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안디옥에서 로마의 수도로 가는 도중에 익나티우스 감독은 “정말 나는 너희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로마의 야수들과 선한 싸움을 잘 싸우기를 바란다”고 기록했다. 70세 즈음 익나티우스는 사도적 믿음의 계승자인 속사도 중 하나로서 그 자신이 요한의 제자였다. 역시 그의 감독직을 베드로에게서 임명받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전설에 익나티우스는 마태복음 19장에 나온 예수님의 축복기도를 받은 아이였다고 말한다.
그가 고난을 당하고 정죄를 받은 후 익나티우스는 로마의 트라얀 황제 통치기간 (98-117), 코로시움에서 순교할 때 쯤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보냈다. 필라델피아와 드로아 사이에 있는 군대의 호위아래서 익나티우스는 풀리갑 감독의 후임으로 서머나 교회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처음 네 편지를 썼다. 훗날 두 교회에게 두 편지를, 폴리갑에게 한 개인 편지를 보내었다.
익나티우스는 “하나님 짐을 진자”, 혹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자” 란 뜻을 가진 데오포러스(theophorus)란 별명을 가졌다. 그는 이방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에 불충성한 책임을 지기 위해 선 재판정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통일에 초점을 맞추라고 응수했다. 그 시대의 모든 지도자들 처럼 익나티우스의 반역을 증거하기란 쉬웟다. 공직자들은 단지 감독의 설교를 듣거나 혹은 따르는 단순한 질문을 그에게 묻거나 혹은 로마의 적극적 충성을 다시 제안할 수 없는 테두리에서 새로운 능력있는 영적 운동이 일어난 것을 알게 하려고 성장하는 신자의 그룹에게 말하게 하는 것이었다. 익나티우스 때문에 마음이 삼위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는 믿음과 헌신의 죄 때문에 법정 처벌을 기쁘게 받아드렸다. 오늘날 독자들은 익나티우스의 편지에서 바울문서의 메아리를 아래 같이 들 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순수한 기쁨을 가진 가장 깊은 마음으로 문안하노라… 하나님 아버지의 충만한데서 너희가 많은 복을 받았고 영원히 계속되며 쇠하지 않는 영광을 즐기기 위해 영원 전에 에정되었다. 너희의 연합과 선택의 근원은 참된 고난인데 너희가 아버지와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당한 것이다. 익나티우스는 마지막 날이 되었음을 알았다. 그가 살든지 죽든지 아무 상관없이 익나티우스는 로마의 여행을 죽음의 행진이 아니라 하나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신자들을 재촉하기를 “계속 기도하며 자주 모여 하나님의 성찬을 나누며 그를 찬양하라고 했다. 이러한 하나님으로 사탄 권세는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익나티우스 감독은 후기 감독들이 즐기던 부와 권세를 알지 못했다. 그 시대에 한 감독은 지위가 확장되고 잘 조직된 교구의 지도자 보다 단일 회중의 지도자가 되기를 더 원했다. 온통 그리스도에게 헌신된 익나티우스는 교회를 가르치고 세우며 사도들을 장례하며 그들 문서를 모으고 황제의 미친 분노 앞에 서서 그 운동을 제제하려는 이교도들과 사기꾼들과 싸워야만 하는 세대의 사람이었다.
그들의 교회 교부들과 조상들은 이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큰 침묵에 관해 말했으나 익나티우스는 침묵에서 나온 말씀이신 완전한 생명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 그는 자신의 육체가 사자에게 찢기기까지 육신이 되신 말씀을 섬겼다. 로마로 가는 길에 그 노인은 교회에게 편지하기를 “너희는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 안에서 행복해야만 한다”고 한대로 모든 순간을 그렇게 살았다.
“지금 나는 한 제자로 시작한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불이나 십자가나 맹수의 공격으로 내 뼈와 몸이 부서질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버려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