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리들리 (1500-1555), 휴그 래티머 (1485-1555)

이 두 목사들의 생명을 태운 불은 이교에 빠진 영국의 토양을 깨끗이 씻겠다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그 대신 그 일은 학자들을 침묵에 떨어 뜨리고 신자들을 정죄함으로 인간주의를 강성시켰다.

니콜라스 리들리와 휴그 래티머는 둘 다 그들이 맡은 임무에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리들리는 런던 감독으로 대주교 토마스 크레머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는 크레머의 공동 기도서에 영향을 미쳤고 런던 도시 안에서 목회를 시작하여 병원과 학교를 세웠다.

특출한 설교자, 래티머는 일찌기 토마스 빌레이에 의해 전해 듣고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눈물을 흘리며 개혁 믿음으로 전향한 한 열심있는 캐톨릭 교인이었다. 래티머는 난폭한 왕, 헨리 8세의 자문이었고 헨리 계승자, 에드워드 6세를 양육한 선생이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죽자, 헨리의 첫째 아내의 딸, 메어리 튜도가 왕위를 계승했다. 개혁자들의 손 안에 있는 영국을 청결케하여 로마로 복귀시키는 절호의 기회가 된 것이다. “피 흘리는 메어리”라는 별명을 가진 새 여왕은 리들리, 래티머 그리고 크래머를 체포했다. 그녀의 칙령으로 죽음에 떨어진 사람이 모두 300여명이 되었다.

각 사람이 교회와 성례에 관한 그의 칙령을 듣고서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화형에 처하기로 결정되었다. 신장이나 나이에 관해 사람들의 진술이 있었어도 하나님께로 나온 명령으로 생각하는 여왕의 진노에서 그 이교들을 구출시킬 수 없었다. 여왕의 법정에서 판결할 때 그들은 형틀을 직접 준비하게 했다. 검게 탄 대장장이가 손목에 사슬을 고정시키려고 리들리에게로 다가갔다. 제복을 벗은 그 감독이 대답하기를 “착한 친구여, 그것을 힘있게 고정시켜라 육체는 그런 일을 당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집행관들이 리들리의 발에 불에 달궈진 수갑을 채우자 래티머는 그에게 돌아서서 말하기를 “리들리 박사님 하늘의 위로가 그대에게 있기 바라며 그대로 받으십시오. 나도 석방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서 우리의 등불이 오늘 켜질 것입니다.” 라고 했다.

래티머는 빨리 죽었으나 리들리에게 붙은 불은 매우 약하였다. 그의 하체는 태워졌으나 상체를 태우지 못했다. 고통 속에 있는 그는 “주여, 이 불이 나를 태우지 못하오니 내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라고 간구했다. 드디어 불꽃이 그의 목 주변에 달린 화약에 붙었고 그의 생명은 땅에서 하늘로 옮겨졌다. 토마스 크래머는 대 주교직을 박탈당하고 불의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그 때, 친구들의 순교 장면을 런던 탑에서 지켜보았다. 마침내 그 역시 화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