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탄식

성도의 탄식이란 일종의 스트레스 표현이지만 영적으로 건강한 싸인이다. 부담을 안고 하나님 앞에 탄식할 때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기 때문이다. 시편 72편의 성도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주님을 알았다. 신자에게는 어떤 점에서 탄식이 필요한가?

첫째, 주님이 친히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현실의 정황을 파악하 지 못하고 겉만 보고 판단하던 제자들의 무지와 그렇게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은 가룟 유다의 발꿈치를 드는 가증스러운 배반을 아신 주님의 심령은 괴로우셨다.(요13:21) 주님이 그의 선한 양심의 레이더에 포착 되는 사탄의 궤계를 아시면서도 친히 그 고난을 다 당하시고 탄식하심은 이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기 때문이다. 나사로 무덤 앞에서도 그들의 불신앙을 보고 통분히 여기시며 우시기도 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전에도 죽을 지경의 고민으로 땀이 피로 바꾸어지는 고통으로 인한 탄식 기도가 일어난 것이다. 이 탄식은 십자가의 절규로 절정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모두 완성하셨다, 그의 탄식이 십자가 짐이었다. 그만이 하실 수 있는 탄식이면서 동시에 교회로 그 탄식에 참여하게 하시는 본을 보이신 것이다. 생명은 거룩한 탄식을 통해 낳아지는 것이다.

둘째, 신령한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선한 양심에 끌리는 문제를 가지고 탄식할 때 하나님이 친히 구해주시는 일은 성경에 가득 채워져 있다. 환난 날에 탄식함으로 주를 부를 때 건짐 받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다.(시 72:12) 산꼭대기에서도 풍성 한 곡식을 얻는 은혜가 탄식의 통로를 통해서 찾아오는 것이다.(16) 셋째, 능력을 받기 때문이다. 기도로 하늘의 비와 불을 끌어내리던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는 탄식은 생각지 않은 능력 을 체험하는 기회였다. 하나님이 친히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준비하 셔서 먹이시고 재우시고 하시다가 힘을 얻어 호렙산 굴에 나가 하나 님이 주신 사명을 확인하고 능력을 체험 한다. 폭풍과불과 지진이 지 나간 후 조용히 들리는 세미한 주의 음성을 듣고 속에서 흘러나는 능력을 받아 마지막 사역을 이루고 살아서 승천한다. 성도의 탄식이 능력을 체험하는 길이다. 스가랴의 예언대로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는 은총과 간구의 심령을 부어 주리라는 약속은 탄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슥12: 10) 현대 교회는 잔치 집보다 초상집을 더 잘 찾을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신령한 탄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