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두 그림

성경의 선지자들처럼 에스겔을 통한 계시 역시, 구속의 그림으로 나타난다. 구속이란 구원의 방법을 강조한 용어이다. 죄로 인해 마귀의 소속인 죄책, 형벌, 사망 그리고 저주에 팔린 자를 그리스도의 생명 값을 지불하시고 하나님의 소유로 사신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구속은 단지 죄에서 건짐 받음으로 시작하여 훨씬 깊고 높고 넓은 성격 곧, 구원 이후의 풍성한 삶까지를 포괄한 말이다. 적게는 죄 사함(엡1:7)에서 넓게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받는 상태(고후3:18)를 가리킨다. 그래서 구약 계시는 구속의 그림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것인가?

첫째, 애굽에서의 구속-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참상에 대한 이스라엘 장로들의 질문을 받을 때(겔20:1-5) 그들 조상들이 애굽에서 구출받은 사건으로 돌아가 설명한다.(겔20:6-9) 애굽에서 우상숭배하던 430년의 노예 생활에서 택함받은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광야 40년 생활을 통해 가나안에 정착하는 사건을 그리스도 구속의 주된 배경으로 삼는다.(고후10:) 애굽에서 선택된 것처럼 세상에서의 선택받은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이고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넌 것처럼 사탄의 권세와 죄와 사망과 저주로부터 완전한 구원의 자리로 옮겨주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이 그리스도인의 소유가 되었다.(롬6:)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어 모든 죄가 장사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되어 살아난 부활생명을 가졌으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천과 연합됨으로 완전 승리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엡2:) 그래서 바울은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확신했다.(롬16:20) 애굽에서의 해방은 구속을 설명하는 중요한 계시의 그림이다.

둘째, 바벨론에서의 구속- 또 하나 중요한 구속의 그림은 이스라엘의 바벨론에서의 귀환 사건이다. 이것을 이사야는 애굽에서의 해방과 같은 맥락으로 다루기를 전자는 홍해를 가르고 나왔으나 후자는 차돌울 쪼개고 거기서 나오는 것으로 대비하여 설명한다.(사48:21) 이 둘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반복해서 그려주는 계시의 또 다른 그림이다. 느헤미야나 스룹바벨 그리고 에스라는 성벽과 성전을 세우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역을 함으로써 잃었던 이스라엘 신정의 왕권을 실현시키려했다. 이것이 성취되는 과정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으로 이끄시는 것을 따라 한 것이다. 마침내 가나안의 기업지에 돌아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백성으로의 삶이 어느정도 세워지나 또 다시 넘어져 그리스도가 오시는 사건과 연락된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에서 많은 기적을 체험하지만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말씀의 가르침에 집중하는 성장된 모습을 보인다. 구속의 목표는 기적주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임마누엘하여 하나님만을 즐거워하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안에 거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 두 그림은 시험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구속의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구체적인 지침을 보여주는 표지판이다. 눈을 들어 이 놀라운 구속을 바라보며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