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사이클론의 재난에 이어 금주에는 중국에 진시황의 왕릉 관광지로 유명한 쓰촨성(四川省)에 진도 7.8도의 강진으로 4만여명이 죽고 실종된 사태가 일어나 세상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진정한 소망이 어디 있는가를 찾게됩니다. 로마서 5장 8절-13절에 바울은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았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소망은 한마디로 완성된 구원이었습니다. 구원 혹은 구속을 빼 놓은 소망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망, 비죤을 꿈꾸고 나간다 할지라도 죄에서의 구원이 없는 소망은 참 소망이 아닙니다. 그 마지막은 허무이기 때문입니다. 밭의 소출이 풍성하여 창고를 짓고 영원토록 즐기리라는 한 부자의 터지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보내 열방에 흩어진 택한 자를 구원하는 경륜(계획)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경륜이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안에 있는 자는 아브라함의 복의 근원이 되어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삼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소망을 이룹니다. 구속 역사가 모두 마치는 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골자입니다.
또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 중요한 소망을 이루려고 성부는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시고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때로는 보슬비처럼, 때로는 불처럼 일하십니다. 이 사역으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현실화됩니다. 제일 큰 문제는 언제나 우리 자신입니다. 자신 속에는 언제나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정욕과 부패성이 돌덩이처럼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때로는 보이게, 때로는 보호색을 띄고 나타납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왕국을 꿈꿉니다. 경건을 이용하며 직분을 이용하여 소망 아닌 소망의 신기루를 따르는 것처럼 됩니다.
그러나 택한 자의 마음에 계신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심으로 참 소망의 길을 걷도록 능력으로 도와주십니다. 성령을 좇아 갈 때만 우리는 참 소망과 참 비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소망을 가진 자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산 소망입니다. 영원히 남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일시적 기쁨이 아닌 영원한 기쁨을 맛봅니다. 이것이 영생의 체험이며 이것이 성령 충만의 맛입니다. 이 땅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 소망과 기대를 거는 자가 아니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입니다. 이런 소망을 아는 자에게는 찬송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처럼 이런 산 소망을 갖고 성경에서 샘을 파며 기도 속에서 소망을 꿈구며 성령의 인도가 무엇인지를 배우기 바랍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때야말로 우리으 소망이 더 선명해지는 순간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우리를 잘 인도하실 것입니다. 정해 놓으신 영원한 목적지를 향해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