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이라는 사자는 그 위용과 능력 때문에 성경 비유에 잘 이용 되었다. 그리스도를 유다지파의 사자로, 또 천상의 고급 천사로 보는 네 생물 중 하나도 사자로 상징한 것을 보기 때문이다. 인생에 지혜를 안겨 주는 전도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논하며 언제나 현실의 고삐를 놓지 않는다. 죽은 사자 보다 살아있는 개가 더 낫다고 하는 말은 현실을 충실하게 살라는 것이다. 사자와 달리, 성경에 나오는 개는 매우 천박한 수준의 짐승으로 비유 되기도 했다. 가나안 여인과의 일문 일답에서 우리 주님은 개라는 말을 사용하셨고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의 습성을 타락한 신자의 죄로 비유되기도 했다. 이 둘은 모든 면에서 비교될 수 없지만 생사와 관계할 때 살아있는 개의 가치는 죽은 사자의 가치보다 더하다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전도자는 여호와 경외 신앙을 살아있는 개에 비유하면서 과거에 집착하여 왕년에 무엇이네 하는 고정관념의 담을 뛰어 넘고, 소망과 비젼이라는 명목 아래 허황된 꿈 속에 사는 고무풍선 같은 삶을 경계하면서 현재에 성실한 삶을 추구하라고 한다. 미래의 행복, 장래의 부자의 꿈보다 현재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라는 것이다. 현실의 성실은 과거의 부족을 채우며 또한 우리의 영원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현실에 충실하나? 마음의 기쁨과 부부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생활이라는 전도자의 의중이 바울의 고백에서도 엿보인다. 먹으나 마시나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바로 그 삶을 가리킨다. 여기 세 가지가 분명해야한다.
첫째, 그리스도 중심한 삶이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를 중심하여 산다는 뜻이다. 모든 일에 그의 주인 되심이 철저히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세계를 체험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중심하지 않는 일은 그 자체가 무가치한 것일 뿐 이다. 둘째, 하나님 영광을 위한 목적이 분명해야한다. 그리스도를 중심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목적의식이 뚜렷해진다. 먹고 마시는 일상생활의 기본 단위에서부터 순간 순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셋째, 하나님을 즐기는 삶이어야한다. 분명한 목적은 과정까지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현재 하나님을 즐기는 생활이 신자의 행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는 철저히 실존주의적이어야 한다. “지금 여기서”라는 삶에 감사하고 견디어 하나님 중심을 배워갈 때 죽은 사자보다 살아있는 개의 행복을 아는 것이다. 한 마리의 개일지라도 살아있기 때문에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감사하는 가나안 여인의 심정이 우리 것이어야 한다. 거기에 행복의 강수가 흐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