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예루살렘에서 모인 사도회의는 역사적으로 구원 받는 방법에 대해 선명하게 획을 그리는 결정을 내린 중요한 모임이었다. 이것은 인간들의 탁상공 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성령이 친히 그들을 통하여 그 뜻을 계시하는 순간이기에 주목할 일이다.
1. 교회에 침투한 이단교훈 때문에 사도들로 시작된 회의는 구원론에 관한 교리로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일에 대한 교회적 처분에 관한 문제였다. 그 이단은 유대교 신자들이 이방인의 구원은 믿음과 할례를 행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서 인간의 뜻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왜 할례를 행하여야 하는가? 이것은 유대교로 전향하는 개종자에게 반드시 행하게 한 구원의 증표였는데 복음 안에서 모두 완성이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인간 교훈으로 사람들을 괴롭게 한 것이다. 이같은 이단 교훈은 훗날 갈라디아 교회에도 들어왔고 사도가 믿음의 복음 외에 다른 것을 가감한 자는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으라고 할 정도로 심각히 다루었다. 그래서 사도의 회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2. 회의 과정에서 사도 베드로의 사역에서의 경험이나 바울의 전도여행에서 얻은 발견에서 성령이 하시는 일을 자기가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 성령의 뜻을 좇는 일에 일치된 의견을 모았다. 이것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주장으로 정리되기를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예수만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원리를 전하고 이방인에게는 구원받은 후의 삶에 바른 성장을 위하여 세속적인 습관을 금하게 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3. 그 결정은 본래 아브라함에게 보인 계시였다.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오해하여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는 보태기가 되는 줄을 생각하고 그러했다. 이것은 변질된 가르침이었다, 율법주의로 넘어가는데 한 몫을 한 것이 유대인의 민족우월사상이었다. 결국 이것은 인간 자율주의 곧 바벨탑을 쌓는 무서운 행위이다.
4.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여전히 그 진리를 다시 확인하는 일을 여기서 하시고 세계를 향한 구원의 방법이 오직 예수 믿음으로만 되는 진리를 계속 증거하신 셈이다. 그러나 로마의 오류는 10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 교리를 주장하였다가 루터때 와서 다시 이신칭의의 교리가 확인되어진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주장하였다. 오늘날의 교회의 타락은 대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그래서 회복의 길 역시 이 진리를 재발견함에 있다. 사도의 최초의 결정은 성령의 계시이다. 이 진리가 환히 밝혀지는 교회가 되어 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 시대는 혼란에서 벗어나 산 소망에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