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전쟁이다

70여년 대치하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념의 전쟁 보다 더 치열한 것이 영적전쟁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용사로서의 하나님”을 많이 묘사한다. 실제로 거듭난 그리스도 인 삶은 전쟁의 연속이기 때문에 전쟁의식이 없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영적 혼수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든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믿음이란 단순한 이념 변화 정도가 아니라 신분 변화이기 때문이다. 흑암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전쟁이다. 말씀을 받는 일도 말씀을 제하려는 마귀와의 싸움이고 기도할 때도 역시 치열한 싸움이 생긴다. 겉 날림 기도가 아니라 심령을 통하는 기도는 언제나 전쟁을 통해야한다. 무엇보다 자기와의 싸움이 기도이다. 자기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성향, 부패의 성향은 편해지기를 좋아하고 육적 안일로 나가기를 기뻐한다. 이것과의 싸움은 기도자의 필수요건이다. 칼빈이 말한 기도의 4대 법칙인 “경외”, “회개”, “겸손”, “확신”에 대해 말하기는 쉬워도 기도시간에 이것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그 외에도 바른 교제, 바른 봉사도 이 영적 싸움이 아니고 되는 일이란 없다. 정말 “나는 이 싸움을 의식하는가?”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져야한다. 무엇보다 선교는 더욱 더 치열한 전쟁이다. 선교란 타 문회권에 있는 영혼을 대상한 전도이라고 한다. 말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습관도 다른 종족들을 향해 가서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믿어 세례 주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일이 선교이다. 선교는 우리 주님이 교회에 맡긴 대 위임령이다. 이것은 너무 중하기에 절대 권위로서 명령하셨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 곧 교회라면 반드시 이 전쟁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캄보디아 선교 현장 역시 전쟁이다. 그들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어 성경화한 현장이 되게 하려면 먼저 언어와의 싸움이 일어나야한다. 그 나라 언어인 크메르어는 너무 이상해서 여간 훈련이 아니면 익숙하기가 매우 힘들다. 어떤 이는 그 나라 말을 빨래줄 걸어 놓은 것처럼 한 문장이 단어와 단어 사이의 구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다. 그리고 환경과의 싸움이 있다. 적도 근처라서 찌는듯한 더위 때문에 육체의 연단이 아니면 견디기가 힘이 든다. 댕기라는 모기에 쏘이면 응급실로 가야만 회복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열악한 조건을 갖춘 나라이다. 더 중요한 싸움은 성장하는 경제로 오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나가게 하는 것 또한 우리의 싸움의 한몫이다. 돈이 들어가면 좋아지는 면도 있지만 그것이 복음의 순수성을 빼앗아 버리는 마력이 들어있다. 한국의 네비우스 정책의 자립 자조의 원리가 여기서도 적용되어야만 장래가 있다. 더 중요한 싸움은 무엇보다 선교사 자신과의 싸움이 절실한 곳이다. 말씀의 묵상과 기도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면 이 선교는 계속되지 못한다. 이 영광스러운 전쟁에 동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