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들음

건강한 신자, 건강한 교회에는 망원경식의 말씀상고도 중요하지만 현미경식의 관찰 역시 중요하다. 신자 구원의 마지막 접촉점이 바로 말씀을 듣는 일이다. 그래서 롬10:17에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한다. 구원, 부흥, 새로움에는 말씀 들음이 중요하다. 말씀이 구원의 내용이라면 들음은 이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접촉점이다. 들음에 관해 몇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첫째, 들음은 본래 순종을 전제로 한다. 히브리어의 아세르란 말은 순종을 생각하고 듣는다는 뜻이다. 들음과 순종을 같은 뜻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는 자는 순종하게 되어있다. 순종함은 거기에 바로 들은 일이 있다는 증거이다. 사무엘이 부르는 음성을 들을 때 순종하려는 태도로 받았다. 옥토에 떨어진 씨의 30, 60, 100배의 결실도 말씀을 잘 듣는 일로 시작한다. 들을 때 잘 깨닫고 깨달을 때 순종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하와의 죄는 금단의 열매를 따 먹는 것 보다 앞서 사탄의 말을 들었다는데 있었고 더 앞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한데 있었다. 사람이 무엇을 듣느냐가 삶을 결정한다.

둘째, 들음의 대상은 성경이다. 무엇을 들을까? 그리스도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으로 더 구체적으로 내가 읽은 그 구절의 문장과 단어이다. 그것들이 함축한 사상과 내용이다. 그것을 들어야한다.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의 사건보다 조용히 들려주시는 그의 말씀을 음식 먹듯이 먹고 마시는 들음이 더 소중하다. 후자가 없다면 전자는 지나가는 비에 불과하다. 그래서 야고보는 성내기는 더디하더라도 듣기는 속히하라고 했다. 무엇을 들어야하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들음의 대상을 잘못 두어 망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셋째, 들음의 영향력은 전인격에 미친다. 말씀을 들으면 곧이어 마음에 이른다. 먹은 음식이 식도를 통해 내려가 소화 되듯이 말씀은 먼저 지성, 감정, 의지의 총화인 마음에 머문다. 이 마음을 영혼이라 하기도 하고 영 혹은 속사람이라고 한다. 퓨리탄들은 애정(affection)이라 표현 했다. 말씀이 전인의 중심에 임하여 순식간에 분별력이 이루어져 택하고 버리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영혼에 직접 영향을 미쳐 믿음을 강하게 한다. 그것이 전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미한 주의 음성을 들은 엘리야는 낙심 속에서 사명을 께닫고 용기가 솟아나 죽겠다던 사람이 살아 승천하게 되었다. 말씀을 들어야 살길이 생긴다.

넷째, 들음으로 그리스도와 깊이 연합 된다. 들음은 믿음의 강력한 표현이다. 감사와 찬양이 믿음의 표현이듯이 말씀을 듣는 것 역시 믿음의 표현이다. 그 믿음은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깊이 연합하게 한다. 주님이 정(靜)하면 나도 정(靜)하고 주님이 동(動)하면 나도 동(動)하는 세밀한 연합 즉, 하나이 되는 자리로 나가게 한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하는 변화라고 한다. 말씀 들음의 은혜가 개인에게 일어나고 교회에 일어날 때 그 자체가 부흥임을 이해해야한다. 에베소교회는 다른 무엇보다 말씀 들음의 운동으로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