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는 말씀처럼 개혁이란 날마다 개혁 되어져 가는 것이라는 주제는 일찍이 개혁주의자들의 표어 중 하나였다. 다른 말로 부흥이라고 하는 개혁은 한마디로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성경의 역 사에 가장 돋보이는 개혁의 본 중 하나가 요시야의 개혁운동이었다.(왕하22:-23:) 여기서 우리는 개혁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한다.
첫째, 개혁의 범위: 요시야 26세 때 반세기를 방치해 둔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율법책을 듣고 그것대로 단행한 개혁대로 된다면 유다는 정말 비참하였 다. 이미 200년 동안 어지럽혀진 북쪽 이스라엘의 영향으로 유다 역시 200년간 우상 섬기는 일에 몰두한 결과, 유다의 성전은 우상들로 가득 채워졌다. 바알, 아세라, 밀곰, 몰록, 태양상은 물론 그들을 섬기기 위한 남창의 집과 태양상 수레와 말들을 모두 부수고 불사르고 파하였다. 그것은 북쪽에 있는 벧엘에까지 나가 제단을 헐고 제사장들을 모두 죽이는 과감한 실천적 개혁이었다. 아마 건 국이래 처음있는 개혁이다. 이것은 일찌기 여선지, 훌다의 예언대로 된 일이다. 오늘날 동성연애의 죄를 합법화하는 LA시 결정이나 모슬림의 세력이 급증하는 짙은 어두움을 우리는 본다. 이때 요시야와 같은 개혁이 범세계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교회는 개혁, 부흥 운동이 진정으로 일어나기를 소원하고 간구해야한다.
둘째, 개혁은 언제서 성경의 발견에서 일어난다. 힐기야를 통한 율법의 발견은 그 시대가 얼마나 어두웠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오랜 세월 방치한 율법 두루마 리가 이제는 개혁의 기준으로 우뚝 솟아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화, 경제 기독교인의 사회참여 모두 귀하나 성경에 대한 재발견 만큼 앞설 수는 없고 앞서서도 안된다. 성경의 권위가 인간적인 책으로 전락될 때 이미 교회는 타락한 증거이다. 성경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동등으로 두는 개혁자들의 확신이 개혁의 시작이어야 한다. 바울이 내가 너희를 주와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 다(행20:21)는 그의 성경관이 중요하다. 오늘날 수백가지 성경 번역판들이 나왔다할지라도 성경의 권위를 하나님으로 동등화 두는 일에 실패한다면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심지어 보기 좋게 나온 성경 번역에 원문의 남성, 여성 대명사를 모두 중성으로 바꾸는 번역은 우리의 건강한 신앙에 적신호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평 교인들은 모두 성경 원문을 읽는 꿈을 가지고 실천해야할 때가 되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신앙의 변질을 극복하기 위해 각개 전투적 신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개혁은 마음의 변화에서 일어난다. 요시야는 왕하22:19절에서 말씀을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겸비하고 통곡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이 마치 8복의 마음과 같다. 가난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그리고 의에 주리 고 목마른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대할 때 부흥은 그 속에서 시작되고 하나님이 요긴하게 쓰시는 자리에 나가게 되는 것이다. 언제 아디서나 좋은 땅위에 밀씀이 떨어져 백배의 열매를 맺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말씀을 바로 받는 것은 모든 좋 은 일을 가져온다. 이 개혁원리가 우리 마음에서부터 이루어질 때 우리 시대를 개혁할 수 있다. 성경적 개혁과 부흥을 위하여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