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에게 부어진 부흥의 영 – 에드워드의 부흥론 (5)

아브라함의 복인 성령의 약속은 그의 후손, 이삭과 야곱을 통해 계승되었다. 그래서 복음의 빛 아래서 아브라함의 생애를 칭의로, 이 삭과 야곱의 생애를 성화, 그리고 요셉의 생애를 영화의 그림자로 볼 수 있다.(Vos) 칭의와 영화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처음과 마지막의 사건이라면 성화는 생애를 통한 긴 과정을 필요로 한다. 루터의 개혁 이 칭의에 초점을 두었다면 칼빈의 개혁은 성화에 초점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령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의 일생의 모든 일들이 성화의 범주에 속한다. 그 중 야곱의 생애는 그 자체가 성화의 상징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브니엘에서의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기 전 까지 그는 육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 영적 무기력을 벗어나지 못했다. 거짓, 탐욕, 미움 같은 인간 수단이 앞섰다. 그러기에 많은 고난이 그에게 따랐다. 하나님의 목표와 전혀 다른 길을 갔기 때문이다. 야곱에게 성령이 임한 증거가 무엇인가?

첫째, 그의 마음에 거룩한 고민이 있었다. 얍복강 나루터에 홀로 남겨졌을 때가 그의 타락한 심령을 보기에 적절한 순간이었다. 모든 방법을 다해 이 어려움을 모면하려 했으나 그의 마음에는 평안 대신 근심이 가득했다. 종전의 근심과는 질이 달랐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살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령이 일하신 증거이다.

둘째, 그가 기도했다는 사실이다. 그 근심은 천사와의 씨름으로 변했다. 그 문제의 대답이 자기에게 없고 오직 여호와에게만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 간청하는 것이다. 그의 기도 제목은 내게 복을 달라는 것이다.(창32:26,29) 호세아는 그 상황을 그의 탐욕 때문에 울며 회개한 것을 해석했다.(호12:3) 성령은 복의 노란 자위를 보게 하셨다.

셋째, 그가 항복했다는 사실이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징계를 받는 중에도 놓지 않았다. 자신의 간사성의 수치를 다 드러내며 견디었다. 진정한 항복이었다. 성령은 언제나 자기부인의 관문을 통과하게 하신 다. 이 세 가지는 성령이 임할 때 나타나는 공통된 증거로서 한 마디 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탐욕의 껍질이 벗겨진 그는 에서를 만난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그의 겸손한 담력은 예측을 뒤엎고 에서를 변화시켰다. 부흥의 영이 임할 때 심령과 가정과 이웃이 변한 다. 성령의 복은 먼저 변화된 심령을 통해 밖으로 흘러 나간다.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의 약속이 이렇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부흥의 원리는 지금도 동일하다. 심령에 성령의 부으심이 있나 없나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