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교회의 부흥을 현대교회에 접목시키는 구체적 내용을 5가 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부흥의 자아상을 가져야한다. (2) 말씀을 접촉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3) 지속적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4) 전도 실천이 일어나야 한다. (5) 묵상시간을 습관화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다섯 가지 중 성경적 교회의 아름다움을 교회가 간직하고 그것을 이루려는 사모심을 가지고 고민과 수고를 들여야 한다. 성경이 그려주는 교회 자아상을 우리는 에베소서를 통해 발견한다. 거기서 우리는 구속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는 아름다움을 본다. 하나도 얻지 못한 사람처럼 애걸복걸하는 모습은 성경의 교회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은혜와 복을 발견하고 찬송하는 모습이 교회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감옥의 악조건 속에서도 바울 사도는 찬송할 수 있었다.(1:3) 1:4-13절에 한 문장으로 나타나는 그 찬송은 성부의 구속 계획과 성자의 구속 성취와 성령의 구속 적용으로 요약된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자 안에 주어진 구원을 바라보고 감동하며 찬송하는 것이 참 부흥의 모습이다. 무엇 때문에 찬송하나? 건물의 웅장함, 많은 숫자, 재정의 풍성함, 조직체의 기막 힌 움직임 그리고 장래의 희망찬 비죤 등을 찬송할 수 있으나 그것이 구속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찬송의 근거라 는 말이다.
타락한 교회는 언제나 본질적인 것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목숨을 건다. 창세 전 계획된 하나님의 구속의 성취가 내게 적용되어 지금 구원받은 자가 된 사실 하나만으로 찬송하는 것이 교회의 부흥이다. 아무리 다른 조건으로 찬송해도 그 속에 구속의 가치를 모른다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신자의 마음에 항상 그려야하는 부흥의 자아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속이어야 한다. 이 그림이 말이나 생각이나 일에 언제나 묻어나야 한다.
현대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부흥의 그림을 아름답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곳에도 구속의 그림이 강조되어야하며 큰 시스템을 가진 교회 속에도 구속이 우선이어야 한다.
이 부흥의 그림이 우리 속에 뭉개구름 처럼 솟아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