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부음 (the anointing 요일 1:27)이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킨다. 구약에 3중직,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을 부었다. 이것은 그림자요, 상징이라면 그 실체요 실상은 그리스도가 성령을 받으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한량없이 받은 분이시다.(요 3:34). 그의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중보자와 완성자로서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흘러넘치는 기름 부으심의 은혜와 능력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폭포수처럼 흘러넘치도록 되어있다.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온 세상에 흘러나가 생명 역사를 일으킨 것과 같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난도 빠짐없이 이 기름 부으심과 연결되어 있기에 후버댐에서 공급되는 물이 캘리포니아 남가주의 관개수와 물 공급을 책임지듯이 모든 신자의 모든 필요에 따라 영원히 공급되도록 되어있다. 수가성 여인에게 하신 “네 속에서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는 약속은 지금도 계속해서 배에서 생수의 강으로 흘러나는 생명의 흐름으로 현실화 되고 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은혜를 체험하고 지금 우리 속에 기름 부음이 거하신다는 주장을 한다. 이것은 성령의 주장이며 아버지의 증거이다. 이 기름 부음인 성령은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 속에서 일핳시고 계신다.
이것을 아는 신자는 그 안에 무진장한 복의 근원, 생명의 원천이 자리잡고 있음을 믿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것을 구하기만 하면 사정이 어떠하든지 체험할 수 있다. 이 기름 부으심이 있기에 아무도 우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이 말은 다른 가르침이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그 성령님이 교훈의 최종적 권위자란 말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영적 지식을 가지며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된다. 죄가 얼마나 나쁜지를 알게 되며 오직 그 분에게만 사는 길이 있음을 믿는 자리에 나간다. 이것은 이론적인 차원을 넘어서 체험적 차원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름 부으심이 있기에 우리는 범죄 하지 않는다. 거듭난 자는 다시 죄를 범치 않는다는 이단의 가르침이 아니고 고의적인 죄 곧 성령훼방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날마다 성령의 자상한 가르침으로서 우리는 책망을 받으며 교정을 받으며 교훈을 받는다.
우리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여전히 우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는 우리 속에서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사역을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신다. 이것을 기름 부으심이라고 불러도 좋다. 능력의 기름 부으심은 설교 시에, 예배 시에, 전도 시에, 고난을 받을 때, 우리의 거룩한 삶을 위하여 끊임없이 요구되는 귀한 은혜이다. 변화무쌍한 세상 흐름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린 우리 시대에 이 무진장한 자원을 내버려 두지 말고 그 속에서 나오는 은혜를 내 것으로 활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