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섭리 신앙

평범한 생활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심을 알고 거기에 겸허히 순종하는 것이 섭리 신앙이다. 주님의 가르침을 근거할 때 보잘 것 없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 (동전의 명칭)에 거래되는 것이나 머리털이 희고 검게 되는 것,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는 한 세포의 생사도 하나님의 허락으로 됨이 분명하다. 사도 바울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되어가는 섭리를 믿었다. 전도문이 닫히고 열리는 일, 누구를 만나고 못 만나고 하는 일, 여러 번 가기를 애쓰나 길이 열리지 않아 미해결로 남는 일 그리고 복음의 일꾼이며 제자인 디도가 죽을 병에 걸렸고 디모데가 만성 위장병으로 시달리는 일도 모두 하나님의 손아래 있음을 믿는 것이 섭리를 아는 신앙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하나님께로 오는 위로를 가진 자요, 기도하는 자요, 감사하는 자로 살 수 있었다.(고후2: 14)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지 하나님이 친히 간섭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섭리는 복음의 승리, 신자의 승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겨냥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이기게 하신다는 절대 약속 안에서 평안을 누렸다. 섭리를 믿고 사는 신자는 언제 어디서나 생명과 사망을 구분시키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산다. 향기의 삶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혼잡케 아니하고 그것에 충실한 삶이다. 한 마디로 매순간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섭리의 범위는 시간과 공간과 상황에 구애됨이 없이 포괄적이다. 항상 각처에서 주님의 손길은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는 약속은 언제 어디서나 현재 진행형이기에 섭리의 품에 안긴 신자는 진정한 위로를 누린다. 감옥살이 하던 요셉이 그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알았기 때문이고, 복음 때문에 매를 맞고 옥에 갇힌 바울도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찬미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자 개인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경기침체가 영혼침체로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입 맞출 줄 알아야한다. 현재의 장벽, 괴로움, 답답함, 풀려지지 않는 가정과 직장과 건강 의 문제도 하나님의 크신 손길로 일하고 계심을 인정하고 현실을 겸허히 받아 들여 주의 뜻을 구할 때 그 결과는 반드시 최상의 것을 주신다는 사실 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한 베드로의 맹세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자리로 나가게 한 것이다.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이후에는 따라 오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그대로 용납하고 그 위에 섰더라면 더 아름다운 결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항공모함처럼 시속 5마일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을 볼 수 있다면 많은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