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시는 죄악이다. 모든 죄악의 뿌리가 교만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아담의 죄며 인류의 죄며 세상 마지막 심판 요인이 되는 죄악이다. 그래서 히포의 어거스틴 (Augustine) 이 그리스도인이 가질 첫째 덕이 겸손이며 둘째 덕도 겸손이고 셋째 덕도 겸손이라고 한 말은 진리이다.
무엇이 교만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보지 못하는 마음이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 은혜로 되었다는 바울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못한 자는 저절로 교만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가 가진 것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어느 하나도 내 힘으로 되었다고 말할 것이란 하나도 없다. 먹고 마시고 하는 것에서 움직이는 건강, 오늘이란 시간은 모두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이다. 그러고 보면 어느 하나도 하나님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이런 은혜 의식이 없을 때 인생은 교만해진다.
교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지 않을 때 생기는 열매이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니까 자기가 주인이란 말이다. 하나님을 이용하고 자기를 높이는 것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 인생은 망한다. 느브갓네살 왕은 120도나 되는 큰 영역을 다스리는 바벨론 군주였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나라의 부강이 자기 힘으로 되는 줄 착각하고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고 자화자찬 하자마자 하나님은 즉각 그를 낮추셨다. 그렇게 영특한 군주에게서 지혜와 총명을 뺏을 때 그는 들짐승처럼 풀을 뜯고 이슬을 맞아도 아무렇지 않은 들나귀처럼 되어버렸다. 그 후 하나님이 주셔서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국권이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이해와 시인은 매우 중요하다.
교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치 않을 때 일어나는 죄악이다. 바른 교훈에 착념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영광을 보는 눈을 갖는다. 그 세계를 본 자가 어찌 교만하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은 그의 마음에 죄악이 싫어지고 오만한 자리가 위태로운 자리임을 알아 그 자리를 피하기 때문이다.
불황의 때야말로 그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그의 무한한 은혜를 감사하는 겸손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을 배우는 절호의 기회이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