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사람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정, 도시, 지역, 소아시아, 로마, 온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먼저 한 사람인 자신의 변화가 돌파구이다. 자신이 먼저 변하면 이웃이 변한다. 야곱이 변하니 에서가 변한 것처럼, 에스더가 변하니 아하수에로 왕이 변한 것처럼 자신이 변하고 이웃이 변하는 영적 순서는 불변한 것이다. 말씀을 들은 사람의 변화는 저변에 처한 영혼들, 악령과 마술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그 힘이 뻗쳤다. 마술하던 사람들이 마술 책을 불태우는 일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시대가 어두우면 요행이나 신비에 기대를 걸고 평가 없이 흘러가는 대로 행한다. 아데미와 데메드리오 여신상의 본거지인 에베소시의 영혼들을 대변하는 모습이다. 그 우상들의 특징은 이스라엘의 바알이나 아세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부요와 번영과 쾌락의 신들이다. 현대의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는 그 시대 의 표현이다. 그리스도를 떠난 모든 기대와 비젼과 이상은 모두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영혼에 참 만족을 줄 수가 없다. 말씀을 받으면 혼란 속에 거하는 영혼에 변화가 온다. 영적 지진, 영적 폭풍이 일어난 것과 같은 변화다. 에스라 한 사람의 영혼의 불이 황무지 같은 땅을 개혁하려는 결심과 개인의 실천으로 나타났을 때 첩첩산중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던 것처럼 한 영혼이 말씀을 바로 받는 일은 그 자체가 부흥의 불과 부흥의 길로 나가는 것이다. 두란노 서원에서의 바울의 성경 강해는 그 도시의 저변에서 부터 듣기 시작하여 마침내 소아시아 전체가 말씀을 듣는 역사로 이어졌다. 그 여파는 항구도시, 에베소 지역의 불이 로마로 나가게 되었고 그 불은 여러 고난의 과정을 거쳐 온 세계를 향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흥은 영혼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말씀을 바로 듣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개혁이다. 이 불은 수 천년 후에 일어날 세계 민족을 겨냥한 불이었다. 성령의 부흥은 잠깐 붙다가 사라지는 불이 아니라 영원히 타오르는 천국의 불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흥은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원형은 아니라도 그 나라의 그림자이며 그 나라의 맛을 내는 모임이다. 교회가 성령의 열매를 맺힐 때 그 나라의 맛인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나타내게 된다. 땅에 있는 동안 교회는 죽음의 도시, 죽음의 사람들, 죽음의 문화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바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가장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부흥의 불로 가득 채워지기를 갈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