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0편은 참 감사가 무엇인가를 가르친다. 궁정 문에 들어가며 감사하고 궁정에 들어가서도 감사하는 일 곧, 감사로 충만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것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서신에서 가르친 교훈과 통한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 (살전5:18)”을 구약에도 요구함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구원 반열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감사는 하나님과 그의 성품과 바른 관계를 가질 때 성령의 힘으로 맺히는 열매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살아있는 감사란 어떤 것인가?
첫째, 감사의 원천 – 우리는 시인처럼 하나님과 그의 세 가지 성품 때문에 감사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감사의 원천이다. 성부는 자기 백성을 위한 구원 계획을 세우셔서 그 아들을 구원의 제물로 허락하셨고 성자는 기꺼이 순종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고 그리고 성령은 그 구원을 자기 백성 하나 하나에게 적용하셨다. 이 놀라운 구원하심이 모든 감사의 근거이다. 나아가, 그 구원은 하나님의 성품의 표현이다. 어떤 성품을 통해 나타났는가? 1) 그의 선하심이다. 그의 착하심이 온전한 구원의 배경이다. 2) 그의 사랑이다. 나 같은 죄인을 건지신 구원은 그의 사랑이 유일한 근거이다. 그는 구원의 모든 일을 사랑으로 이루셨다. 그의 자원적, 무조건적 그리고 능동적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리 구원은 성립될 수가 없다. 3) 그의 선과 사랑과 연결된 신실이다. 이것은 모든 성품의 기초요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신실이 없는 선, 신실이 없는 사랑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실이 우리 구원의 처음과 마지막이다. 성령은 그의 신실하심을 적용하여 그 성품을 맛보게 하신다. 2000년 전 사건을 본 일도 없지만 시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형편에 꼭 맞는 성품을 맛보게 하심으로 감사하게 하신다.
둘째, 감사의 관계 – 그의 성품은 우리를 통하여 아름답게 나타난다. 어떤 관계인가? 1)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통해 나타난다. 부정모혈로 나를 지으시고 죄로 죽은 나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새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신자는 이중 창조자가 하나님이심을 안다. 2)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나타난다. 주인은 책임지고 종은 그저 믿고 순종할 뿐이다. 그것은 절대 절망에서 건져주신 그의 구원 때문에 감격스러운 감사의 순종이 따를 뿐이다. 3) 왕과 신하 관계이다. 왕은 명령하고 신하는 그대로 준행한다. 왕권이 나타나는 통로가 신하이다. 4) 목자와 양의 관계이다. 양의 성장을 목숨을 내대고 책임지는 목자의 절대 보호를 약속받은 자가 우리이다. 이런 4중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은 자세히 나타나고 우리는 그 맛을 보고 감사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 입술의 감사와 얼굴의 희열과 혀의 새 노래가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산 제물인 것이다.
어느 해보다 추수 감사를 하기 어려운 때일지라도 산 감사의 제물을 드릴 때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