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시 빌립보성 다음에 증거한 곳에서 생겨난 교회이다. 3주간 설교했는데 회개 운동이 일어나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혔다. 데살로나가 전서 1:5절에 보면 능력, 성령, 큰 확신으로 복음이 증거되었음을 보인다. 환경이나 시간, 사람이 문제가 아니었고 성경에 대한 태도가 그런 열매를 가져왔다. 그 열매를 세 가지로 언급한다.
첫째, 믿음의 역사이다. 믿음의 역사는 복음이 적용될 때 생기는 최초의 열매이다. 말씀에 믿음을 화합할 때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속하는 좋은 사건을 가리킨다. 곧 성령의 열매이다.구원받은 후에도 계속 믿음으로 나갈 때 좋은 사건이 일어나기로 약속되었다. 그래서 구원의 문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자는 들어가며 나오며 구원 성장을 위한 꼴을 얻는다.(요10:9) 구원 성장은 양에게 일어나는 최대의 사건들이다. 데살로니가 교인이 박해와 고난을 당하는 악조건에서도 믿음으로 나갈 때 기이한 역사를 체험한 것이 오늘날 교회의 본이다. 성경에 나온 믿음의 장부들을 보면 모두 역사를 이루었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하고, 불같은 고난을 소멸하고 그리고 홍수 같은 환난을 형통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나라를 이김, 의를 행함, 약속을 받으며, 사자들의 입을 막음, 불의 세력을 멸함, 칼날을 피함, 연약에서 강함, 전쟁의 용맹으로 적진을 파함, 죽은 자를 부활로 받음, 고문 받음, 조롱, 채찍질 당함, 옥에 갇힘 등(히11:33-38)은 모두 믿음으로 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역사를 목표로 정하고 꿈을 꾸며 기대하며 나가야한다.
둘째, 사랑의 수고이다. 복음에 믿음을 화합하면 사랑의 수고가 나타난다. 사랑은 언제나 수고와 희생이 따른다는 말이다. 사랑이 있다면 희생이 있다는 말이다. 희생있는 수고가 열매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비싼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할 때 십자가의 죽음이란 수고가 있었고 성부가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 독생자를 잃는 수고가 따랐으며 성령이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오늘날 입 서비스만 하는 사랑을 뛰어 넘어 그리하지 아니할지라도 희생하고 사랑하는 십자가의 사랑이 요구된다. 이 사랑의 진품은 십자가 지는 희생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 시대에 이런 사랑의 수고가 어디 있는가? 이것은 신자들이 나타낼 열매이다.
셋째. 소망의 인내이다. 견디는 중에 소망이 생긴다. 이것은 하루아침의 성취가 아니고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한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 세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있다. 이 셋은 항상있다고 했다. 고난 속의 소망을 염두에 둔 말이다. 끝까지 견디며 따르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참을 수 있다. 자녀를 얻기 위해 산고를 견디며 좋은 지위를 얻기 위해 현재의 고통을 견디는 것 처럼 복음의 열매를 맺는 일에도 비슷하다. 그러나 후장의 견딤은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되는 것이기에 하늘의 은헤와 평강이 찾아온다.
우리가 믿는 성경이 이런 능력을 가진 것이 사실일진데 우리가 주어진 곳에서 말씀을 바로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리고 그대로 행할 때 이 일은 나의 것이 될 것이다. 복음과 성령은 언제나 살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