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의 특징인 송아지처럼 일하시고 마침내 제물이 되신 우리 주님은 자신의 사역을 어떻게 이루어 가셨는가? 하나님 나라의 왕의 사역은 말씀을 잘 듣고 받음으로 시작하여 완성시키는 방법을 제시하셨다. 이것은 돌발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고 에덴동산에서 부터 아담에게 요구하신 방법이었고 구약 수천 년간 그 방법을 통해 일하셨던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으나 마귀의 말에 더 솔깃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계속 듣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창3:1-2,6)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그 왕은 말씀을 듣고 영접하고 그것에 의지함으로 사는 것을 택하여 그 나라의 구원을 완성하셨다. 이것은 그 왕이 본을 보이심과 동시에 그 나라 백성의 승리의 본이기도 하다. 그래서 막4:13-25절에는 네 종류의 밭의 비유를 통해 들을 귀가 얼마나 복된지를 가르치셨고 등경 위의 등불처럼 은밀한 가운데서 들은 주의 말씀이 반드시 드러나심을 가르치셨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 친히 일하시기 때문이다.
첫째, 말씀을 잘못 듣는 자란 누구인가? 비유 속에 나타난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의 밭은 말씀을 잘 듣지 못한 점이 공통점이다. 길가와 같은 마음이란 말씀에 무관심한 마음이고 돌밭이란 문제를 만날 때 말씀을 포기하는 마음이고 그리고 가시떨기 밭이란 말씀 때문에 재리, 염려, 일락의 유혹이 올 때 말씀 따르기를 포기함을 가리킨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잘 듣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며 이것은 말씀을 들을 귀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말씀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을 뜻한다. 야고보의 권면대로 말하고 성내는 것은 더디 하고 말씀을 듣는 일에는 속히 해야 한다. 성경을 통해 들리는 세미한 음성(적용된 말씀)은 귀가 고장 나면 잘 듣지 못한다. 그래서 방해하는 요소들을 찾아내어 차단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속의 작은 근심, 습관적인 죄, 육체의 소욕 혹은 교만한 마음일 수 있다. 작은 불이 전체를 불태우듯이 자기 속의 육체의 소욕을 제하는 자가 말씀을 따를 수 있고 한마디 말씀에 성실한 자가 죄를 이길 수 있다.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와 악인의 꾀를 피하고 이기는 것은 오직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 자가 경험하는 복이다.
둘째, 잘 듣는 자란 누구인가? 옥토에 떨어진 씨처럼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열려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다. 성경은 항상 생명과 능력과 은혜와 평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문제는 이것을 받는 자의 태도에 있다.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두고 성경으로 말하게 하라. 그러면 들려온다. 들으면 마음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럴 때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 생긴다. 한편으로는 경계하고 다른 편으로는 전적으로 순종하게 된다. 이것이 말씀을 섬기는 방법이다. 그럴 때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 그 결실이란 1) 인격의 변화 2) 전도의 열매 3) 임재의 능력 4) 문제해결 5) 치료의 역사를 가리킨다. 그 중 중심된 열매는 그의 속사람이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열매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갖는 것이다. 주님은 항상 교회가 말씀을 잘 듣는 자로 있기를 원하신다. 이 사람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