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교회는 빛과 어두움을 분별할 기능을 가지고 있다. 거듭날 때 성령이 오셔서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빛으로 태어났기에 어두움을 쉽게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은 양심이 살아났기에 언제 어디서나 빛인지 어두움인지를 쉽게 알게된다.
빛은 비유이다. 빛으로 부름받은 교회는 자연히 빛의 열매인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나타내야 한다. 이 셋은 깊이 결속되어 있기에 착함 없는 의와 진실을 생각할 수 없고, 의가 없는 착함과 진실은 거짓이 된다. 그리고 진실 없는 착함과 의란 존재할 수가 없다. 의와 착함은 진실의 뿌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셋은 하나님 사랑의 본질적 요소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다는 것이다. 이 성품이 그리스도인 안에서 맛보아지고 밖으로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 구원의 계획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신자는 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져야 하고 그리스도 형상의 본을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 착하며 의로우며 진실하셨다. 예를 들어보면 한 문둥병자를 고칠 때에도 왕으로서 그의 의로운 뜻을 존중하는 그를 귀히 여기셨고 선지자로서 진실된 그의 간구를 열납하셨으며 제사장으로서 소외된 그를 즉시 치료하시는 긍휼을 베푸는 착함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새사람의 변화 모습은 바로 이것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구약의 3중직인 선지자, 왕, 제사장 사역의 독특성이 이 셋과 관계된다는 것은 정말 기이하다. 왕은 의를, 제사장은 착함을, 선지자는 진실의 독특성을 가져야만 제 구실을 하게 된다.. 이것을 상실한 자는 그 순간부터 진정한 왕, 선지자,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이 셋이 그리스도 안에 완성되었고 그 안에 있는 신자 안에서 완성되었고 그리스도 형상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 마침내 하나님 나라 안에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분명히 하는 빛의 열매는 바로 신자의 형상이며 성품이어야 한다.
빛의 열매를 맺히지 못하도록 하고 들 포도를 맺히게 하려고 원수의 공격이 너무 많다. 그들은 언제나 거짓교훈으로 공격한다. 거짓 교훈을 수납하면 그 때부터 그 열매는 떨어진다. 그 혼란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 자신이 빛이 되기에 충실한 것이다. 이것이 신자가 어두움을 책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먼저 빛이 되어라 그러면 흑암은 저절로 물러가도록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