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가 성자를 버리신 이유

모리아 제단 위에 번제물로 놓인 이삭을 향한 아브라함의 칼이 아들의 심장을 겨냥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갈보리 제단 위의 속죄제물인 예수님을 향한 성부의 칼은 그의 심장을 찌르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구속의 십자가 중심에 일어난 실상이다. 사도 요한은 “다 이루었다”하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요 19:3)는 마침표로 간단히 설명한다. 성부가 자기 백성을 위하여 품에 있던 사랑하는 독생자를 버리신 것이다. 성부는 성자를 버리시고, 성자는 성부의 뜻에 절대 순종함으로서 우리의 구속을 이루셨다. 수많은 구약의 그림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두 완성되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자기 백성의 구원에는 이런 엄청난 사랑의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다시 한번 자문자답해 보자. 왜 성부는 성자를 버리셨는가?

첫째,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버리셨다. 하나님은 누가 영광을 도려야만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다. 오직 영광 가운데 거하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심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다. 창조 속에 보여진대로 하나님은 만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그의 뜻이다(롬 1:21). 그러나 그 영광은 죄로 인해 어두워졌고 그 영광을 인간과 사탄이 가로채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것의 회복은 죄를 해결하기 위한 대속의 방법뿐 이 세상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우리의 죄를 성자에게 대신 담당케 하여 영광을 받으시도록 성부는 성자를 버리신 것이다.

둘째,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성부의 구원 계획은 성자의 죽음으로만 성취되는 것이다. 빚을 갚아 의를 세우듯이 자기 백성의 죄를 모두 제하기 위하여 성부는 성자를 버려야만 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타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십자가의 절규는 성부의 심장을 찌르는 사랑의 표현이다. 성자의 심장을 찌르기 전에 성부가 먼저 그 찔림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이 구원을 적용하기 위하여 거부반은을 일으키는 우리의 육성 때문에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사랑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 자기 백성의 구원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심장에 못을 박으면서까지 구원한 사랑이 아닌가? 이렇게 우리의 구원은 값비싼 것이다.

셋째, 자기 백성에 대한 최대의 사랑을 나타내심이다. 창세기 1:3에 여호와의 신의 뜨거운 사랑으로 창조가 이루어진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확증인 십자가를 통해 새 창조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암탉이 유정란을 부화시키기까지 품는 것처럼, 성령의 뜨거운 산고의 사랑이 창조를 만들어내었듯이, 삼위 하나님의 품으신 사랑이 새 창조를 만든 것이다. 창조물 구석구석마다 하나님의 선하심 무한한 사랑이 묻어있는 것처럼 새 창조물인 신자의 일거수 일투족 구석구석마다 그 큰 사랑의 핏자국이 묻어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의 근거를 인간의 행위나 큰 믿음이나 헌신에 두지 않고 그것을 능가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엡 2:4-9). 자기 백성을 향한 성부의 사랑이 성자의 죽음을 통해 드러났으며 죽기까지 순종하신 성자의 뜨거운 사랑이 성령의 은밀한 사역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 엄청난 사건에 비해 성경은 종용히 한마디로 기룩하기를 “다 이루었다”고 언급한다. 성부가 성자를 버리신 해산의 고통으로 내가 살아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