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편-28편)과 함께 가정예배

복있는 사람(시1:1-6) 찬506장

전체 시편의 서론에 해당되는 1편은 복있는 자를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정의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 묵상 자란 것입니다.(3) 여호와 경외란 말씀 묵상이며 그 속에서 경외자로 빚어집니다. 묵상이란 성경을 읽고 듣고 연구하고 암송하는 차원에서 실천하는 차원으로 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세속적 복관에 사로잡힌 우리 시대에 말씀묵상이 복이란 것을 확신하는 것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래서 복있는 자는 두 가지 일에 열심을 갖습니다. 첫째, 죄 를 멀리합니다.(1- 2) 악인의 꾀(생각), 죄인의 길(행동),오만한 자의 자리(소속)를 멀리합니다. 죄와 싸우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둘째, 성경에 착념합니다. 요가의 명상은 좋아하는 자기 아이디어에 집중하여 말을 되풀이함으로 자기 성찰에 이르지만 말씀묵상은 읽은 말씀을 마음에 집중하여 나와 깊은 관련을 시키는 일입니다. 그 때 성령은 우리 마음에 말씀을 밝혀 그것에 사로잡 힌 반응을 보이게 하십니다. 한 해에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체험적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시2:1-10) 찬46장

다윗 왕의 즉위식을 염두에 둔 본 시편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경외하는 자만이 복받는 다고 전합니다. 메시야는 누구이며 어떻게 사 랑해야 합니까?

첫째, 고난 가운데 임하신 메시야입니다. 1 -3절에 그는 열방의 적대행위 가운데서 왕이 심을 보였듯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여 자기 백성의 죄를 속하셨습니다. 그의 고난은 구 속을 완수하기 위한 필연적 길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그 분은 왕, 선지자, 제사장으로 서의 참 메시야 곧, 하나님 나라 왕이 되십니 다. (4-6) 우리 주님이 바로 그 분이십니다.

둘째, 어떻게 메시야를 사랑해야합니까? 경외함과 즐거움으로 섬겨야하고(11) 입맞춤으로 섬겨야합니다. (12) 아들과의 달콤한 사랑 관계만이 새해를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 친밀함을 누리는 가정이 되게 합시다.

여호와께 오는 구원(시3:1-17) 찬101장

전통적으로 제왕 시로 분류되는 본 시편은 조석으로 드린 기도로 알려졌습니다. (삼하15 -19장 참조) 어째서 구원이 하나님께로 옵니까?

첫째, 그는 방패이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화전 공격의 위급함을 막으시는 분이 하나님 이심을 알고 그 안에서 안식하는 다윗을 볼 수 있습니다.(5-6) 우리의 진정한 방패는 오 직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 안에 쉬어야합니다. 둘째, 그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로 세우시 는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믿음이 실제적 으 로 표현되었습니다. 1) 자기 목소리로 기도 하며 2) 부르짖으며 3) 성산을 향하여 구별된 간구를 드렸습니다. 셋째, 여호와만이 은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고 깨는 순간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알고 주님께 직접 나아가 구했습니다.(6-8)

오직 기도의 신앙으로 밀어 붙일 때 어떤 위험도 거뜬히 이길 수 있습니다. “네 믿음대 로 되라”(마8:12)는 주님 말씀을 붙들고 전진 합시다.

주께서 두신 기쁨(시4:1-8) 찬189장

저녁 기도로 알려진 본 시편은 애가시편으로 분류됩니다. 극심한 가뭄 때문에 조롱을 당하고 신하의 배반으로 권위가 실추되었지 만 간구의 응답함으로 하나님의 즐거움을 체 험했습니다. 그가 받은 기쁨은 어떻게 임했습 니까?

첫째,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찾아왔습니 다. 의의 하나님께(1) 의의 제사를 드리라는 권면은(5) 마태복음 6장 33절을 자신에게 적용한 것처럼 생각하게 합니다. 둘째, 경건한 자에게 임하는 은혜입니다. 경건이란 구약의 믿음입니다.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경건이었습니다. 외식을 경계하고 진리를 따라 믿음으로 기도를 드릴 때 참 즐거움을 체험합니다. 셋째,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평강, 은혜, 보호의 얼굴을 구할 때 (민6:) 하나님은 반드 시 응답하십니다. 은밀한 골방을 찾아 현실의 문제를 믿음으로 구하는 가정이 되어 하나님이 두신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아갑시다.

은혜의 호위(시5:1-12) 찬344장

악인의 매서운 공격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어떻게 확신했습니까?

첫째, 악인의 공격을 당할 때 보호를 확신 했습니다. 악인은 오만한 자(5) 거짓말하는 자(6) 속이는 자(6)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6) 아첨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특히 다윗은 믿음을 배반한 악인의 공격에 보호를 확신했습니 다.

둘째, 기도의 제물을 드렸습니다. 1-2절 에 “나의 하나님, 나의 여호와”라고 절규하며 자기 심사를 살펴달라는 기도를 아침 제물로 드렸습니다. 기도의 제물을 받으시는 하나님께 즐거움으로 기도를 드립시다.

셋째, 의의 길을 파수하려는 결심으로 나갔습니다. 악인 의 꾀에 넘어가 신앙주관을 포기한 자가 우굴거리는 때에 기도하며 예배하며 주께 피 하는 것이 의의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악인의 패망과 의인의 승리를 구함으로서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즐거움임 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 신하가 왕께 나아가는 것처럼 (John Owen) 절대보호의 약속을 믿고 그의 보좌로 나갑시다.

징계에서의 자유(시6:1-10) 찬492장

“병상에서 드리는 기도” 혹은 “참회시” (32, 38, 51,102,130,143)로 알려진 6편은 다윗이 당한 심각한 고난을 잘 표현합니다. 수척한 몸, 떨리는 영혼은 하나님 징계의 결과였습니 다.(1 -3) 그러나 그는 회개와 믿음으로 소망을 가졌습니다.(2-3, 6-7) 밤마다 요를 적시는 슬픔의 눈물과 답답한 마음을 진실되이 털어 놓고 도와주기만을 기도합니다.(4) 하나님이 자기를 용납하시면 현재의 악한 상황이 다 해결되리라고 믿었습니다. 마침내 원수는 두려워 떨며 물러감을 확신한 것은 자기의 곡성과 눈물을 하나님이 보셨음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기와 상관없이 반드시 징계의 손길을 맛봅니다. 이것이 없으면 사생자요, 버림받은 자입니다. 징계의 손이 잠깐 아파도 마침내 참 자유와 기쁨을 체험케 하기 때문에 성도는 징계 때에 회개하며 믿음으로 견 딜 수 있습니다.

악에서 구하소서(시7:1-17) 찬338장

식가욘(엄숙한 분위기)이란 음악부호로 시작하는 본 시편은 탄원시로 알려졌습니다. (삼상16:5, 24:-26:)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자같은 공격 앞에서 범죄치 않고 주께 피 합니다. 자기 손에 죄가 없고 배은망덕하거 나 약탈함이 없음을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그 리고 주권의 손에 모든 것을 위탁하여 하나 님을 방패로 삼아 그에게 숨습니다.(8)

이렇게 원수의 압제와 공격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며 악인에 대한 의 로운 심판을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구합니다. 섭리적 고난을 받는 성도는 자기를 살펴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공격하는 원수에 대해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곤고한 날을 당할 때 범죄치 말고 하나님의 성실과 의가 드러나기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성도는 반드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인자의 노래(시8:1-9) 찬97장

공동체 찬양인 본 시편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가운데 가득 찬 영광을 선포합니다.

첫째, 창조 속에 보여진 영광 즉 하늘과 달 과 별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1, 3-4, 9)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그 피조물 속에 하나님의 신성을 새긴 것과 그리스도 아니고는 그 어느 하나도 이루어 질 수 없는 사실을 알고 인간이 만물의 왕관으 로 지어졌음을 관찰합니다. 둘째, 구원 속에 보여진 영광을 노래합니다.(2) 주의 대적을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손으로 무력케 하 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노래하는 것입니 다. 새 창조의 안목으로만 새 창조(구원)의 영 광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창조와 구속의 영광은 섭리의 영광으로 활짝 꽂을 피웁니다. 특히 다윗은 사람 영광의 아름다 움을 보았습니다.(4-5)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와 같이 변하 여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중심한 삶을 영위합시다.

의의 왕을 찬양하라(시9:1-20) 찬352장

전통에 의하면 9편은 10편과 연결된 알파벹 찬송시로 분류됩니다. 개인 찬송과 선포로 시작된 것(1)이 공동체의 찬양과 전파로 나가기를 원하는(11) 다윗의 찬송은 의의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먼저, 다윗은 전심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이유가 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으로 악인이 패 망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4-6) 다음에 그는 공의롭고 정직한 심판을 보았기 때문입 니다.(7-10) 의의 공도가 세상에 세워지는 것 은 그리스도인이 먼저 구할 것이며 목말라 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동체가 찬양할 것을 권면합니다. “나”가 “너 희”로 바 꾸어졌습니다. 그가 온 세상에 전파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증표인 십자가 사랑이었습니다.(11-12) 원수들은 자기 올무에 걸려 망하지만 의인은 어떤 고 난을 당해도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을 받습 니다.(15-16,17-20) 이 은혜를 찬송합시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시10:1-13) 찬412장

애가시로 알려진 시편 10편은 악인이 압제 를 당할 때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어 찌하여 환난 때에 멀리 서시며 숨으시나이 까?” 라고 탄식함으로 시작한 시인은 어찌하 여 악인을 벌하지 않느냐고 부르짖습니다. 그의 고통은 악인의 압제보다 하나님과의 영적 분리의식에 있었습니다.

첫째, 그는 악인의 죄악을 어떻게 표현했습 니까?(2-3) 교만한 얼굴로 의인을 압제하는 것은 무신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 이 자기의 무자비한 행위를 보지 않는다하여 악독과 잔해가 가득 찬 굶주린 사자와 같았 습니다. (7) 이 때 시인은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며 속히 일어나 의로운 심판을 단행하 기를 구합니다. 그는 승리의 확신에 차 있었 습니다. 마지막 때를 통과하는 우리들은 아무 리 악 인의 공격이 거세어도 악인의 이를 꺽 으시고 의인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서 견디며 승리하는 삶을 이루 어 가야합니다.

터가 무너져도(시11:1-7) 찬439장

타가 무너져도 낙망치 않고 소망으로 나가는 다윗의 본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첫째, 다윗은 악인에게 조롱을 당하며 도 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1) 어두움과 고독과 두려움이 엄습할 때 악인들은 저 산으로 새처럼 도망하라고 조롱합니다. 그리스 도인은 무너진 터에서도 의미를 찾습니다. 둘째, 터가 무너질 때 다윗은 어떻게 대처했 습니까? (1-3) 피난처인 하나님께 피했습니 다. 감사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 고 피했습니다.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 가 기도했습니다.(5-6) 셋째,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셨습니까?(5-6) 의인을 감찰하 시고 악인을 미워하셨습니다. 의의 하나님 이기 때문입니다.

터가 무너져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은 주님의 십자가에 귀착됩니다. “그리하지 아니 하실지라도” 끝까지 의지하는 순교적 신앙을 통해 주님은 일하십니다.

말씀의 순결성(시12:1-8) 찬221장

개혁자들은 “성경의 순결성”을 확신했습니 다. 이것은 성경의 모든 계시가 성령의 감동 으로 기록되어 구원의 길을 확실히 보여주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대하면 반드시 구원을 받 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는 “흙 도가니 속에 일곱 번 연단된 은과 같은 하나님 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 한 언행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첫째, 악인의 말은 헛됩니다. 악인의 말이 세력을 얻는 것을 본 의인은 탄식으로 시작 합니다. 왜 탄식했는가요? 경건 자가 끊어지 고 충실한 자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거짓 말과 아첨과 자랑의 말로 이웃을 죽이고 있 기에 그는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말이 얼마나 헛된 것을 드러내실 것입니 다. 둘째, 의인의 말은 보장을 받습니다. 악한 날일지라도 의인은 악의 손에서 벗어나 안전 지대에 서게 됩니다.(5) 이것이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6) 성경의 모든 약속은 다 진실입니다. 여기에 모든 언행을 거는 자는 복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13:1-6) 찬338장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은 딱 부러지는 기계적이기보다 은근과 끈기로 이어지는 유기적 삶입니다. 절규로 시작하여 찬송으로 마치는 13편은 그 사실을 밝혀줍니다.

첫째, 시인이 탄식한 세 가지 이유는 1)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기 때문이고(1-2) 2) 원수가 득세하는 환경 때문이며(4) 그리고 3) 사망의 잠을 잘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 다. 시인은 극심한 질병으로 큰 고통 속에 있기에 주님이 오셔서 사망의 잠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둘째, 그가 찬송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의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 을 의지하는 믿음의 표현이며(5)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을 믿는 믿음의 표현 입니다.

탄식과 찬양, 영적 은근과 끈기가 우리가 걸어야할 좁은 길입니다. 이 때야말로 참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탄식하는 상황을 두려워 말고 주께 나아가 부르짖는 성도가 됩시다.

야곱의 피난처(시14:1-7) 찬82장

다윗은 어리석은 자, 악인(1)과 가난한 자, 의인(6)을 서로 비교함으로서 성도란 영적 가 난을 추구하고 즐기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마5:3) 그는 원수의 공격 중, 하나님께 피해 절대 보호를 받으면서 주만이 복의 원천이란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를 “나의 기업, 나의 분깃, 나의 소득, 나의 아름다움, 나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주님 과의 깊은 교제를 이루기 위해 그 분에게 피해 그에게 아뢰었고 그의 교훈을 밤마다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영원한 즐거 움을 누리고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 차있기에 환난 중에서도 요동치 않을 수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세상살이에서 나의 진정한 복은 그리스도뿐임을 확신하고 그에게 마음을 다 토하여 언제나 말씀하시는 주의 교훈을 따라 순종함으로 기쁨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성도가 됩시다.

성산에 거할 자(시15:1-5) 찬456장

성산에 거할 자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 람을 가리킵니다. 2-5절에 십계명을 연상케 하는 10가지 자격조항이 나옵니다. 정직히 행하는 자. 공의를 행하는 자, 진실을 말하는 자, 혀로 참소치 않는 자, 행악지 않는 자, 이웃을 훼방하지 않는 자, 망령된 자를 멸시 하고 서원을 갚으며 변리로 대금치 않고 뇌 물을 받아 판결치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여호와를 경외하여 착함과 진실함과 의로움을 나타내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란 율법에 완전한 자 이기에 사람으로 이룰 수 없는 표준입니다. 오직 그것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성령을 따를 때 이루어지는 성령의 작품입니다. 날마다 은혜의 보좌로 나가는 자 만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표준을 상실하여 방황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과 영원히 동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 진정한 성전이신 그리스도안에 거하기를 힘씀으로 천국생활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유일한 복(시16:1-12) 찬88장

죽음의 위기를 만난 시인은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서 유일한 도피처는 하나님뿐임을 알았습니다. 애매한 고난때문 에 탄식하는 중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복 임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 습니다.

첫째, 그만이 즐거움의 원천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2-3) 마음의 형통이 모든 영역에 서 기대할 수 있기에 그는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여호와만이 자신의 기업임 을 알았기 때문입니다.(5) “나의 산업”, “나의 잔의 소득”, “나의 분깃”이란 것입니다. 셋째, 주님만이 생명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1) 그래서 다윗은 밤마다 하나님이 교훈하 심 을 맛보았고 (7) 항상 우편에 계신 그 분을 바라봄으로 요동치 않았습니다. (8) 그 리고 주님만이 복의 원천임을 알고 영혼이 음부에 버려지지 않고 썩지 않을 것을 확신 했습니다.(10) 고난당한 성도의 유일한 소망 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습니다.

주의 얼굴로 만족하자(시17:1-15)찬495장

악인의 공격으로 어려움 중에 있는 다윗 은 정직한 입술로 구원을 부르짖습니다.(1) 하나님의 절대 보호하시는 약속을 믿고 주의 날개아래 숨기를 원합니다.(8)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진정한 만족이 원수가 거꾸러지거나 환경의 변화에 두지 아니하고 자고 깨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 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인은 금생의 분깃이 나 재물이나 자녀로 만족하지만 성도는 하나 님의 형상을 보는 것으로 참 만족을 갖습니다. (15)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정한 구원입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성령안 에서 지금 우리 속에 일하십니다. 그래서 바 울은 “주는 영이다”(고후3:17)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주님이란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주님이 높은 신분으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그의 영광을 봄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형상으로 화하여 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최대 의 복입니다.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시18:1-50) 찬231장

다윗은 사망의 줄, 불의의 창수, 음부의 줄, 사망의 올무(3-5)의 4중 난관에서 부르짖음으로서 놀라운 구원을 체험합니다. 자비 한 자에게 자비로, 완전한 자에게 완전으로, 깨끗한 자에게 개끗함으로 갚으시지만, 교만 한 자에게는 낮추심으로 사특한 자에게는 거스림으로 갚으심을 알고 정미한 말씀을 찬양합니다.

마침내 그는 모든 환난에서 절대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와의 개인적 관계를 고백합니다.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 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 를 건지시는 자, 나의 산성, 나의 하나님이라 는 7중적 고백을 통해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고백은 나의 고백이 되어야합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그분의 사랑이 내 속에서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예 수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는 사랑의 언어가 흘러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계시의 충족성(시19:1-14)

시편 19편은 “계시예찬” 혹은 “성경예찬”을 주제로 다룹니다. 1-6절까지 자연계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를, 7-14절은 토라(율법)를 통한 구원계시가 얼마나 분명하고 충족한가를 감탄하며 찬양합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는 수단을 하늘과 궁창이라고 하며(1), 언어와 소리가 없어도 온 세상에 통하는 지식과 말씀과 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연과 인간양심을 통해 자신의 신성을 분명히 보이셔서 감사와 영광을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얼마나 풍성한지요.(롬1:19-20) 물론 성령의 역사로서 하나님 아는 지식이 세계에 꽉 차 있는 것을 발견하고 노래하는 다윗은 영안이 뜨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이어 죄로 어두워진 영혼이 구원의 길을 알게 되는 유일한 계시가 기록된 말씀뿐임을 확신한 다윗은 지금 그 말씀의 특성과 효과를 선포하며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가 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율법의 성격에 따라 증거, 규례, 교훈 등으로 표현된 말씀은 66권 성경을 가리키며 이것은 모두 완전하며 확실하며 정직하며 순결하며 정결함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어두워진 우리 영혼이 눈이 뜨여지고 밝아져 지혜롭게 되고 순수하게 되어 영원한 구원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먼저 그 맛을 본 다윗은 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 말씀을 믿고 따르는 길뿐임을 알고 풍성한 계시를 내 것으로 누리기 위해 모든 생각과 묵상이 말씀에서 시작되고 말씀으로 완성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계시(성경)의존사색으로만 구원받는 진리가 깊이 깨달아져 여러분의 가슴 속에 감사의 샘이 터쳐 나기를 축원합니다.

승리한 왕의 찬양(시편21:1-13)

본 시편은 20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자는 전쟁하기 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부탁하는 기도라면, 후자는 승리 후에 주께 드린 찬양과 감사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승리 후 관리가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바입니다.

첫째, 다윗이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 한 동기는(1) 주의 능력으로 받은 구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랑으로 마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의 시작과 목적과 방법과 결과가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으로만 만족합니다. 에스라 1장에 나온 출 바벨론 사건을 보더라도 고레스를 감동케 하고 돕는 사람을 감동케 하여 시작한 성전 재건이 성령이 시작한 것처럼 우리의 구원도 전적인 하나님 은혜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마음의 소원을 주께 아룀으로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2)

둘째, 다윗이 받은 은혜는 (3-6) 너무나 엄청났습니다. 아름다운 복, 정금 면류관, 영영한 장수, 큰 영광, 존귀와 위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지극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다윗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자이지만(엡1:3)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최고의 복중 에 복인 하나님 사랑을 의지한 다윗이 요동치 않은 것처럼 우리 역시 그 사랑을 맛 볼 때(롬5:8) 담대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진노의(7-10) 풀무는 절대 심판을 가리킵니다. 8절에 “네 손이 발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서 원수들을 포로로 잡아 멸한다는 뜻입니다. 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우리는 단지 그의 도구입니다. 숨어서 일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구원 후 펼쳐지는 계속적 승리를 누리기 위해 하나님께만 찬양을 돌리는 성도가 됩시다.

메시야의 수난(시22:1-31)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구유에서 십자가를 볼 수 있어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자기 백성의 죄를 제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주전 1200년 전 다윗이 당한 고난의 환경에서 예언한 것이 시편 22편입니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어쩌면 적나라하게 묘사된점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1절의 절규는 성부로부터 버림받은 성자의 고난을 보이고(마27:46), 7절에 보는 자마다 비웃고 조롱하는 것은 십자가상의 주님을 향해 퍼부었던 행인들의 무정한 행동이었으며(마27:39-43) 15절에는 체형으로 인한 목마름을 리얼하게 묘사하였으며(요19:28) 그리고 18절에는 문자대로 그리스도의 속옷을 제비 뽑는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령의 예시에 놀라게 됩니다.(요19:24)

그의 고난은 사자 이빨에 물어뜯기는 것같아 물같이 쏟아졌으며 뼈는 어그러졌고 마음은 촛밀같이 녹아내렸습니다.(13-14) 다윗은 이 원수 마귀를 “칼, 개, 사자 들소 뿔”로 비유하여 그 무자비성과 처절함을 강조하고 잇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난은 목적이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믿는 자는 소망을 갖습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도 부르짖을 때얻은 4가지 복을 확신했습니다. 찬송하는 자가 되었고 영생을 가졌으며 열방의 회개와 세계에 이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23-31)

다윗은 한 낫 그림자의 고난에 불과했고 그 영광도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고난의 실체를 당하신것이고 결과와 영광도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그 은혜를 지금 누리고 있으며 눈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마우신 그리스도의 수난 앞에서 그의 탄생사건의 진의를 보는 자가 되어 참된 은혜를 누리고 증거하는 성탄절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신자의 목가(시23:1-6)

먼저 신자는 주님과의 개인적 관계 때문에 노래합니다. 목자는 반석, 능력, 복이란 개념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여호와는 양을 거느리는 목자이고 다윗은 그의 양으로 인도를 받기에 최대 최고의 만족을 누립니다. 신자는 말씀을 잘 먹어야하고 그리스도안에 펑안을 누림으로 영적만족을 갖습니다. 그 다음에 신자는 낙심하고 절망할 때 부흥과 소생의 은혜를 받기에 찬양합니다. 또 주님 영광위한 의의 목적과 표준을 알고 행하기 때문에 기뻐하며 즐거운 찬송을 부릅니다.

셋째, 그는 절대보호로 인해 찬양합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확신과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지는 구원의 지팡이와 맹수의 공격을 퇴치하는 막대기로 철저히 지키시는 보호의식으로 감격하는 것입니다.

넷째, 원수 목전에 높여주신다는 것, 사망의 길을 지나는 영전에 승리의 상급이 준비되었다는 것이 신자로 찬송하게 합니다. 그 상이란 기름 곧, 성령을 가리키며 그의 풍성한 은혜를 말합니다. 신자가 받을 최고의 상급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성령 충만의 체험입니다. 이 기름은 우리 평생에 약속된 것이고 그의 착하심과 인자을 맛보는 체험으로 나타나는 복입니다. 바로 이 사랑의 줄은 아무도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눈은 물질의 복에서 여호와 자신의 복으로 옮겨집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전주곡으로 이미 아버지 집에 사는 자인 줄 알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험하지만 문제의 키를 가진 만능의 해결사로서 사는 것이기에 찬송하며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목자로 두고 따르는 자가 찬송을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들입니다. 금년 항해에 여러분의 영혼에 하늘 목가가 흘러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성산에 거할 자(시24:1-10)

주후 2세기, 로마 역사가 플리니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날에 한 장소에 모여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애찬을 나누며 시편 24편을 찬송했다고 전합니다. 본문은 창조자 구원자 섭리자이신 하나님만이 영광의 왕되심을 선포하며 그를 경외함으로 감격으로 영접하라는 예배권고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영역이 이 세상 모든 만물과 사람인 것을 지적하면서 그분의 주권자 되심을 선언합니다.(1) 그리고 땅을 물에서 끌어내신 창조하심의 권능 보다 더 근원적인 그의 활동도 설명합니다.(2)

그러면서 곧이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냐?”고 자문하면서 그 자격조항을 제시합니다. 여기 “여호와의 성산”이란 하나님의 보좌를 지칭합니다. 요한계시록4:-5:에서 우리는 천상 보좌를 중심한 네 생물과 24장로와 천군천사와 만물을 봅니다. 보좌란 곧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 곳에 거할 자는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고, 거짓 맹세치 않는 자입니다. 이 도덕 수준은 영적수준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그 자리에 설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를 얻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 시편은 영광의 왕이 창조주요 섭리주요 구원자이심을 말하면서 그 분을 영접하라는 권고로 이어집니다. 그 분을 환영하기 위해 겸손히 자신을 정결케 하는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5:8)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여호와의 성산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모든 존귀와 평강의 자리 를 양도할 때 진정한 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 성산인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생활에 심혈을 기울여 천국 복을 깊이 체험하는 성도가 됩시다.

이스라엘의 탄원(시25:1-22)

알파벳 시편으로 알려진 25편은 악인의 공격과 과거의 죄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다윗이 하나님을 앙망하여 그에게 탄원함으로 이를 극복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편 1편에는 악인과 의인의 두 길 중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지만 본 시편은 정작 선택의 기로에서 의의 길을 택하는 일은 많은 고민이 따른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더 공감이 가고 친밀감을 더해 줍니다.

다윗은 영적 패배의 저변에서 탄식할 때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거룩한 자존심이 다 무너지는 수치심 속에서 원수가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 기도는 “수치를 면케 하리라”는 변치 않는 그 분의 약속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3) 또 다윗은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의 도와 진리로 그 길을 가르쳐달라고 부르짖습니다.(4-5)

큰 약속에 근거를 두었다하여 안일한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의지하여 겸손하게 나아가 기도합니다. 두 가지 때문에 절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는 과거의 죄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원수의 곤경 때문에 괴롭고 외로운 영적공허에 떨어져 허우적거리면서 하나님만을 종일 바라봅니다.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은 것입니다.

마침내 시인은 죄 사함의 확신과 평탄한 영혼을 소유했고 땅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물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갖는 사랑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것이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온유한 자의 몫입니다.

시인의 고통이 우리가 당하는 현실의 고민입니다. 이중적 고민에 사로 잡힌 외롭고 괴로운 좁은 길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오직 주를 앙망해야합니다. 이 길을 따름으로 상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완전한 행위(시26:1-12)

주님은 의롭다고 인정받음으로 시작한 우리의 구원이 거룩케 하는 과정을 통해 완전한 행위인 영화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26편에 나온 다윗의 몸부림은 바로 이 과정을 통과하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완전한 삶을 이룰 수 있나요?

첫째, 하나님 앞에 판단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1-2) 자기 행실의 뿌리인 마음의 의지가 거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의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원했고 허망과 간사가 없는 진실의 삶을 구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에 푹 빠질 때만이 완전해 질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139:) 위대한 삶은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서 연단받는 마음으로 살 때 이루어집니다.

둘째, 악인의 모임을 경계했습니다.(5) 그는 주변 환경의 영향이 얼마나 자극적인 것을 알았기에 행악자의 집회에 가지 않고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죄를 이기는 길은 예방함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죄의 영향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죄와 싸우는 것이며 이 싸움이 충만한 것이 복입니다.

셋째,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삶의 초점을 맞추어야합니다. 주의 제단을 두루 다니면서 감사와 찬송의 제물을 드립니다.(6-7) 다른 어떤 것보다 주의 임재한 장소를 그렇게 좋아했습니다.(8) 악독과 뇌물을 즐기는 악인의 행동과는 달리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즐겼습니다.(9-10) 그래서 궂을 때에도 그러했지만 평탄에 처할 때에도 하나님의 구속과 긍휼을 간절히 구한 것입니다. 참된 거룩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이 가능합니다. 날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을 산 제물로 드리는 하나님에 대한 항복과 헌신의 삶만이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사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도 이 일을 위해 우리 속에서 부단히 일하심을 잊지 말고 그 분의 뜻에 따라 겸손히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로 죄와 사워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너의 하나님 얼굴을 구하라(시27:1-14)

다윗은 원수들의 거짓된 고소와 조롱으로 비참한 자리에 처해 있습니다. 얼마나 비참했는지 부모형제라도 소망이 없다고 버리는 아픔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병상에 드린 기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어떻게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1,14)

첫째,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내 얼굴을 찾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주의 제단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고 기도와 찬미의 제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을 구했습니다. 이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둘째, 믿음으로 구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친밀하였습니다. 천하가 다 버려도 하나님만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의 생명의 능력인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생사가 오가는 병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얼굴을 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13)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역사합니다.

셋째, 그는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원수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자기 살을 먹으려고 왔고 전쟁을 일으켰으나 두렵거나 무섭지 않고 도리어 안연했습니다. 환난 중에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바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절박한 환경은 다윗을 위대하게 만드는 연단의 터전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난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그리며 주목하여 그에게 구하기 바랍니다. 의와 진실과 사랑으로 가득 찬 주님은 반드시 은혜로 응답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이 넘칩니다. 이 사모심으로 충만한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구원의 산성(시28:1-9)

애가시(1) 혹은, 제왕시(8)나 질병 가운데 드린 기도시로 알려진 28편은 앞 선 26편과 27편과 같은 부류에 넣는 것은 고난 중 기도함으로 구원의 응답을 체험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은 지경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합니다. 그가 당한 무덤의 환경은 질고라기보다 민족적으로 추방당할 위기를 가리킵니다. 압살롬처럼 화평의 얼굴로 말하나 속에는 악독이 있는 사람들에게(3-5) 억울한 일을 당한 매우 고독한 처지를 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장인 사울에게 그리고 가장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에게 배반을 당하는 치명적인 위헙도 있었고 시글락에서의 참패로 따르던 심복들이 돌변하여 돌로 죽이려는 지옥 같은 환경을 경험했지만 하나님으로 인해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여호와를 반석으로 삼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습니다. 2절에 주의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부르짖는 그의 간구는 은혜받을 자의 태도를 지녔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께 항복하며 주님에게 전적 달라붙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아 기쁨으로 노래하는 자가 되었습니다.(6-7)

하나님을 반석, 힘, 구원으로 고백하던 것이 “목자(shepherd)”로 말합니다. 반석이란 받쳐주는 기초로 보호의식을 갖게 했다면 목자는 그 분과의 인격적 교감이 오가는 친밀관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친밀 관계가 더 깊어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위기를 허락하신 이유이며 목적입니다.

세상에 있는 교회에 가라지와 알곡을 그대로 두게 하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살 깊은 교제 즉, 임마누엘의 깊은 경험을 누리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덤 같은 상황에서도 낙심치 않고 주께 부르짖는 기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반석에 물이 터지는 기적의 체험도 귀하지만 주님과 주고받는 목자와 양과의 친밀함이 더 귀합니다. 이 친밀함을 체험하기 위해 고난의 날에 기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