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께서 십자가 형틀에 매달린 성자를 버리셨다. 일순간에 벌어지는 정전사태 같이 버림당하심은 삼위 하나님이 당하신 최대의 고통이었다. 그리고 창조 세계는 3시간 동안 흑암에 둘러싸였다. 혹자는 그 때 일식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그것은 외형적 모습이고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절대 흑암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이 어두움의 십자가가 창조 전의 흑암과 공허와 혼돈보다 더 어두웠던 것은 흑암의 감옥에 떨어진 자기 백성을 구하시기 위해 지옥 고통을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하면 애굽의 흑암 재앙은 단지 싱징이었을 뿐이다. 혼돈과 공허만이 깔려있는 저주의 십자가 위에서의 6시간은 자기 백성의 구속을 종결시키는 순간이었고 “다 이루었다”는 선포는 성부의 만족함을 보실 뿐 아니라 구속받은 자기 씨들을 보고 만족하시는 복음을 선포하는 순간이다. 마27:45-56절은 이 흑암의 고통과 그 결과가 어떠한가를 보인다.
첫째, 세 시간의 어두움은 어떤 고통이었나? 무저갱의 흑암, 죄의 형벌의 흑암, 만유의 절대 흑암, 육체소욕의 흑암이다. 그는 이것을 모두 담당하신 것이다. 현실의 흑암을 모두 주께 맡겨라 다 처리했으니까 다 맡기고 믿고 고하라는 것이다.(빌4:6-7)
둘째,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두 가지 길이 생겼다. 첫째, 부활의 길이 생겼다. 주님이 운명하자마자 성전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갖고 지성소인 하나님 보좌로 나가신 길을 따라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열린 휘장을 통해 나감으로서 새로움과 소생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일순간의 흑암의 고통은 자기 백성에게 영원한 광명의 길을 열어놓으신 셈이다. 그리고 그가 별세하자마자 예루살렘 묘지의 문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살아났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승천하기까지 자신의 부활을 증거 했다고 기록한다. 그 다음의 변화는 양심이 살아나는 길이 생겼다. 몸의 부활은 이미 영의 부활을 증거 한 셈이다. 십자가형을 집행한 백부장의 죽은 양심이 악을 깨닫고 살아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이었다”고 소리쳤다. 이것은 그의 죽으심이 하나님을 만족시킨 증거이다. 하나님의 만족은 자기 백성의 선한 양심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십자가의 최 정점인 최대의 암흑은 성부의 최대의 사랑이 부어진 최대의 광명의 정점이다.(롬5:5) 성령은 오순절이전에 벌써 십자가 위에 계신 그리스도에게 부어졌다. 심판의 불세례를 받으심으로 자기 백성의 모든 흑암을 도말시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개인 개인이 당하는 어떤 문제든지 그 안에서 형통으로 나타나도록 되어있다. 이제 교회는 십자가 효능을 누리기 위하여 부지런히 땅에서 매고 묶는 일에 힘쓸 일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