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 전서 3:14에 교회를 진리의 집으로 비유한 바울은 교회를 세우는 두 기둥을 말씀(1:5)과 기도(2:1)라고 가르친다. 사도행전 6:4의 “우리는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리라”는 사도의 확신 속에서도 보여진다. 이 일을 위해 교회는 목사, 장로, 집사를 세운다. 그 중 집사 스데반은 그의 말씀과 기도 사역이 사도들과 같은 라인에 서있고 성경을 기록할 때 스데반집사의 사역을 성령이 사용하셨다.
그의 소명, 그가 언제 거듭났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초대교회의 부흥으로 복음을 들어 믿어 거듭난 것으로 추정하지만 집사의 임명은 성령이 불러 세우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을 소명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그를 개별적으로 부르신 것이다. 소명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다른 무엇보다 교회를 섬기기를 그렇게 소원하는 것이다.
그의 사역, 그가 한 일은 복음을 전하고 표적을 행하였고(6:8,10)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설교가 그리스도의 구속을 증거 한 사실이다. 소위, 구속사 설교의 원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구약을 뚫어 보는 안목이 바울의 깨달음과 버금간다. 그 예로 구약 이스라엘을 광야교회(7:38)라고 말한 것이나, 승천하신 예수를 인자라고 해석함은 다니엘 7:13절에 예언된 그 인자라고 확신한 것이다.(행7:55-56) 그들이 십자가에 죽인 예수님이 바로 인자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이 인자의 복음을 받아 전하는 공동체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깨달음이 있었는가? 이것은 자기 묵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령이 열어주어 깨달은 것이다. 그가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말씀)가 충만하고 덕이 충만한(칭찬 듣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섬김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의 목표, 스데반은 그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쳤나? 그는 설교 한번하고 순교 당했다. 그러나 그의 순교는 초대교회의 더 큰 부흥으로 이어졌다. 인자께서 그의 섬김을 통해 온 세계로 복음을 증거 하시는 교두보로 삼으신 것이다. 사울의 다메섹 변화는 스데반의 순교와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의 겸손한 섬김 속에서 맺혀진 열매이다. 제 2의 스데반이 바로 사도 바울이다.
그의 죽음의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그 속에 자리 잡은 것을 볼 수 있다. 악독들의 몰인정한 공격 앞에서도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다는 사실이나 돌에 맞아 고통이 따르는데도 무릎을 꿇고 기도한 사실은 십자가 지신 주님의 어린양 같은 겸손과 진실과 헌신을 보였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기도가 자기 영혼을 주께 부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은 사실이다.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말을 하고 숨을 거두었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기도와 같은 내용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인 것이다. 인자를 바라 볼 때 성령을 통해 그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목숨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인자의 복음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열방을 살리는 유일한 것임을 확신하여 기꺼이 그 일에 선제물이 된 것이다. 골방에서의 작은 섬김을 주님은 보시고 계셨던 것이다. 작은 섬김을 경시하는 이 세상에서 스데반 집사의 섬김을 따르는 개인, 가정, 교회는 인자가 이루시려는 마스터 플랜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