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유다라 이름을 가진 세 사람이 예수를 둘러싸고 탁월한 역할을 수행했다. 가롯에서 온 유다와 야고보의 아들 다대오인 유다인 두 사람은 예수께서 택한 제자들이다. 세 번째는 부활하기 까지 믿지 않은 예수의 동생 유다이다. 예수의 동생 유다가 그의 이름을 가진 신약에 나온 유다서를 기록했다. 여기 우리가 생각하는 주제는 다대오로 알려진 신실한 제자 유다이다.
비록 복음기자들조차 예수의 배반자 유다나 신실한 제자 유다를 언급할 여지를 가리킬 필요를 의식하지 못했다. 유다라 이름하는 두 제자는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전자는 양심가책으로 자살했고 (마27:3-10, 행1:18-20) 후자는 예수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라는 명령을 수행하다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비록 우리가 복음서 저자들이 기록할 때 표현하지 않았음을 본다할지라도 그 자신도 자기에 대해 거의 묘사하지 않았다. 요한의 복음은 유다가 말한 질문을 기록하기를 “ 가롯이 아닌 유다가 주께 말하기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요14:22) 그 순간에 우리는 그 제자가 섬광을 보듯이 예수의 의도를 엿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문제는 그가 하나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서 행하실 일에 대한 그릇된 기대이다. 근본적으로 예수의 질문 “너희가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며 세상에 너희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겠느냐? 라는 것이다. 예수의 응답은 그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23)
두 책에 나온 대위임령(마28:19-20, 행1:8)에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명령을 포함한다. 그 나라는 개인적 남녀의 마음과 생활 속에 살아가는 지상이며 인격적 나라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기념비적 사업을 주시고 권능과 지혜로 무장시키셨다. 그 사명에 관한 이해의 요점은 방법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기 주인이 받은 것과 같은 종류의 환영을 예상할 수 있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승리와 고난을 약속하셨다.
유다 사역에 관해 전통은 그가 인디아 보다 먼 예루살렘 북동쪽에 가서 설교했다고 전한다. 동료 바돌로매와 같이 유다는 지금 터어키 동부로 불리우는 흑해와 카스피안 해엽 사이에 있는 고대 아르메니아는 역사적 기독교와 강한 결속을 가진 곳이다. 아르메니아는 초기복음전파의 전초기지이며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오랫동안 알려졌고 4세기 에 그리스도를 위한 민족이라 불리우는 국가로 공식적 인정을 받았다. 그리스도를 위한 최기 영향의 출처가 유다와 바돌로매에게 돌려진다. 유다 다대오가 먼저 도착하여 8년 동안 그 사역을 수행했다. 그는 주후 70년경 화살에 맞거나 혹은 창에 맞아 순교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특별한 사건들이 알려지지 않으나 복음은 새 땅에서 믿음과 반대를 자주 불러왔다.
부활 후 곧 아르메니아를 향한 유다의 여행 배후에는 본래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따르는 사건이 역사적으로 확실치 않지만 그들은 1세기 여행 정보에 관해 여러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초대교회의 감독이며 초대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동쪽 아르메니아의 에데사라는 나라까지 예수 복음이 전해졌다고 한다. 예수에게 편지를 보낸 아브갈(abgar)이란 왕이 자기가 백성 중 자기를 수행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행원과 은신처를 제공했다고 한다. 또 아브갈은 예수께서 자신의 병에서 치료할 수 있음을 기대했다. 예수께서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 책임이 있다할지라도 그가 하늘로 가면 즉시 개인적 대사를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 대사가 바로 다대오로 전해 온다.
복음서 혹은 신약의 다른 곳에서의 침묵하는 이야기를 성경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을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여 생각하게 한다. 예수께서 그 왕래를 인정하고 응답하셨는가? 우리는 예수의 말씀에 특별한 말씀을 찾지 못하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생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은 너무 숫자에 치우쳐 있었고 그 주요한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예수 부활 후 인간 바다에서 시작된 복음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방으로 퍼졌다. 아마 그 소식은 예수의 살아 계시는 동안 널리 퍼진 것처럼 보인다. 오직 천국은 먼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본래의 열심과 모험으로 충만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