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충성을 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서원을 지킬 수 있을까? 첫 번에는 충성할지라도 다른 모든 것들은 조건적이 될 것이다. 애굽 상류, 더베 출신으로 로마 군대 중 6600명의 군인 중에서 활동하며 신병 훈련을 받은 한 젊은 콮틱 크리스챤이 하나님에 대한 첫 번 충성을 맹세한 후 황제에 대한 충성 맹세를 강요받았다.
더벤 군단의 기록이 희미하지만 가끔 학자들에 의해 시비가 엇갈렸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의 증거는 그 사건 후 64년이 지난 350년경, 옥투덤 감독, 데오돌에 의해 알려졌다. 490년경까지 그들 이야기가 기록되지 않다가 리온의 감독, 유체리우스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 두 감독에 의해 그 더벤 군단의 이야기는 일찌기 알려진 가장 놀라운 고독과 의무와 소망의 이야기 중 하나로 믿음의 역사에 남게 되었다. 마우리투스(그를 기념하기 위해 스위스에는 성 마우리투스라 불리움)가 지휘한 그 군대는 고올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어 서쪽으로 행진하도록 맥시미안 황제의 명령을 받았다. 물론 그들은 복종했다. 오랜 행진에 간단한 군대의식이 따랐다. 맥시미안은 다른 황제과 마찬가지로 매우 고집불통의 사람이었다. 승리를 기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신성시하도록 교활한 방법으로 모든 군인에게 맹세의식을 갖게 했다. 그 때 벌건디 지역의 모든 크리스챤들을 근절시키려는 명을 내렸다.
마우리투스는 자기 군대가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그들 양심을 따라 주둔지에서 철수하여 다른 부대가 대신 하도록 요청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겼기 때문에 세례의 첫 맹세를 더럽히지 않는 순결자들을 죽일 수 없었다.
한 지휘관의 이런 반응은 반란 죄라는 명목으로, 명령을 받은 총 지휘관의 수치로 여겨져 10명의 더베 지역 사람들이 살해를 당했다.
그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다. 황제 군인 중에서 뽑힌 660명이 또 죽임을 당했다. 그들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그 군단은 맹세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믿음의 형제들을 칼로 칠 수 없었다. 맥시미안은 둘째 칙령을 내렸다. 또 다른 600명의 군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21세기 독자들은 더베 군단의 영혼을 통해서 믿음의 타협에 대한 경종을 삼아야한다. 그들은 바른 선택을 했다. 그들은 방어했는가? 명령에 타협했는가? 또 대량학살을 자행했는가? 마우리투스와 그 부하들은 군인이 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이 충성문으로 맥시미안에게 분명히 응답했다.
“황제여 우리는 당신의 군대일 뿐 아니라 참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우리는 그대에게 군인으로서의 섬김과 복종을 하지만 그대가 그를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창조자요 주인이신 그 분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반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한 것처럼 모든 일에 기꺼이 복종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대의 원수가 누구든지 대적하지만 우리의 손으로 순결한 크리스챤의 피를 흘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대에게 맹세하기 전 먼저 하나님께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다면 두 번째 맹세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크리스챤입니다. 우리는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 고백합니다. 우리는 칼로 죽는 우리 동료의 살해를 지켜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울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상을 생각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이나 다른 어떤 악행도 우리는 행할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 손에 무기를 가졌으나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죄를 짓는 것 보다 순결자로 죽고 싶기 때문입니다.”
맥시미안은 그들의 담대함에 놀라 자기 제국을 위한 그 충성을 보고 기뻐할 수 있었을 텐데, 도리어 분노하여 그 군인들을 모두 죽이도록 명을 내렸고 그 형이 286년 9월 22일에 집행되어졌다. 그 군인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숨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주둔지를 이탈하지도 않았다. 거의 6000명 군인들이 맥시미안에 대한 둘째 맹세를 거절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첫 번 맹세를 지켰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수세기 후 515년에 벌건디 왕의 배려로 그 순교자들이 순교한 곳에 한 수도원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