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생명의 효능

부활하신 주님은 어떻게 신자 안에서 또 만유 안에서 일하시는가? 구약 시대나 신약시대에서도 일하셨고 자연만물과 사람의 육체, 정신, 그리고 감정 속 에서도 여전히 일하신 주님이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교회 안에서 그 효능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11번 이상 나타나신 것은 단지 기이함을 보이려는 것 외에 어떤 목적이 있는가?

첫째, 성경대로의 구원 완성을 선포하는 것이다. 주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부활 예언은 이미 구약에 예언한 것을 재차 강조하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잡히실 때나 심문받으실 때나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내가 목마르다는 한마 디 하신 것도 성경을 성취하려는 것이었고 성경 성취의 흐름을 따라 행하셨다. 숨이 가쁘고 옆구리에 피를 흘리며 사지관절을 도려내는 통증을 느끼는 자리 에서도 성경에 집중하셨고 부활하신 이후에도 주님은 성경대로 살아나셨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신 것이 복음이다.(고전15: 1-3)

둘째,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다. 믿음이란 대상이 분명히 알려질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주님이 죽으시고 살아나신 사실 사건이 증명될 때 믿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도마의 의심은 꼭 나쁜 것으로 만 볼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의 확 인하려는 의지가 담긴 의심은 주남을 “나의 하나님”으로 아는 경험적 자리로 나가게 했다. 진정한 확신은 진정한 의심을 필요로 한다.(바빙) 그가 못 자국과 창자국을 보고 만졌다고 믿은 것은 아니다. 그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눈을 뜨게 해 주셨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의 복을 선언하셨다. 주님의 부활이 사실인 자체가 믿음의 대상인 것이다.

셋째, 위로를 주시기 위함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 안에 살아계셔서 일하시 는 분으로 찾아오셨다. 낙심 속에 있는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나타나셔서 친히 조반을 준비하시고 초대하신다. 얼마나 자상한 모습인가? 고기잡는 기적을 행하신 주님은 그들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려고 끊임없이 일하신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위로만이 원동력이 된다. 마치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에게 나타난 위로처럼 그들을 싸매시고 위로하신 것이다.

넷째, 일거리를 주시기 위함이다. 부활의 생명은 언제나 죄 사함을 동반한다. 제자들을 위로하고 믿게 하시고 또 온 세상을 향해 죄 사함의 소식을 전하는 일거리를 주시러 찾아오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이 이렇게 성취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때 부활의 주님은 그 속에서 언제나 강력한 능력으로 일하시는 것이다.

내게 복음 전할 능력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나 같은 죄인을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