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 주신 주님의 약속에 “솟아나는 샘물”의 은혜가 있다. 둘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하셨다.
첫째, 이것은 죄 사함을 통한 구원을 가리킨다. 죄인이 먼저 받을 샘물의 은혜는 죄사함이다. 이것은 먼저일 뿐 아니라 구속의 중심이고 핵심이다 (엡1:7) 죄가 샘을 더럽혀 죽음을 가져왔고 생명의 통로를 모두 막았기 때문이다. 새물이 흘러나오는 영인의 마음은 죄책과 수치심과 권태로움 그리고 진노에 대한 두려웅로 채워졌을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딘 마음은 욕구에서 솟아나는 온갖 좋은 것을 솟구쳐 내어도 여전히 영혼의 갈증을 채울 수 없었다. 그 갈등의 원인을 아신 주님은 먼저 그의 죄를 지적 하시면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하셨다. 죄가 처리 되어야만 생수를 솟구 치심을 아신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죄인됨을 정직하게 고백할 때 즉시 구원을 받았다. 그의 고백 속에는 믿음을 포함한 것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 는`일을 일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분명한 것은 그가 죄사함을 받아 다는 사실이다. 죄를 인정함을 받지 않는 자의 행복이 그의 마음을 지배한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죄를 단번에 처리하셨기 때문이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죄가 처리된 사실은 솟아나는 샘물처럼 우리를 언제나 자유하게 한다. 무화과 잎으로 가리워진 아담의 방법은 항상 불안하였으나 대신 죽은 짐승의 가죽 옷이 든든한 것처럼 어린양 예수의 죽음의 효능은 죄사함의 강수를 항상 솟구치어 낸다. 이 샘물로서 우리는 참 만족을 얻는다.
둘째, 믿는 자에게 약속된 성령의 생수이다. 죄사함으로 시작된 샘물은 강수로 터져나는`것이 주님의 약속이다.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은 성령의 강수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장막절의 마지막 날에 누구든지 목마 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크게 외치셨다. 요한은 이 강수를 가리켜 성령이라고 해석했다. 정말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후에야 그 강수의 실상을 알게된다. 불 같은 성령, 비둘기 같은`성령 그리고 생수와같은 성령은 비유가 다를 뿐 모두 같은 은혜 곧 성령이 지배하는 현상인 성령충만을 가리킨다.
죄사함의 기본 은혜는 강수와 같이 넘치는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가게 한다. 수동에서 능동으로 정적인`상태에서 동적인 상태로 이끈다. 수가성 영인은 이 은혜를 동시에 체험하고 우물에 물동이를 던져 버리고 밖으로 달려가 이웃에게 자기가 만난 메시야를 증거하여 와보라고 도전하였다. 넘치는 은혜의 물결이었다. 성령의 넘는 은혜는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전매특 허가 아니다. 누구든지 목말라 하고 그에게 가기만 하면 반드시 받는다. 이 강수를 마실 때 새해는 더 풍성해진다. 그 강수를 전심으로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