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부으시는 때

철든 신자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 예민하다. 그래서 성경에는 많은 교훈들을 때라는 허리띠로 묶어 실행하게 한다. 이것은 예수님과 바울의 경우에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첫째, 예수님은 때에 예민하셨다. 그가 이 땅에 오심이 때가 차서 오신 것이고 때가 찼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했고 인간의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게 하려는 시도를 반대하시면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 때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순간으로 신약 역사의 구심점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때가 되었기에 잡히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마침내 하나님의 정한 때에 죽으시고 살아나 승천하셨다. 이제는 성령 강림의 때에 홀연히 교회 안에서 높아지신 주로서 거하신다. 유대인 역시 메시야의 때를 기다렸으나 그 영접의 때를 놓쳤다.

주님이 선포한 천국이 가까왔다는 말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시대, 은혜의 시대임을 강조한다. 한번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2장을 읽으시고 이 성경이 오늘날 응하였다고 선포하셨다. 가난한 자가 복음을 받고 눈 먼자가 보고 포로에게 자유와 눌린 자가 해방을 얻는 주의 희년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신약시대가 폭포수처럼 은혜를 부으시는 때라는 뜻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새해 역시 그 기간에 포함되기에 우리는 은혜가 부어지는 범주에 속한 자이기에 행복자이다. 자본이 없어도 입을 넓게 열어 주께 구하면 은혜의 주님은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이다. 이 위기는 놀라운 비상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둘째 바울의 시간 인식 역시 예수님과 같은 세상에 외쳤다. 그는 고린도 후서에 성도에게 고난의 위로를 가르치면서 보라 지금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감격하며 선포한 일이 있다. 이 시대에 대한 그의 선언이다. 삼층천을 체험한 사도의 눈에 이 시대는 전무한 은혜를 부으시는 때라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은혜를 주시기로 약속된 때에서 누구든지 구하면 구원의 은혜를 받는 때라는 확신이다. 그래서 그는 보라(Behold)라는 감탄사로 시작한다. 그의 확신대로 주님의 재림의 때를 의식하며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에 충성된 종으로 섬겨 자신의 달려온 길을 모두 마치고 이제 의로운 재판장 앞에 서게 된다고 선언하다. 얼마나 당당한 확신인가!

불경기 여파가 계속되고 여러 가지 곤경에 낙심하기 쉬운 때에 신자는 기회인식을 내 것으로 삼아야한다. 이 때가 바로 새 역사를 이룰 그릇을 준비하는 때이다. 안되는 것을 되게 하고 그릇된 인생관을 뜯어 고치는 때이다. 돈을 버는 기술보다 나아가 돈을 바로 쓰는 방법을 배우는 때이다. 종말의 때를 통과하는 지혜를 배워 나를 정돈시키는 기회이다. 주님이 부르시면 누구든지 즉시 가야 할 긴급성을 알고 내게 주어진 한 해에 전무 후무한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새해를 시작하는 방법이며 도전해야할 타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