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이후 이신칭의의 진리는 개신교의 근본을 이루는 교리가 되었다. 이것은 구원 교훈의 진위를 가리는 기준이 되어 행함의 구원 혹은 믿음의 구원을 나누는 진단점이 되었다. 이 칭의론이 오랫동안 강조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성화론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아니하고 자기 능력으로 살아가는 법에 익숙하게 되었다. 그 결과, 성령의 열매로서의 생활보다 육욕의 열매를 맺힘으로 심각한 외식의 자리에 떨어져 타락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 구약 이스라엘에게 오랫동안 일어난 것이고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으로서 오늘날 신자 속에 독버섯처럼 자리잡은 외식주의를 만든다. 그래서 칭의가 성화에 기초가 된다는 것은 모든 삶에 믿음의 의로 행하는 것이 되어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아갈까?
첫째, 믿음으로 구원받는 칭의가 구원의 기초임을 알아야한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 선행 곧, 자기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자아에서 나온 모든 것은 그 자체가 죄이다. 그래서 보상 심리로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진 힘을 쓰는 일을 많이 본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선행으로 자기 죄를 대치하려고 한다. 자기 행위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의가 그리스도인에게 발견되어져야한다. 자기의 힘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이 영광스러운 진리는 성령의 역사로 수난적으로 순종되어지는 일이다. 이것은 신자의 생애에 최고의 기적 중 하나이다. 나 같은 죄인의 마음에 죄인임을 알게 하시고 구주는 오직 예수와 그의 죽음의 공로뿐임을 알고 신뢰하는 그 용단은 자력에서 나오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이 주신 값진 선물이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알고 겸손하게 된다. 주 예수를 믿는 것만이 죄인이 의인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둘째, 구원받은 후 곧, 칭의를 받은 자는 어떻게 사는가가 우리의 공통된 관건이다. 믿음으로 시작한 것을 어떻게 행함으로 이루는가? 만일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자력으로 구원을 이루려 한다면 그는 은혜의 삶을 알지 못한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원리가 구원 이후의 삶이기 때문이다. 하박국이 깨달은 진리,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확신은 바울 사도와 동일한 확신으로 구원받은 자의 긴 여정을 바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지침이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고 밭에 소출이 없어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현실의 경험은 믿음의 행함의 성격을 보여준다. 믿음의 삶이란 오직 하나님과의 연합된 관계를 힘써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서 언제나 하나님에게서 오는 자양분을 당겨 그것으로 살아간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모든 방면에 깊이 배워 구원의 풍성한 열매를 만끽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