서 호소합니다.(26) 마지막 기회라는 것입니다.
둘째, 지혜가 부를 때에 즉시 응답할 줄 알아야합니다. 24-27절에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 두려움과 재앙이 광풍처럼, 폭풍처럼 몰려온다고 경고했습니다.
셋째, 지혜가 주는 영원한 평안을 구해야합니다. 복음에 응답하는 삶은 주님의 간절한 음성을 듣고 즉시 응답할 뿐 아니라 지혜가 주는 영원한 평강을 구하는 것입니다.(31,33) 지혜가 주는 평안을 추구합시다.
말씀과 기도의 삶(잠2:1-9) 찬456장
오늘은 이 지혜를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 지를 생각하려합니다.
첫째, 말씀을 잘 받을 때 지혜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일도 심혈을 기우려야 무엇이 되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에는 더 마음을 쏟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받으며, 간직하며, 기울이며, 마음을 거기에 두라고 하셨습니다.(1-2)
둘째, 기도의 수고로서 이 지혜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3-4절에 불러 구하며 소리를 높여 찾으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수고(은사)를 통하여 은혜 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신앙의 불로소득을 경계해야합니다. 기도의 땀을 흘림으로 은혜 받는 것을 좋아해야합니다. 진실한 수고를 통해 우리는 공의, 정의, 공평을 알게 됩니다.(6-9)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 생애의 목표입니다. 이것을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드려야만 합니다.
지혜가 주는 유익(잠2:10-22) 찬98장
여호와 경외의 지혜를 얻을 때 찾아오는 유익은 무엇인가요?
첫째, 영혼의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10절에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고 한 말씀에는 참 지혜이신 그리스도가 주로 인정되어 모든 일을 평정하는 뜻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둘째, 악인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11-15절에는 악인의 패역에서의 구원을 16-19절에는 음녀의 유혹에서의 구원을 말해줍니다.
셋째, 의의 길로 계속 가도록 도와줍니다. 좁은 길을 가는 신자의 삶에 몰려오는 유혹을 이기도록 도와주는 것은 지혜에 귀를 기울일 때 되어집니다. 기도와 말씀에 전념함으로서 하늘의 즐거움을 누리며 하나님의 절대 보호와 계속적인 의의 길을 걸어갑시다.
축복의 원리 (잠3:1-6) 찬 28장
잠언은 장수, 평강, 명예 그리고 인도의 복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를 선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첫째, 주의 말씀을 순종할 때 장수와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1-2) 하나님 말씀을 가리키는 나의 법과 나의 명령을 잘 지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법과 명령의 형태로 된 것은 우리가 지키기에 간편하고 도움을 주는 형태로 된 것입니다.
둘째, 인자와 진리를 사랑할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명예를 얻습니다. 인자와 진리는 무엇인가요? 사랑과 참입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그대로 품고 사랑하고 따르면 그의 삶에는 이런 사랑을 맛보고 진실의 은혜를 맛보는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를 의지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삶을 살 때 지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갈 길을 미리 아는 항해가 안전한 것처럼 우리가 여호와의 인도를 받을 때 형통케 됩니다. 그것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의지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잠3:21-26) 찬343장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를 지키는 것이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첫째, 믿음을 잘 지키는 자가 받는 복이 무엇인가요? 본문에 복의 내용 3가지를 말하기를 생명의 충만, 형통의 역사(25), 그리고 하늘의 평안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지혜와 근신을 지키는데 힘을 쏟는 것보다 다른 것에 힘을 더 소모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장 복된 것을 위하여 사모하며 거기에 모두 것을 투자하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둘째, 믿음을 바로 파수하기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회개하는 일을 힘써야하며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일에 힘써야합니다. 이 복을 누리기 위해 야고보처럼 기도의 낙타 무릎이 되며 야곱의 씨름처럼 기도에 많은 수고를 드려야합니다.
이웃관계의 정도 (잠3:27-35) 찬278장
본문은 이웃관계를 어떻게 지키라고 말합니까?
첫째, 약자에 대한 태도(27-31) 약한 자에 대하여 가르치기를 네 손에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네 이웃이 네 옆에서 안연히 살거든 모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약한 자에 대해 항상 긍휼 위주여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경건이기 때문입니다.(약1:27) 둘째, 악인에 대한 태도는 다투지 말고, 부러워하지 말고, 좇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악인에 대해 우리는 원수를 갚기 쉽고 미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악인의 행동을 하나님께 맡기고 도리어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셋 째, 의인과 악인에 대해 성경은 세 가지를 말해줍니다. 의인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으나 악인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고, 의인은 은혜를 받지만 악인은 비웃음을 당한다고 했으며, 의인은 영광의 기업을 받지만 악인은 욕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약속을 붙잡고 나아가야합니다.
지혜를 사랑하라 (잠4:1-9) 찬499장
오늘은 지혜와 관계를 맺는 방법을 생각하고 그 결과를 생각하려합니다.
첫째, 어떻게 지혜와의 관계를 가질까요? 본문의 지혜, 훈계, 명철이란 말은 각각 지혜의 특성을 보인 용어들입니다. 네 가지 방법을 보여줍니다. 들어야하며(1, 5, 7), 마음에 품고 잘 지켜야하며, 사랑하고(6) 높여야합니다.(8)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리킨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둘째, 지혜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어떤 것입니까? 살아나고(4) 보호를 받으며 (6) 존귀하게 됩니다.(9) 이 복을 내 것으로 삼기위하여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잠언에서 반복하는 지혜 사랑 문제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바로 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복을 현실화시키지 못하게 되는 가장 큰 장애가 내게 있습니다. 바로 우리 속의 육이란 것입니다. 이 육을 제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합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잠4:10-19)찬89장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은 어떤 것이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요?
첫째, 의인의 길은 돋는 해처럼 빛납니다.(10-13) 의인의 길이란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삶을 가리키며 그 결과, 돋는 해처럼 낮의 광명처럼 밝아진다고 했습니다. 장래의 밝음을 무엇으로 보장합니까? 바로 의인의 삶을 살 때 가능합니다. 그 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삶을 힘써 지키는데 있습니다. 둘째, 악인의 길은 어두움에서 살아갑니다.(14-17) 악인의 길은 사특한 자의 첩경이라 했습니다. 악행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하고 불의의 떡을 먹고 강포의 술을 마시며 불의와 연합된 삶을 힘씁니다. 19절이 보인대로 “어두음”때문에 넘어져 깨져도 그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즐기는 삶을 누리지 못하면 어두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네 마음을 지키라 (잠4:20-27) 찬484장
마음을 지키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하며 어떻게 지킬 것입니까?
첫째, 마음을 지키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잘 지키면 생명이 되고 네 몸의 양약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우리 마음을 통해 나타내시기에 거듭난 신자의 마음을 생명의 원천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 채워지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나타나고 마귀로 채워지면 마귀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둘째, 마음을 어떻게 지킬까요? 마음을 잘 지키려면 두 가지를 힘써야합니다. 지체를 악의 병기로 드리지 말아야합니다.(24-27) 입은 궤휼에서 멀리하고 입술은 사곡에서 멀리하고 눈과 눈꺼풀은 바로 보며 발은 첩경을 평탄케 하고 모든 길을 든든히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려야합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지혜의 문에서 떠나지 말고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말씀에 착념하라는 것입니다.
음녀 유혹을 경계하라 (잠5:1-14) 찬189장
여기 “음녀”란 남녀 간에 일어나는 간음을 가리키며 동시에 거짓교훈을 따라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유혹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지혜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지혜를 따라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째, 음녀의 유혹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꿀과 기름처럼 매력을 끄나 마침내 쑥과 칼 같으며 사지와 음부로 떨어져 (5) 무디게 만듭니다.(6)
둘째, 음녀의 유혹이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7-14에 보면 존영, 수한, 재물, 수고, 육체에 아주 치명상을 가져옵니다. 이것을 분별하는 지혜 자가 되기 위해 성령의 은혜가운데 머물러 있어야합니다.
셋째, 어떻게 지혜를 따를까요? 주의하며, 귀를 기울이며, 근신을 지키며, 입술로 지식을 지키며, 말씀을 버리지 말아야합니다.
부부의 정절문제 (잠5:15-23) 찬288장
본문은 부부생활의 정절이 얼마나 복된지를 보이기 위해 음녀를 경계하라고 가르칩니다. 어떻게 음행의 죄를 이길 수 있습니까?
첫째, 부부의 정절을 지킴으로서 (15-19) 이깁니다. 부부의 성적 관계를 샘으로 비유하여 “네 우물을 마시우며, 네 도랑물을 밖으로 흐르지 못하게 하며, 네 샘을 복되게 하며, 사랑의 삶을 나누라”고 말합니다. 주 안에서 맺어진 언약을 선한 양심으로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창세전의 경륜을 믿고 경건한 가정이 되도록 늘 힘써야 합니다.
둘째, 음녀 유혹을 피함으로서 (20-23) 이깁니다. 음녀 유혹의 특징은 훈계를 멸시하고 미련의 껍데기를 고집합니다.(23) 소돔 고모라의 롯의 가정이나 노아 홍수 심판 전의 상황처럼 마귀는 언제나 가정을 파괴합니다. 공공연한 음행의 문화가 만연한 현실에서 가정을 잘 지키는 것 자체가 이미 전도며 선교하는 것입니다. 자극성이 강한 이 죄를 이기는 최선의 길은 요셉처럼 피하는 것입니다.(창39:7-10)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성령 충만한 자로 살아갑시다.
유혹에서 자유하려면 (잠7:13-27)찬212장
또 다시 잠언을 통해 음녀 유혹의 형태와 결과가 어떠한지 그리고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음녀의 유혹방법, 말씀으로 시험한 마귀처럼 경건의 모습을 띄고 유혹합니다. 14절에 서원제를 드렸다고 하고 화목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언적 암시를 보이면서 유혹하며(15) 모든 잔치의 풍성함을 약속하고 유혹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보이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이단 교훈을 벗어나려면 참 경건의 맛을 알고 그 길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둘째, 유혹에 넘어진 자의 결과, 먼저 자살행위가 일어납니다. 소가 쇠사슬에 매어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매우 치명적입니다. 화살이 간을 뚫는 것 같고 새가 그물에 걸리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셋째, 유혹을 이기는 길, 말씀을 잘 듣고 주의해야합니다. 음녀의 유혹은 우리 주변과 우리 속에 항상 깔려 있습니다. 한번 빠지면 끝장이라는 의식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지혜의 외침에 응답하자(잠8:1-21) 찬490장
본문은 지혜의 외침에 대한 응답을 요구합니다. 왜 지혜의 외침에 응답해야합니까?
첫째, 지혜란 가장 가치 있는 교훈이기 때문입니다.(10-11) 금 은 진주보다 더 귀한 것을 지혜로 비유한 것은 그 가치성을 보인 것입니다. 세상이 좋아하는 보화는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지만 지혜는 현세나 내세에 항상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경외하는 신앙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허비하는 헌신은 당연한 것입니다.
둘째, 지혜 속에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있기 때문입니다.(2-3) 하나님의 간절한 초청이 공적으로 사적으로 이루어짐은 그 속에 준비된 풍성함이 엄청나기 때문이고 또 그것을 받는 방법이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광장에서 외치며 골방에서 속삭입니다. 여기에 회개와 믿음의 응답만하면 준비된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기도의 수고를 드려 지혜이신 그리스도의 간절한 외침에 아멘으로 응답하여 그 복을 소유합시다.
창조자인 지혜(잠8:22-36) 찬235장
본문에는 지혜의 두 방면을 의인화시켰습니다. (27)
첫째, 지혜를 선재자라고 했습니다. (22- 26) 요한복음 1:1-3절에 나온 태초에 계신 말씀이 바로 이 지혜였습니다. 누가 만드신 분이 아니고 자존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다”(22)는 구절이 이것을 설명하는데 바로 이 지혜는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를 소유함은 그리스도를 소유함이며 이 지혜를 순종함은 그리스도께 순종함입니다. 둘째, 지혜를 창조자라고 했습니다. (27- 31) 여기 묘사된 지혜는 만물의 기초이며 만물을 친히 만드신 분이십니다.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가장 선하게 만드신 지혜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이 증명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잘 알아 만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로 인하여 창조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골1:15-17) 선재자요 창조자이신 지혜에 귀를 기울여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창조의 생애를 살아가는 지혜자가 됩시다.
지혜의 초대(잠9:1-18) 찬323장
지혜의 간절한 초청(1-9)과 미련한 계집의 부지런을 떠는 유혹(13-18)은 우리 생활에 항상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이때 지혜자는 바른 선택을 하기위해 실상을 잘 알아야합니다.
첫째, 지혜는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여호와 경외라고 말하면서 그를 두려워하며 사랑하라고 권합니다. 집을 짓고 상을 갖추고 정중하게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사55:1-2) 거기에 응할 때 준비된 풍성한 것이 모두 내 것이 되어 가장 아름다운 향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계3:20) 둘째, 그러나 음녀의 초청도 대단한 열심입니다. 미련한 계집이 감언이설로 꼬입니다.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17)라는 거짓 약속으로 하나님 경외하는 것보다 불의의 생활이 더 재미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 길을 따르면 멸망합니다. 어쩌다 넘어졌으면 즉시 회개하고 그 지혜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준비된 생명과 장수의 복을 내 것으로 삼아야합니다.
지혜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의 세계로 나아가 그 안에 마련된 은혜의 맛을 누리는 복된 가정이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관계를 이루자(잠10:1-17)찬333장
본문은 하나님관계(3, 6-7), 사람관계(1, 4-5, 8-14), 물질관계(2, 15-17)에 대한 진리를 밝혀줍니다. 그 중 두 가지만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갈급한 영혼 위에 은혜 주시는 우리 하나님은(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영혼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덤덤한 마음은 타락한 것이고 매우 위험한 상태임을 잊지 말고 겸손히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힘써야합니다.
둘째, 입술을 경계해야합니다. 미련한 입은 패망하고(8,10) 지혜의 입은 생명 샘입니다.(11) 명철자의 입(13)과 참 지식을 간구하는 입술(14)을 소유해야합니다. 사탕발림의 말 한마디가 헤롯을 죽게 했지만 부정한 입술을 깨달은 이사야나 바른 한마디의 신앙 고백을 한 베드로는 반석 위에 세워지는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의인의 입(잠10:18-32) 찬313장
잠언의 의인은 여호와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자로 경외하는 삶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삶이 가장 잘 표현되는 것이 말이기에 언어생활의 특징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첫째, 의인의 말은 가치가 있습니다. (18- 21) 그것은 치료하며 생명을 살리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말은 악 영향을 미치나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아서 (20) 누구에게나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가르치며 덕을 세웁니다.(21)
둘째, 의인의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24) 악인은 영적 게으름으로 여호와 경외를 할 수 없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소원을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습니다.(23)
셋째, 의인의 말은 영원한 효력이 있습니다. (27-32) 의인의 혀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이웃에게 덕을 세우기 때문에 장수와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27, 28)
의인의 입술을 갖기 위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 지키는 일에 심혈을 기울입시다.
정직한 자(잠11:1-15) 찬208장
일상생활에 일어나는 모든 관계에서 정직은 생명과 같습니다. 진실, 의, 정직은 여호와 경외심의 기초이며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들은 어떤 방면의 정직을 보여줍니까?
첫째, 물질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할 것을 보여줍니다. 1절에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정직한 헌금생활이나 정직한 세금 보고나 성실한 직장생활은 모두 이 의에서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 모든 문제가 정직으로 해결되어야합니다. 환난을 당할 때 정직자는 구원을 받고 (8) 정직자의 축원으로 성읍이 잘 됩니다.(11) 이것은 하나님이 정직자 곧 의인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만이 정직할 수 있기에 정직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 진실하게 살아갑시다.
상급과 징벌(잠11:16-31) 찬269장
본문은 의인의 상급과 악인의 징벌이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첫째, 의인의 마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징벌을 내리기도 하십니다.(20) 무엇보다 모든 행동의 뿌리인 우리 마음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근거를 둘 때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지켜야합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진실한 마음, 거룩한 마음, 그리고 착한 마음(23)을 지켜야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삶을 힘쓸 때만 가능합니다.
둘째, 의인의 원리를 계속 따라감으로 주의 약속을 체험해야합니다. 덕, 근면, 인자를 추구함(16,17), 의를 굳게 지키며(18-21) 절제하는 삶(22-23), 그리고 재물을 잘 관리함(28-30)에 의인의 길을 따라야합니다. 그러할 때 보기에 아름답지 못하나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푸른 잎사귀와 열매를 맺히는 감람나무처럼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 안에 더 온전케 된 의인의 놀라운 복을 가정 식구들이 다 누리도록 하나님을 모신 마음을 늘 지켜가야 합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 (잠12:1-20) 찬494장
여호와 경외 본위로 사는 신자는 훈계를 사랑합니다. 훈계란 “책망, 징계(1)”란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교훈뿐 아니라 교정시키려는 책망으로 채워져 있고 그 책망이 사랑하는 자에게만 주어지기에 의인은 성경에 목을 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본문에도 미련한 자는 짐승 같아서 훈계를 싫어하고 악을 좋아하지만 지혜자는 훈계를 감사히 받는다고 했습니다. 왜 훈계를 좋아합니까?
첫째, 훈계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버리운자임을 알기에 주의 책망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히12:8-9) 둘째, 훈계를 받을 때 문제가 치료되고 새로움을 입어 영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의 진단이 정확할 때 치료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지적은 그 자체가 치료입니다.(3,7) 훈계는 거친 짐승의 마음을 소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1,10) 하나님의 훈계를 기꺼이 받아들입시다.
의인의 상급 (잠12:21-28) 찬490장
여호와를 경외하는 의인이 받을 상급이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21)고 했으며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고 사망이 없다(28)고 했습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기뻐하십니다. 의인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가 나의 상급이요 기업이라고 했고 바울은 교회가 받은 풍성한 복 중 하나가 여호와가 나의 기업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22,25, 엡1:18) 셋째, 이웃에게 기쁨을 줍니다. 의인의 또 다른 상급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하는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23절 에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한다고 했고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름을 받는다(24)고 했으며 의인은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기를 미혹케 한다(26)고 했습니다. 이 의인의 상급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써 경주합시다.
의인의 재물관 (잠13:1-13) 찬409장
의인은 세상을 등진 사람이 아니라 여러 관계로 얽힌 세상 안에서 경건을 지키기 자입니다. 가장 많이 일어나는 물질문제에 대한 확실한 견해를 갖고 살아갑니다. 첫째, 재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습니다.(6) “부지런한 자가 풍족함을 얻는 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재물의 풍족함을 누릴 뿐 아니라 아굴처럼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을 믿을 때 다스릴 수 있습니다. 둘째, 불로소득을 경계합니다.(11) 또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는 것“을 알고 자기의 손으로 일하여 얻은 재물을 좋아하고 그 길을 따릅니다. 이것 역시 경건을 본질로 합니다. 은혜라고 해서 노력과 수고 없이 얻으려는 자세는 은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은혜를 헛되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재물보다 경건이 우선임을 믿습니다.(8) 재물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있지만 경건한 마음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체험하기 에 경건의 우선순위를 따릅니다. (마6:33)
지혜의 자증(잠13:14-25) 찬253장
잠언은 신약서신서처럼 진리의 농도가 짙습니다. 한 구절 속에 구원과 생활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잠언을 대할 때마다 두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합니까?
첫째, 말씀과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임을 전제로 하고 언제나 계명의 권위를 두려워하며 따라야합니다. 수직관계는 자연히 수평관계로 나아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그 은혜의 힘이 모든 생활에 적용되어야합니다.
둘째, 말씀이 말씀을 지혜가 지혜를 증거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자신을 친히 증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세상의 빛, 세상의 생명, 참 포도나무, 생수, 참 떡 등으로 주장한 것은 누구나 주목하고 받을 최대의 증거이듯이 지혜는 지혜를 증거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여호와 경외신앙으로 이끕니다. 이것은 결국 참 지혜인 그리스도에게 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따를 길입니다. 생명의 샘인 지혜자의 교훈을 겸손히 따릅시다
미련과 슬기(잠14:1-19) 찬405장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첫째, 사람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시작하고 진행하고 마치는 존재입니다. 태초부터 인생의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 그대로 진행하게 하시고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게 이끄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선언했습니다. (롬11:36) 둘째,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지 않은 것은 패망입니다. 이것을 잘 아는 잠언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선택한 사람의 어리석음을 보임으로 진정한 지혜자는 무슨 일이든 주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밝힙니다. 주의 뜻이면 이것 저것을 하리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잔을 옮기는 것을 원하였지만 주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겟세마네의 기도가 하나님 백성의 기도여야 합니다. 사람이 다 인정해도 어떤 길은 멸망의 길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 조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생명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복을 누리는 자 (잠14:20-35) 찬252장
사람들은 무엇을 더 많이 받아야만 된다고 말하는데 주님은 이미 받은 복을 계수하고 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요?
첫째, 영적부요를 이웃에게 나누어줌으로서 누릴 수 있습니다.(20-24) 부요자는 (1)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겨야합니다.(긍휼)(21), 선을 도모하는 자(선)(22), 입술로만 말하는 자가 아니라 실행하는 자(수고)(23) 자기 재물을 허비할 줄 아는 자(구제)(24))에게 친구가 많이 생기고(20) 복이 임하며(21) 인자와 진리의(22) 놀라운 유익이 찾아옵니다.(23)
둘째, 여호와 경외를 배움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경외신앙 곧 믿음의 삶에는 반드시 생명의 샘(27), 견고함(26), 그리고 왕적 영광(28)이 따릅니다.(창1:28) 그러나 이 신앙을 따르지 않는 모든 삶의 영광은 빈 껍질처럼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이미 그 세계에 들어와 잇는 우리 가정은 경외심을 지키기 위해 수고함으로 복을 누릴 줄 알아야합니다.
생명 길을 경영하라 (잠15:1-18) 찬246장
생명 길이란 생명을 길에 비유한 말인데 요14:6에 예수님을 길이라 했고 마태복음7: 에는 우리 앞에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이 놓였다고 말합니다.
첫째, 생명 길은 두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하나는 온유입니다.(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는 말씀대로 생명을 가진 자는 온유로 나아가야합니다. 다른 하나는 근면입니다. 19절에 게으른 자는 가시 울타리가 길에 있지만 정직한 자는 대로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역시 생명의 길을 아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은혜입니다.
둘째, 이 길에는 경영이 필요합니다. 22절에 보면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고 한 것은 그 길은 수고를 통해 얻는 길임을 보입니다.
셋째, 생명 길을 바로 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세워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21절에 명철자는 미련한 길을 바르게 하며 23절에 맞는 인생을 산다고 했습니다. 딱 맞는 인생은 바로 이 길을 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피조물의 영광(잠15:19-33) 찬175장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5:33)
기독교의 최고의 덕이 겸손인 것은 생활의 경험에서 나온 교훈이전 하나님이 처음부터 구조적으로 허락한 길이다. 어떤 점에서 겸손이 최고의 덕인가?
첫째, 여호와 경외심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하여 하나님과 구분 없이 안하무인식으로사는 것은 빛을 바래 옷과 같습니다. 교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결코 생겨지지 않습니다.
둘째, 참된 지혜가 나오는 출처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혜란 모든 생활방면에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가리킵니다. 교만은 “자기, 자기” 하다가 제대로 꽃 하나 피어보지 못하고 눈 녹듯이 사라지게 합니다.
셋째, 피조물의 존귀함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이 피조물의 면류관임을 아는 자는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신분을 잘 알아 언제어디서나 겸손 일관하여 약속된 영광을 누리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의 주권(잠16:1-17) 찬23장
인생을 바르게 경영하려면 어떻게 해야합 니까? 첫째, 하나님이 바른 경영을 원하심을 알아야합니다. (15: 22,16:1) 바른 경영은 모 든 방면에 하나님의 경외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계획을 가리키며 철저하게 하나님 경륜 의 근거인 그의 사랑과 진리에 기초해야합니 다. 둘째, 사람이 무엇을 계획하여도 하나님 이 친히 이루심을 알아야합니다. (1) 그래서 우 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경영을 믿어야 합 니다. 로마서 8:28절에 보인대로 우리의 모 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경영을 통해 이루어가기 때문입니다.
아프카니스탄의 피랍된 분들에게도 하 나 님의 경영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들을 향하 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 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계획해도 하나님이 이루심을 믿는 우리는 그의 뜻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가야합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속 히 말씀을 보내어 주옵소서. 속히 구하소서.
겸손의 도 (잠16:18-33) 찬347장
겸손의 도를 가는 자란 어떤 자이며 겸손의 길을 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 겸손의 도를 가는 자란? 18-20절에 겸손에 대해 말하며 21-25절에는 지혜에 대해 말하기를 겸손이란 마음의 지혜로움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21) 겸손자란 지혜를 생명의 샘으로 삼는 자이며(22) 지식있는 입술를 가진 자이며(23) 양약과 꿀 송이와 같은 선한 말을 가진 자입니다.(23) 겸손이란 생명의 길이며(25) 여호와를 참으로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반응입니다.
둘째,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는 복이란?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이 넘어짐의 앞잡이라면 겸손한 마음은 성공의 선봉이요 겸손은 일어섬의 앞잡이라는 말입니다. 교만한 자의 정복(탈취물)보다 겸손한 마음이 더 복됩니다. 성령받은 신자는 성령의 인도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겸손이 도를 따릅시다.
마음의 연단(잠17:1-14) 찬441장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17: 3) 순수한 은금을 얻기 위해 그것을 도가니와 풀무에 넣어 불순물을 제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여호와은 경외하는 자를 마음 의 연단을 위해 반드시 고난의 구덩이에 넣 으십니다. 그 고난을 통해 진정한 경외 신앙 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고난이 자기에게 유익된 것은 고난당하기 전 그릇 행한 것이 고난 후 바른 길로 가기 때문이라 고 했습니다.
욥의 애매한 고난은 그를 정금처럼 만드 는 기간이었고 요셉이 당한 고난은 그를 통 해 하나님나라를 이루는데 기여하는 도구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고난이 허락됩니다. 연단을 받게 하려는 것이지요. 일부러 고난의 구덩이 에 들어가는 금욕주의는 비성경적이지만 주 를 위해 받는 섭리적 고난은 어떤 것이든 우 리를 반드시 변화시킵니다.
마음의 즐거움(잠17:15-28) 찬427장
신자가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가정과 사회를 적극적으로 지키는 일임을 본문은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가정생활에서 지혜자의 삶이 나타나야합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며 아비는 자식의 영화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본으로서 제자화된 모숩입니다. 신앙의 본으로서의 부모 역할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둘째, 사회생활에도 공의를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재판할 때 의를 세움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15,23,26)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이유는 그의 권속들이 모두 공도와 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여전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셋째, 가정과 사회에서의 의의 생활은 마음에서 나오는 열매이기 때문에 마음의 즐거움을 간직하는 것이 우선되어야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만이 성령의 기쁨으로 츙만하여 모든 생활에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세울 수 있습니다.
거룩한 덕담 (잠18:1-12) 찬431장
남에게 덕 되는 말이 신자생활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떻게 덕을 미칩니까?
첫째, 자기를 살펴야합니다. 언어생활의 불결을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한 이사야가 맛본 최초의 체험이었습니다.(사6:5) 자기의 마음상태가 말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으로 고르게 해야합니다. 말씀의 점검으로 여과를 거쳐 분별있는 말을 해야합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하지 말고 감사하는 말을 해야합니다.(엡5:3) 그러자면 말씀 묵상이 없이 불가능합니다. 셋째, 덕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최고의 덕담은 복음을 말하고 복음 생활을 격려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선덕사로 부루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벧전2:9)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받은 위로와 권면과 책망을 우리 형제에게 그대로 해야합니다.
여호와의 뜻(잠19:15-29) 찬499장
잠언의 다양한 내용은 마치 잘 짜여진 옷 감처럼 하나님의 경외하심을 중심하여 사랑 과 공의와 진실과 공평이 모든 방면에 조화 를 이루어 나타납니다. 자녀교육, 가정생활 사회생활 전반에 하나님 경외 신앙이 표현되 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령은 21절 에 사람이 많은 계획을 세워도 여호와의 뜻 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확증하십니다. 이 말은 계획을 세울 때 여호와 경외하는 신앙을 중 심한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고 사람이 아무리 요란한 주장을 해도 결국 하나님의 뜻이 견 고히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온, 모든 일, 모든 사건은 아무리 요동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뿐임을 믿고 현실을 그 분의 때에 맞추어 조심해서 사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그에게 참 평안이 있고 인생의 살맛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롬8:28)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의와 진실이 언행심사에 나타나기를 구합시다. “주여 내 게 성령의 능력을 부으셔서 주의 성품이 드 러나게 하소서.”
술 취함의 교훈(잠20:1-15) 찬177장
성경은 포도주를 약(딤전5:23)으로는 허용하지만 술취함은 엄격하게 금합니다. 술에 인박이지 않는 자를 집사로 세우라고 했고 술은 마음이 곤고한 자의 것이기에 왕은 금해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잠언에서는 어떤 교훈을 줍니까?
첫째, 술 취하는 것은 사람을 거만하게 하고 떠들게 하기에 거기 유혹된 자는 지혜가 없다고 말합니다. 마음은 그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힐 때 겸손하게 됩니다.
둘째, 술 취하는 것은 하나님 예배의 지혜를 둔하게 합니다. 술 취함으로 다른 불로 제사 드리다가 죽임 당한 나답, 아비후의 경우를 생각할 때 신약 제사장인 신자는 더욱 더술 취함을 금해야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 바른 정신으로 감격스럽게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엡5:18) 여호와 경외 신앙자는 성령 은혜에 취해 사는 매력있는 사람입니다.
입술의 열매 (18:13-24) 찬177장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21-22) 언어 사용은 하나님 형상 중 중요한 기능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말씀을 받아 말하는 사람을 만들어 자신의 뜻을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은 어떤 성격을 갖습니까? 첫째, 생사가 말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생사를 가늠하는 복음을 말로 전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방법입니다. 말로 전도하게 하시고 말로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약한 입술이 바른 말을 전하는 거룩한 도구가 되게 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이 말로 표현된다고 했습니다. 심령이 병을 이긴다는 말씀대로(14) 하나님 말씀에 이끌린 마음에서 나온 말이 자기도 치료하고 이웃도 치료합니다. 보혈로 씻음 받은 정결한 마음에서 덕을 세우는 말이 되게 해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묵상할 때 성령 충만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약속된 성령 부으심은 말의 은사인 예언으로 표현되었습니다.(행2:17) 성령에 이끌린 말을 하기위해 말씀을 묵상합시다.
용서생활(잠19:1-14) 찬343장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자의 영광이니라”(11)
일상에서의 용서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첫째, 분노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치 않는 마음은 용수철처럼 솟아올라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이 먼저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성냄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기에 야고보는 성내기를 더디하라고 가르칩니다.(약1:19) 둘째, 여호와 경외 신앙을 힘써야합니다. 이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문제를 생각하기 때문에 손해라도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을 진 사람이기 때문에 백 데나리온의 빚을 용서 못한다면 배은망덕 하는 죄를 범하는 셈이 됩니다, 셋째, 용서는 더 큰 용서의 영광을 얻게 합니다. 신자는 용서받은 죄인이기에 한없이 용서할 처지에 있습니다. 여기에 풍성한 은혜가 따릅니다. 긍휼이 심판을 이깁니다.(약2:13)
영혼의 등불(잠20:16-30) 찬96장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 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잠20:27)
사람들이 영혼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하나님 외에 영혼 문제를 결코 다룰 수가 없습니다. 영혼이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영혼을 마음, 영, 속사람 등으로 달리 표현하면서 영혼을 살피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개역 성경에는 이 영혼을 하나님의 등불이라고 하지만 NIV역에는 하나님이 영혼을 찾으시는 것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영혼을 사람의 몸을 밝히는 눈으로 비유하면서 눈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집중하면 어두워 질 수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마6:22-24) 다윗은 주의 말씀을 발의 등이요 빛임을 알고 밝은 영혼을 가지려면 말씀의 빛 안에 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119:105)하나님 앞에 사는 자만이 밝은 영혼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날마다 자기 영혼을 말씀의 빛 앞에 정직히 서서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 것에 최우선권을 둘때 밝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살자 (잠21:1-14) 찬202장
잠언에 나온 교훈은 지도자를 교훈하는 내용이 많은 곳은 실제적 정치 지도자들을 가르치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안에서 왕권을 가진 신자들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가르치는 면이 더 강합니다. 첫째,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습니다. 터진 봇물처럼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권세가 있으나 여호와 경외하는 왕은 바른 왕권을 행사하여 참 자유와 형통을 체험합니다. 진리가 있는 것에만 참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방종하기 쉬운 권력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신자가 걸어야할 길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통제되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공부나 일이나 사역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위해 항상 만왕의 왕의 심판대 앞에 서는 두려움으로 임해야합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잠21:15-33) 찬260장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본문에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첫째, 의인은 의를 즐거워하지만 죄인은 불의를 기뻐합니다.(15) 의인은 공의를 즐거움으로 삼아 흥왕을 체험하지만 악인은 불의를 즐기다가 마침내 저주를 받습니다. 911테러 같은 멸망이 홀연히 찾아옵니다. 둘째,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 안에 거합니다.(16) 악인의 회중과 의인의 회중이 있는데 의인은 아버지 안에서 영원히 살지만 악인은 망합니다.(시1:6) 교회는 성령의 조명 안에 살기를 힘쓰는 밝은 회중입니다. 셋째, 일락을 사랑하는 자는 망합니다. 연락, 술, 그리고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는 말씀(17)은 육적 쾌락에 심취한 자의 위험함을 경계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대로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말씀과 통합니다. 경외 신앙을 가진 의인의 보장받는 길을 걸어갑시다.
미련에서 벗어나라(잠27:14-21) 찬82장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 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14)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것은 적응성을 간 과한 무의미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돼지는 진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 은 것이라도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을 때 복 을 저주로 취급하여 복의 존엄성을 해치게 됩니다. 때에 맞는 말을 할 줄 아는 지혜의 부족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취급될 때가 많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 방인에게 이방인처럼 접근하여 복음의 가치 를 알게 하는 지혜로운 행동이 따라야합니다. 상황에 맞는 축원이 되지 않으면 오해하여 도리어 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축복 하는 일이라도 아침에 큰 소리는 경우에 맞 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는 작은 소리로 축 원하는 적응성있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 다. 진리의 도는 폭탄 터뜨리는 방식보다 때에 맞는 유익을 주려는 배려에 진지함으로 걷는 길입니다. 미련에서 벗어나 지혜의 길을 걸읍시다.
바른 일꾼 (잠22:1-16) 찬517장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 경외신앙은 교육을 통해 전수됨을 본문이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마땅히 행할 길 곧 성경을 가르쳐 배우고 확신에 거하게 해야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중심하기 때문에 성경 교육으로만그리스도를 닮게 합니다. 둘째,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영이요 생명인 말씀은 교훈, 책망, 바르게 함, 그리고 의로 교육함으로 표현됩니다. (딤후3:16) 정보 전달만이 아니라 현실에 맞도록 본을 보이면서 적응시켜야합니다. 셋째, 아이 때에 가르쳐야 했습니다. 영육의 유치기에 말씀의 틀을 잡고 말씀으로 양육함이 지혜입니다. 그 결과는 장래에 진리를 떠나지 않게 됩니다.
나 자신이 먼저 성경을 깨닫고 본을 보이며 나갈 때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바른 일꾼이 됩시다.
온전한 지혜생활 (잠22:17-29) 379장
지혜자의 생활이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 지혜자의 말씀과 지식은 여호와 경외신앙을 가리키며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지혜의 가르침은 개인적 형태로 나타나기를 “지혜와 나(일인칭)”의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제자도의 방법은 항상 이런 것입니다. 말씀이 개인의 마음에 보존되고 입술로 표현될 때 아름다움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르침, 기록, 그리고 말씀의 깨달음을 통해 진리에 응답해야합니다. 지혜의 생활은 기록된 말씀에 착념하여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생활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노와 울분을 품은 자와 동행하지 말라는 이유는 행위의 분을 따름으로 영혼이 올무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산업에도 말씀을 적용하는 일에 근실한 사람이 존귀하게 됩니다.
셋째,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지혜의 삶은 약한 자를 압제하지 말고 돌보는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소자를 하나님이 신원하시기 때문입니다.(20-21) 이것이 참 경건입니다.(약1:27)
탐욕(잠23:1-14) 찬328장
모든 죄악의 뿌리인 탐욕을 이김은 마귀를 이기는 길이며 큰 용사보다 더 낫습니다. 어떻게 탐욕을 이길 수 있습니까?
첫째, 탐욕이 헛됨을 알아야합니다. 탐욕은 칼을 목에 둔 것과 같고(1-3) 마침내 모든 것을 토하게 되어있습니다.(6-8) 바벨탑이 무너지듯 탐욕의 마지막은 허사입니다. 둘째, 탐욕을 경계하고 불로소득을 조심해야합니다. 쉽게 되는 것보다 진실한 수고를 통해 진실한 열매를 얻으려는 것이 진리의 길입니다. 마귀의 술책은 값없이 받은 은혜를 수고 없이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셋째, 적극적 방법으로는 재물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며(4-5) 소자에 대한 사랑을 가지며(10-11) 훈계에 착념해야합니다. (11-12) 그래서 바울은 바른 교훈에 착념치 않으면 저절로 교만하여 부패한 마음이 되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탐욕을 좇아가도록 되어있다고 말한 것입니다.(딤전6:3) 육체 소욕의 정체가 탐욕이기 때문에 주님을 모든 영역에서 주로 인정하는 삶만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탐욕과 싸우는 참 용사의 길을 걸읍시다.
아굴의 잠언(잠30:1-17) 찬405장
아굴은 어떤 점에서 우리가 배울 경건의 본입니까?
첫째, 그는 계시를 아는 자였기 때문입니다.(5-6) 말씀의 순수성, 명백성, 구원성, 권위성을 확신하는 건전한 성경관을 소유한, 하나님 아는 자였습니다. 마치 개혁자들의 성경관을 그림으로 보는 것 같고 성경체험주의자의 샘풀을 보는 것같아 가슴이 뭉클합니다. 둘째,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7-9) 그리스도인의 자아상과 진실한 삶과 균형있는 삶(빌4:13)을 평생 소원으로 삼았습니다. 주기도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신 주님의 정신과 통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제일로 삼은 본입니다. 셋째, 그는 불효하는 무리, 교만한 무리, 탐심의 무리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11-17) 거짓과 탐욕을 경계하는 그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보여줍니다.
바울 신앙을 생각케 하는 그 신앙은 동일한 성령의 역사로 생긴 것입니다. 아굴의 확신으로 살아갑시다.
악인의 형통(잠24:1-22) 찬403장
하박국 선지자나 시편 37편의 시인처럼 악인의 번성으로 생긴 갈등에 관해 잠언은 어떻게 가르칩니까?
첫째, 악인의 형통은 장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1) 악의 번성과 배은망덕자의 형통은 일시적입니다. 믿지 않는 자의 모든 형통이 무너지는 까닭은 좁은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넓은 길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길이기에 그 마지막은 사망이고 멸망입니다.
둘째, 시기하며 괴로워하여 죄를 범하지 말라고 경계합니다.(19-20) 자기 집을 지혜로 세우기를 힘써야합니다.(3) 이 말은 말씀과 기도의 세계로 들어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라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자리이며 부스러기 은혜라도 세상 최고의 부요가 부럽지 않는 확신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소자들을 건지려고 노력해야합니다. 하나님만을 믿는 의인은 이웃 소자들의 필요를 채우려고 힘쓰는 사람입니다. 사슴의 발처럼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합3:19)
맞는 삶 (잠24:23-34) 찬88장
아로새긴 은장반의 금사과처럼 지혜의 삶은 모든 방면에 꼭 맞는 생활입니다. 셋방면에 그러해야합니다.
첫째, 판단의 적응성이 있어야합니다. 외모보다 중심을 보고 판단하며(23-25) 적절한 말과 적절한 일의 균형을 잘 분별하는 지혜를 갖는 것입니다. 둘째, 원수에 대한 적응성을 가져야합니다. 상황이 극에 달할 때 적응성을 잃기 쉽습니다. (28-29) 원수를 대할 때도 복수률을 따르지 않고 그를 축복하고 용서함으로 더 높은 차원의 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용서의 기도는 초대 교회에 부흥의 불을 붙였으며 그를 죽이던 사울이 사도가 되는 기적이 생긴 것입니다. 셋째, 환경의 적응성을 가져야합니다. 게으른 자의 환경을 보고서도 교훈을 얻는 것이 지혜자입니다. (30-34) 실로암 망대가 무너질 때 지혜자는 악을 두려워하여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17-18) 복음의 길을 성실히 걸어 문제를 복으로 바꾸는 꼭 맞는 삶을 살아갑시다.
슬기자의 처신(잠25:1-14) 찬376장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개인의 마음을 통과할 때 효과있는 열매가 나타납니다. 어떤 방면에 효과가 나타납니까?
첫째, 왕적 다스림에 나타납니다.(2-5) 일을 살피고 꿈과 높은 마음을 소유하며 의로 견고하게 하려합니다. 남을 다스리는 자의 일차적인 일은 자기 마음을 말씀에게 양도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둘째, 합당한 삶에 나타납니다.(11-13) 경우에 합당한 말, 슬기로운 자의 책망 충성된 사자는 모두 마음이 말씀의 지배를 받을 때 나타난 결과입니다. 지혜자는 세상의 얄팍한 체세술을 능가한 경건한 처세술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인격에 까지 그 영력으로 무장하여 그 힘이 나타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경건의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가정 예배시간을 이런 현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의인의 혀(잠25:15-28) 찬 43장
여호와 경외하는 의인의 혀는 세 가지 방면의 특징을 갖습니다.
첫째, 겸손의 혀를 갖습니다. 마음에 크신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자연히 겸손하여 인내하며 부드러운 말을 갖습니다.(15,23) 겸손과 인내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조급한 말 때문에 손해 보는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겸손한 말을 배워야합니다.
둘째, 진실의 혀를 갖습니다. 거짓증거와 거짓을 의뢰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하는 진실의 혀로 나타납니다. (18,19) 솔직한 말도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면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진실의 영의 기록인 진실의 말씀을 진실로 사랑하여 진실한 말만해야 합니다.
셋째, 화목의 혀를 갖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화목의 언어입니다.(20,21,24) 경제적풍요를 맛볼 때 방종하기 쉬운 우리의 마음에 항상 은혜 받는 일에 힘씀으로 은혜로 고르게 하는 말, 곧 겸손, 진실, 그리고 화평의 언어생활을 해야합니다.
묵시가 없으면(잠29:15-27) 찬241장
묵시란 다른 말로 계시입니다. 계시란 하나님이 베일을 벗겨 열어 보여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믿음과 행함을 포함하는 율법, 곧 성문화된 계시가 바로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할 일을 알게 되니까 규모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계시를 모르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첫째, 영적 어두운 삶을 살게 됩니다. 계시는 명료하고 충족하며 구원 능력과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묵시를 모르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영치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둘째, 묵시가 없으면 방종하게 됩니다. 이유는 기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징계할 때도 임의로 하다가 빗나가고 개인 삶에도 임의로 판단함으로 교만으로 치우쳐 육체 소욕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특별계시인 성경 앞에 바로 서서 성령의 밝히시는 은혜로 항상 계시가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갑시다.
언덕사 (잠26:17-28) 찬337장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온전한 자라는 야고보의 말대로 입술에 파수군을 세운 자로 살아가야합니다. 이것은 말에 덕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인데 어떻게 덕있는 말을 할까요?
첫째,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다툼을 간섭하거나(17) 희롱하거나(18-19 남의 말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교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가난한 심령이 있을 때 온유한 말이 나옵니다. (23-27)
둘째, 성령 안의 기도생활을 힘써야합니다. 거짓말(28)과 아첨의 말(28)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진실한 기도의 언어를 배워야합니다.
셋째, 덕 위주의 삶을 힘써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양약과 칼과 몽둥이 그리고 불이 된 것처럼 그 말씀을 받은 우리의 마음도
이웃을 고치고 치료하는 말을 해야합니다.
선교사이기 전에 선덕사가 되어야하며 선덕사가 되려면 언덕사가 되어야 합니다.
현실에 충실한 삶(잠27:1-13) 찬383장
어떻게 신자는 미래보다 현실에 더 충실할 수 있나요? 첫째, 현재를 겸손히 살아야합니다. (1-2) 안개와 같고 풀과 같은 인생은 신속히 지나갑니다. 그 다음은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날의 괴로움을 그날로 족히 여기고 지금 있는 그 자리부터 겸손히 살아가야합니다. 둘째, 작은 육적욕망을 제해야합니다. 분노와 투기는 현재의 충성을 저하시킵니다.(3-4) 하나님 앞에서 내게 주어진 몫을 감당하는 지혜자가 되어야합니다. 셋째, 현재의 책망을 잘 받아야합니다.(5-6) 사랑의 면책과 친구의 권고를 잘 받을 줄 알아야합니다.(5-6, 9)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책망을 잘 받을 때 양약을 체험합니다.
비죤이란 명목아래 현실을 등한히 여기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지극히 작은 일에 성실함을 지켜 나가는 지혜자가 됩시다.
작은 일에 성실하자 (잠27:22-27) 찬381장
전원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본문은 작은 일에 성실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줍니 다.
첫째, 먼 곳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가 까운 곳에 있습니다. 면류관과 재물에 마음을 두기보다 현재 자기 일과 자기 양떼와 소떼 에 마음을 두고 작은 일에 성실 할 때 큰 것 을 받으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미련한 자는 항상 미래와 과거에 마음을 두 지만 지혜자는 철저히 현실을 살핍니다. 둘 째,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삶은 아무리 머 리를 짜내어도 미련할 뿐입니다. 미련은 절구 속에 넣고 찧어도 벗겨지지 않는다는 잠언은 땅 끝에 가있는 미련한 마음의 결과를 보인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식구부터 성실하게 믿음으로 돌보며, 아침마다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 생활에 성실함으로 마음의 샘에서 생수 가 터지게 해야합니다.
의인의 담력 (잠28:1-18) 찬421장
의인으로 인정받아 의를 이룸에 부름받은 신자는 사자 같은 담력을 가져야합니다.(1) 세상이 매우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지역의 부흥을 위해 맹수 같은 거짓 교훈과 싸웠다고 고백합니다. (고전15:32) 어떻게 담력을 가질 수 있나요? 첫째, 하나님의 보호의식 때문에 담대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좇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가는 두려움이 있는 까닭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의식에 잡혔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골리앗 앞에서의 담력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둘째, 성령이 지배하는 임마누엘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으로 되어집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는 바울은 성령의 위로와 능력으로 굴하지 않고 도리어 그 환경을 복된 역사로 바꾸는 담력을 가지고 일한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약속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해 나의 할 일은 내 마음이 하나님 말씀에 붙어있는 것뿐입니다.
구제의 삶 (잠28:19-28) 찬410장
잠언의 가르침을 복음의 삶의 다양한 방면을 보는 시각을 가져야합니다. 잠언의 여호와 경외 신앙은 복음 안에서만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그 중 이웃 구제에 관해 어떻게 말합니까?
첫째,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이 자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길입니다.(27) 가난한 자란 영육간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알게 하고 누리게 하는 것이 구제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둘째, 바른 구제란 하나님 앞에서 하며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께 빌려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풍성하도록 갚아주십니다. 긍휼이 심판을 이깁니다.(약2:13) 세째, 구제에 무관심한 자에게 저주가 많이 임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소자를 도우라고 맡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제 목표로 움직이는 삶은 결국 자기를 관리하는 최상의 길 중 하나입니다.
소자를 섬기는 사람(잠29:1-14) 찬216장
여러 관계 생활에서 복된 길을 보여주는 본문은 소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라고 가르칩니다.
첫째, 13절에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아도 하나님의 자비는 한결같으심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일반은혜 속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가난한자로 표현된 신자에게는 악인이 갖지 못하는 특별한 은혜가 따릅니다. 거듭남과 죄사함과 영생을 소유 하는 자는 선택된 자기 백성에게 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자라지만 마침내 선악 간 심판을 받습니다. 섞여있는 동안 악인을 옳은 대로 돌이키려는 수고를 하는 것이 신자의 사명입니다. 둘째, 14절에 왕이 소자를 신원할 때 권위가 세워짐을 가르칩니다. 소자를 무시함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마음은 언제나 가난한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 소자가 용납되도록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낮은 마음으로 살 때 영권이 세워집니다. 진정한 리더쉽은 소자 섬기는 마음 위에 주어집니다.
여호와 경외신앙 (잠23:15-35) 찬394장
악인이 잘됨을 보고 마음에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신앙생활에 흔히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이 갈등은 하박국 선지자도 그랬고 (합3:13-17) 시편기자도 그리했습니다.(시73:) 이때 마음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 큰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잠언의 지혜는 어떻게 하라고 말합니까?
첫째,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실상에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성소에 들어가서야 미끄러운 가운데 두어 졸지에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았기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둘째,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하십니다.(17) 하박국 선지자가 경험한 갈등문제는 하나님이 밝혀줄 때 깨달았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변에 아무 것이 없어도 오직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경외신앙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은 악인이 모르는 신령한 세계를 보며 사슴의 발처럼 모든 문제의 산들을 밟고 다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미련의 죄 (잠26:1-16) 찬337장
일정한 견해가 없는 어리석음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미련함이란 철면피와 같이 악에 연단되어 고정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왜 미련한 삶을 경계해야합니까?
첫째, 미련은 망령된 행동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름에 눈 오는 것이나 추수 때 비가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풍성하고 놀라운 은혜의 가치를 모르고 쉽게 배반합니다. 한 그릇 음식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해 버림당하였습니다. 둘째, 미련은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기 때문입니다.(3) 말에는 채찍이 필요하듯이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가 따른다고 한 것이 그 뜻입니다. 영적 미련은 하나님 은혜를 대적하는 디오드레베의 죄를 법케 만듭니다.(요삼1:9-10)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성령의 길을 막는 분쟁주의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미련은 영적 나태로 나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13-15) 세상일에는 부지런하면서 영적 일에 게으른 자는 소심하여 일을 만들며 불로소득을 좋아하는 육적 근심에 빠지게 됩니다. 성령받은 신자는 근면한 사람입니다.
자연을 통한 잠언(잠30:18-33) 찬40장
일반은총인 자연은 죄로 인해 어두워졌지만 복음 안에서 회복됨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로가 효력을 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괴로워하는 욥에게 자연 만물의 운행을 통해 교훈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어떤 교훈입니까?
첫째, 바위 위를 지나간 뱀의 자취, 배의 자취, 음녀의 자취, 남녀관계의 자취를 들어 은밀한 죄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세상 진동시키는 4가지 즉 종이 임금된 것 ,미련 자가 배부른 것, 꺼림 받은 계집이 시집 간 것, 계집종이 주모된 것을 통해 겸손한 마음의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셋째, 작은 것으로 지혜로운 생물 곧 개미 사반, 메뚜기, 도마뱀을 통해 작은 일에 충성할 것을 가리치며 위풍 있는 것들 곧 사자, 사냥개, 수 염소, 왕을 통해 여호와 경외하는 자의 담력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만물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진리를 배웁시다.
여호와 경외하는 여자 (잠31:1-31)
현숙한 여인을 그리스도 자신, 그리스도인, 가정의 여인들로 보는 세 견해가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란?
첫째, 남편에게 인정을 받는다 (11-12).
남편이 칭찬한다.(28) 남편이 그를 믿는다.(11,23) 남편의 기를 세워준다.(12) 남편에게 선을 행한다. 진주보다 더하니 – 여인들은 진주보다 귀하다. 여자들은 가정에서 진주와 보석이 되라. 새로운 일에 도전하라.
둘째, 덕이 많습니다 (20).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이다. 가난한 자를 돕는다. 부지런하였다 (13-19) 주는 자의 축복의 비결을 아는 자이다.
셋째, 하늘 지혜가 있습니다 (26). 인애와 지혜가 입에 있었다. 능력과 존귀로 옷을 입었다. (25) 성경묵상을 통해 배우자. 기도를 통하여 임하는 열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