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는 웃시야, 요담에 이어 유다 왕이 되었으며 악한 왕으로 20세에 왕위에 올라 36세에 죽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당시는 이사야 선지자의 활약 이 활발한 때로 그의 젊은 날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해 볼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 좋은 시절에 하나님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다.
먼저, 그는 이방 신상을 섬기되 자기 아들을 불에 태워 몰록신에게 바치면서까지 우상을 섬겼다.
다음, 그는 앗수르 왕에게 성전의 금은 보화를 주면서까지 원조를 받아 이스라엘의 베가와 아람의 르신의 동맹군을 물리치고 승리했다. 그의 정치적 수완은 이렇듯 절묘했으나 하나님 성전의 은금을 드린 것은 하나님 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하는 불신앙적 행동이었다.
나아가 그는 앗수르에게 붙어 그 곳에 있는 제단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따 서 이스라엘나라도 만들도록 했다. 그 열심이 대단하여 그가 앗수르에 있는
동안 제사장 우리아를 보내 속히 만들도록 지시했다. 성전의 물두멍, 놋바다 놋소의 위치를 바꾸고 거기에 이방신의 제단을 만들었다. 하나님의 좌정하신 보좌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시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성소를 이런 이방 신상의 우상제단을 만들어 더럽혔던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나님의 1, 2계명을 범하는데 헌신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조직적 죄악의 행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웃시야 처럼 그 자리에서 문둥이가 되게 하거나 벼락을 맞아 죽도록 하지 않고 도리어 침묵하셨다. 그의 단명은 이 죄악의 결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를 하나님은 다윗성에 장사하게 하셨음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한 언약을 그대로 지키시려고 오래 참으시는 그의 신실성에 근거를 둔 것일 뿐이다.
아하스의 사적을 묵상하노라면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어떻게 저렇게 자기아들, 성전기구를 바치면서까지 타락할 수 있을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목표를 언제나 잊지 않으신다. 물론 정한 방법까지도 주목하신다. 때로는 그의 침묵이 너무 지루한 것처럼 보인다. 겉보기에 조용해 보이나 하나님은 여전히 카운트하신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왕적 권위를 가진 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정한 목표를 향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헌신하도록 주어진 것으로 자기 멋대로 하도록 함이 아니다.
아하스의 배은망덕 죄가 믿는 신자 안에 웅크리고 있음을 기억하고 항상 경계하여 내 영혼을 오직 예수 신앙으로 채워야겠다. 진정한 성탄은 그리스도가 미워하는 아하스의 죄를 회개할 때 맛본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해결된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찬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