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료 사도와 달리 요한은 그가 사랑한 교회를 섬기다가 에베소 시에서 조용히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조용한 생애를 살지는 못했다.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초기 생애를 보냈고 폭 넓게 여행하였으며 신약의 책들 (요한복음, 요한1,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을 마친 후 세상을 떠났다. 확실히 요한은 감동적인 업적을 남겼으나 예수께서 그를 위해 행하신 일과 비교한 생애를 드러낸 최초의 사람일 것이다. 요한의 개성은 사람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방법을 우리에게 많이 말한다. 요한이 다른 사도들과 함께 생존한 사실은 그가 견딘 독특한 고난의 종류를 보여준다. 실제적 순교자는 아니라 해도 요한 생애는 순교자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는 본을 남긴 귀한 산 제물이다. 우리가 앞으로 볼 것이지만 그 만이 여러 경우에 하나님의 간섭으로 현실적 순교를 피했다.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의 제자 가운데 불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다. 예술가의 해석과 인격적 감동은 가끔 요한에 관한 왜곡된 그림을 만들었다. 정말 그는 예수의 사랑한 제자였으나 그가 특별히 사랑받을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시대의 전형적 어부로서 거칠었고 고된 일을 하며 건방지며 사회적 혜택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요한과 그의 형제를 칭찬보다 사랑하는 말로서 “우뢰의 아들들”이라 부르셨다. 마가는 그들의 초상화적 성격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그리면서 그의 복음서(3:17)에 특별한 이름으로 기록한다. 확실히 그들은 그 설명처럼 살았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산에서 변화된 예수를 보았을 때 제자들 가운데 우리 중 누가 제일 크냐는 내적 암투가 일어났다. 요한은 기록하기를 예수께서 그 다툼을 아시고 그와 다른 제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낸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를 따르지 않기에”(눅9:49) 금했다고 말했다. 만일 요한이 예수의 허락을 기대했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는 것을 격려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주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권위와 명성의 경마는 지나가지 못했다. 누가는 예루살렘의 마지막 여행과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은 마을에 사마리아의 사건을 직접 묘사한다. 요한과 야고보가 주님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로 생각하는 자리를 갈망하며 의도적으로 말하기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눅9:54)라고 했다. 그 제안에서 그들이 단지 주님 얼굴만을 볼 수 있게 되리라는 가능성을 암시하며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꾸짖으셨음을” 우리는 단순히 생각한다. 예수께서 첫 제자와 실행하시던 제자도의 과정은 고통스러운 일이며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제자들의 생활 속에 계속되었다.
요한은 힘든 길을 사랑하는 것을 배웠다. 그가 일괄성 있게 자기 복음서에 이름을 남기려고 할 때 자신을 주님이 사랑한 제자였음을 묘사한다. (요13:23) 천둥의 아들을 사랑의 아들로 변화시킨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복음서와 세 편지를 읽을 때 저자는 진리의 챔피온이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자기 서신에서 그는 사랑의 사람이라는 감동을 일으킨다. 유세비우스 같은 고대증인들은 그의 설교의 마지막을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랑하는 자여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라는 메시지로 단순화했음을 기록한다. 분명히 그는 질문을 받고 말하고 해석할 때는 언제나 그 말이 그가 택한 진술이다. 그것에 대해 질문할 때 그는 모든 필요한 일들이 한 명령의해 신실하게 수행되는가를 돌아야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단순하지만 심원한 메시지가 권위있는 제자도와 예수를 따르는 불일치성간의 차이점을 여전히 묘사한다. 시작 이래 신자들은 그들이 일연의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거나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애는 반응을 일으켰다. 사랑이 인간상황에 가져오는 거룩한 능력 때문에 어두움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대적하고 무너뜨리려 했다. 사람을 참된 사랑으로 사랑하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어두움이 혐오하는 모든 것을 나타낸다.
확실히 요한은 고통과 고난으로 점철된 생애를 살지 못했다. 그는 신자들을 죽이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시대에 살았다. 다른 교우들의 두려운 죽음은 요한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다. 전통에 의하면 요한은 끓는 기름 속에 넣으려 했다고 전한다. 그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밧모섬 유배는 쉽게 죽음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도미시안 황제가 죽을 때 요한은 에베소 시에 돌아와 3년간 사역했다고 한다. 그는 독을 마시도록 강요당하여 해를 받다가 마침내 평안하게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