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랑

칼빈은 그의 강요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근본적인 죄를 “자랑 (boasting)”이라 지적했다. 자랑은 육체의 부패성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교만, 자만, 거만이란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자랑에 대해 바울 사도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제한시킨다. 이는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고후10:18)”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정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은 사람은 자연히 주님을 자랑하게 되어있다. 하나님에게 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것이 자랑이다. 거짓 교훈으로 감염된 고린도 교회가 사람 자랑, 장기 자랑, 업적 자랑으로 치 닿는 것이 모두 사탄의 술책에서 나온 것을 잘 알고 그 치료를 위하여 본을 보이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자랑하였다.(고후11:16-18) 이것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면 하나님께 화를 받는다는 주님의 가르침에 근거를 둔 것이다.(눅6:26)

자기 자랑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에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기가 정말 어렵지만 그럴수록 사탄의 위장전술을 경계해야한다. 자랑하려 면 바울처럼 주의 은혜 주심을 자랑하고 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 고 고생한 것을 자랑해야한다. 또 이것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는 세례요한의 확신에서 나와야 한다. 그럴 때 이 자랑은 복음증거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삼층천에 다녀온 체험을 말할 때에도 바울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한 사탄의 유혹을 경계하는 법을 잘 알았다. 신앙 간증으로 꽉 찬 우리 시대에 조심할 것은 주 안에서의 자랑을 배우는 일이다. 변화산의 황홀경 체험, 병 고침 받은 체험 심지어 천당을 보고 다시 살아난 사람이 말할지라도 현재 있는 성경의 증거를 받지 않는다면 정말 무익한 일이 되고야 만다.

도화선을 건들기만 하면 교만하게 되는 치명적인 자기자랑의 유혹 과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난한 마음 곧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 래서 자기를 보는 마음 곧 겸손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힘써야 한다. 일곱 고을을 점령하는 것보다 자기를 쳐서 제어하는 일을 더 가치있게 여기는 것이 용사의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