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과 곤고를 병행하게 하심으로 장래를 알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는 심판에도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아들을 믿으면 즉시 구원을 받으나 믿지 않으면 즉시 정죄를 받는 단호한 심판은 대체로 헤아려알지 못하는 형태로 나타난다.(요3:17-18) 이것이 하나님의 기이한 지혜이고 자기 백성의 온전한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이다.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알곡까지 다칠 것을 염려하는 자상한 하나님의 손길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기이한 심판의 손길은 북쪽 이스라엘 왕조를 통해 그림을 그리듯이 보여진다. 그 중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심판이 그러했다. 성령은 열왕기상 기자를 통해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첫째, 여로보암 왕조를 무너뜨린 바아사와 그의 친족과 친구를 모두 죽이는 시므리의 행동(16:11)은 하나님을 노하시게 한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었다.
성령은 여로보암의 악행을 카운트하시다가 이때 죄 값을 갚으신 셉이다.
둘째, 시므리가 오므리 손에 죽임당하는 일도 그 기준은 여로보암의 우상숭배 죄인 것을 분명히 한다.(16:19) 시므리가 술취한 엘라를 죽이고 쿠테타에 성공하자 그의 군대 지휘관 오므리가 그를 포위하자 그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서 타 죽는다. 그리고 오므리는 또 다시 일어난 디브니의 반란을 제압하고 왕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직접 단행되는 그림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빙 돌려 스스로 반란을 일으키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자살하는 일을 본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 스스로 욕망을 따라 행하게 하심으로 써 멸망의 길을 허용하신 것이다. 어떤 죄는 밝히 들어나 정죄를 받지만 어떤 죄는 심판이 그 뒤를 추적하여 마침내 정죄를 당하여 하나님의 의를 만천하에 드러낸다.(딤전 5:24-25) 하나님의 지혜로운 심판의 손은 정말 두려운 일이다. 오늘날 교통사고, 비행기 사고, 사업의 부도 그리고 마음의 절망감과 자살감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하나님의 심판하는 손일 수 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원리는 현재 우리 삶에 기이하게 일어나는 심판의 손길이다. 정말 기이하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셋째, 악이 장성하여 심판에 나아가게 한다. 여로보암 왕조에서 시작하여 바아사 왕조, 시므리 왕조, 그리고 오므리 왕조로 바꾸어지지만 기하급수적으로 죄를 더해갔다. 죄를 회개치 않으면 이렇게 비참하게 된다. 자기의 우상을 남까지 섬기게 하는 장본인이 될 때 하나님의 심판은 단행되었다.
현대의 수많은 사건 속에서도 심판의 손은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가장 신실한 지혜로 의를 세우신다. 이 기이한 심판의 손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사람뿐이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압사당한 비극이나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인 사건을 놀라움과 당연함으로만 보는 것은 어두운 생각이다. 이것이 “너희도 회개치 않으면 이와같이 망하리라”(눅13:3,5)는 심판의 경고를 주시는 하나님의 손임을 보는 자가 지혜자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정죄에서 영원히 해방된 신자는 이런 경종을 들을 때 마다 자기를 살피고 깊은 회개의 자리로 나가야한다. 이것이 모든 사건을 바로 분별하는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