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님 지상명령에 얼마나 순종하는지를 자주 살펴야한다. 마 28:19-20절은 주님이 남기신 유언으로서 그의 사역의 집합체적 교훈이며 명령이다. 이것이 분명히 교회에 맡긴 대 위임령이라면 교회 지체 인 우리는 스스로 이 명령에 얼마나 순종하며 얼마나 응답하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 당연하다.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병든 사람이며 문제를 가진 사람으로 진단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부르심의 목적이 천당가는 것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선교 사명의 도구로 부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는 약속은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듭난 성도가 이 땅 위에 살도록 허락 받은 것은 천당, 지옥을 결정하는데 신경 쓰며 살게 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로 주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고 모든 신자는 선교의 도구로 부름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선교에 초점을 맞추어야하고 교회의 나가는 방향은 선교에 심혈을 쏟는 것이어야 한다. 한 길이지 여러 길 중 한 길이 아니다. 교회 존재의 목적이 이 지상명령을 위한 것이라면 선교는 그 성질이며 본질이다.
선교란 단순한 전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것이다” 이 제자 삼는 일은 적어도 전도라는 것으로 시작하여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되게 하고 그 공동체 일원의 교회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말씀화 하도록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어디까지나 선교하는 성격으로 나타나고 선교하도록 되어있고 선교의 열매를 맺어야 정상적 건강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나라들 증 국민의 90%이상이나 되는 불교국이다. 자국민 300만이나 죽인 비극은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해골들이 골동품처럼 유리 상장에 들어있고 독사나 전갈에 물려 죽이는 그림들이나 수천의 사람들의 사진과 인적 사항이 교실마다 즐비하게 걸려있는 곳은 마치 벽재화장터를 방불케 한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사람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 나라 수도, 프놈펜에 개혁신학교가 세워져 금년 10월부터 첫 학기가 시작되는 일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 나라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일대의 신학생들을 훈련하여 영적 지도자들을 세우려는 프로젴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 교회도 작은 한 부분에 동참하여 기도와 가르침에 힘쓰는 것은 주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일이다. 이 교육 선교에 쓰임 받는 교회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