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하나님 나라의 예언

느브갓네살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은 이러하였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단 3:44)

이 예언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구약 시대지만 분명한 말로서 하나님 나라의 성격이 어떠함을 말해준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첫째,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는 나라이다. ‘손으로 하지 않은 뜬 돌’, ‘산에서 나온 돌’이라 했다. 인간이 세우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능력으로 친히 세우시는 나라를 가리킨다. 둘째, 영원한 나라이다. 하나님이 세우는 나라이기에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처럼 그 나라는 영원하다. 그 나라는 계시록의 무궁 세계로 완성되는 나라이다. 셋째, 그 나라는 다른 모든 나라를 멸하는 나라이다. 이것은 그 나라가 이 땅을 정복할 것을 보인다. 온 세상의 모든 나라는 그리스도에게 굴복하든지 아니면 망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철장을 휘두르는 권세로 그 나라는 이 땅의 모든 나라를 대적하여 서는 나라이다(시편 2장). 이것은 이 세상 나라는 죄로 인하여 어두워 하나님에게 속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하나님 나라를 다니엘은 예언하였다. 그 나라는 역사상에 일어나는 나라이고 그 나라는 마침내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이다.

주 예수님의 오심으로 그 나라는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다. 그 나라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가 마귀를 성령으로 좇아내셨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온 증거였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임했다. 우리는 그 나라가 다시 오도록 구하기 전, 이미 온 그 나라의 전진을 볼 수 있어야한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보화를 사는 자가 되고 나의 전 소유로 아낌없이 값진 진주를 사는 자로 살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그 나라가 임하소서”라는 기도를 드린다. 이미 온 그 나라는 그리스도 재림 때까지 미완성된 모습으로 이 땅에 전진한다. 이런 두 사이에 긴장(tension) 속에 살아가는 것이 교회이다. 이미 임한 나라의 의와 평안과 기쁨을 맛보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나라의 공의와 사랑을 바라보면서 현실의 주어진 위치에서 그 나라를 세워가는데 쓰임받는 자로 자신을 드리는 자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우리 교회는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부름받은 교회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나 개인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감으로 되는 것이다. 그 나라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어야 하고, 그 나라의 평안이 우리의 평안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내 속에 이런 나라의 속성을 찾아 보아야 한다. 그 나라를 이루는 자로서 사는 자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외형적 모습을 이루는 것도 힘들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은 이것을 초월한 실제적 일인 것이다. 다니엘의 예언이 의미하는 바는 지금도 그대로 그리스도인인 내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삼상 17:1-11

1. 블레셋은 세상, 골리앗은 마귀, 이스라엘 군대는 교회(창 12:3)이다. 골리앗의 완전무장처럼 우리 앞에 질고, 재난, 음행법, 불황이 위협해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투구, 의의 흉배, 진리의 허리띠,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성령의 검, 그리고 기도로 무장할 때 나는 반드시 이긴다. 모든 문제의 산을 예수 이름으로 명하여 바다에 옮겨야겠다.

2. 사울의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지 않고 자기의 힘을 의지한 증거이다. 영적 담력은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만 이루어진다.
(2008.06.11)

스데반 (주후 34년)

본 연재는 16세기 말엽, 영국 퓨리탄 시대에 교회역사가, 존 폭스(John Foxe)의 순교사(원본은 각 2000페이지가 넘는 8권으로 집필된 방대한 작품이다)의 축소판으로 편집된 폭스의 순교자들의 소리(Foxe Voices of the Martyrs)를 초역한 것이다. 재림 직전시대를 통과하는 종말 성도들이 좁은 길을 계속 걸어가는데 유익을 줄 것이다.

핍박자들은 악랄하고 거짓되었다. 위협함으로 그의 주장을 제제하거나 잠잠케 할 수 없었던 그들은 거짓된 고소로 발을 동동거렸다. 스데반은 악도들이 넋이 나갈 정도로 자신의 음성으로 변호하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의 소리는 큰 사상을 사로잡거나 더 큰 비젼에 사로잡힌 어떤 사람에게서 흘러나온 열정으로 가득 찼다. 그는 또다시 호기심으로 바라보거나 그 날들을 잊은 과거의 친숙한 이야기로 접근했다. 솔기 없는 옷자락을 짜는 곤충의 가는 실처럼 그는 그들의 현재 처지에 관한 진리로 그들과 맞섰다.

스데반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여(행7:2-53) 자신의 처지를 드러냈다. 그때 그는 자기 백성의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특징지은 폭넓은 역사를 드러냈다. 그 책망이 성전에 대한 스데반의 맹세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관한 경고로 논증했다. 결국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평판을 제한시킨 장소는 아니었다. 그를 맞선 고소자의 협잡을 저지한 스데반은 그들을 맞선 하나님 입장을 민첩하게 말한 것이다.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축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긍극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거절한 셈이다. 그 때 스데반은 마지막 거절의 폭풍 혹은 회개의 부으심을 일으켜야만 했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7:52-53)”

군중은 스데반을 재판하려 모였고 역사와 진리는 그들에게 심판을 내렸다. 그들은 진리를 거절했고 그 사자를 죽였다. 돌을 던지는 것이 ad hominem 논증(어떤 아이디어를 공격하기 보다 한 사람을 공격하는 효과적 논증)이었지만 진리를 스톱시키거나 잠잠케 할 수는 없었다.

그들 눈에는 스데반이 살인자로 보였지만 그 역시 더 나은 어떤 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보좌 오른 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6)라고 말했다. 군중은 스데반을 도성 밖으로 끌어냈고 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는 피하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기 영혼을 부탁했다. 그의 마지막 기도는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는 것이었다.

그 내용의 기록자인 누가는 스데반 순교 현장에 없었지만 거기 있었던 한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스데반이 말한 마지막 말을 자세히 기억했을 것이다. 그가 바로 예수의 제자들을 열정으로 핍박한 사울로 알려진 사도 바울이다. 그 사울은 스데반이 죽기 전에 본 동일한 예수를 다메섹 도상에서 보기로 예정된 사람이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정예배

하나님을 따르는 방법(수1:1-9) 찬 497장

여호수아서는 한낱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따르는 가를 보여 주는 생활지침서입니 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하나님을 따랐습니까?

첫째, 강한 마음으로 따랐습니다.(1-2) 대권을 받은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담력이었습 니다. 담력이 바로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6, 7,9) 이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약속을 신뢰할 때 일어납니다.(5,9) 둘째,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기록된 말씀”인 율법을 철저히 순종하면 형통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7,8) 그래서 “모세에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라”고 했고, “이 율법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하고…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묵상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속의 거센 불순종을 꺽는 비결은 말씀 묵상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묵상을 통 한 영적 충만을 누리는 가정이 됩시다.

여호수아의 영권(수1:10-18) 찬 197장

여호수아가 내린 첫번 명령에 온 이스라엘의 전적 순종은(17) 영적 권위가 세워진 모습입니다. 영권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여호수아가 유사들에게 3일 안에 요단강 도하에 필요한 양식을 준비하라 했고(10-11)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의 모든 용사들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 의 기업을 얻기까지 싸우라고 했습니다. 이 명령은 (12-13) 이미 모세가 부탁한 것을 그대로 명한 것뿐 인데 온 이스라엘은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영권은 거창한 업적을 이룸보다 내게 주어진 일상생활의 작은 일부터 겸손히 순종함으로 세워집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그대로 따르거나(16) 순종하거나(17) 전심으로 지킬 때 세워진다는 말입니다.(18)

영권을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힘쓰는 가정이 됩시다.

라합이 받은 복음(수2:1-14) 찬408장

복음이란 신약시대에만 국한 되지 않고 구약시대에도 벌써 나타났음이 라합에게서 발견됩니다.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첫째, 하나님에 관한 소식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여리고에 살고있었지만 홍해도하, 불,구름기둥의 인도,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은 사건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천하지의 유일한 하나님이란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나라 왕을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라합이 받은 복음은 왕명을 거역하는 용기를 갖게 했습니다. 여리고의 왕명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온 집안의 구원으로 나타났습니다. 라합 이 진실한 표를 얻어 자기와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은 것은 놀라운 특권이었습니다.(행16:31) 이 능력의 복음이 우리 가정에도 적용되었는지 살펴봅시다.

라합 집에 모인 구약교회(수2:15-24) 찬245장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 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7:38)는 스데반 설교에 근거할 때, 라합 가정은 구약에 있는 주님의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참 교회의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라합이 모은 자기 식구들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고 여호와를 경외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두려움이 없었다면 여리고 성의 멸망 소식을 듣고 왕명을 거역하는 용단을 내릴 수가 없었을 것 입니다. 다음에 그들은 약속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라합 집은 하나님의 약속에만 모든 것을 걸고 집에 모인 것처럼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공로에 모든 것을 건 사람입니다.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는 가정이 됩시다.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 (수3:1-17) 찬344장

성경에 나오는 기적은 기이한 현상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홍해를 건넘은 구약교회의 세례를(고전10:), 반석의 생수를 마심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가리키듯이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하나는 여호수아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고(7)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미래적 승리를 보장하는데 있습니다.(10) 마귀, 사망, 죄의 상징이 홍해라면, 요단강은 죄를 만드는 육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모두를 단번에 영원히 깨끗하게 정리하셨습니다.(갈5:24) 그리고 기억할 것은 성결과 순종을 통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성결하라”(5)는 명령대로 회개와 믿음으로 자기를 살펴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3,11,14,15,17) 가정의 성결과 순종의 삶을 힘쓰십시다.

절대승리의 기념비 (수4:1-24) 찬265장

하나님은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게 하심으로 그 후손에게까지 진리를 가르치기를 원하셨습니다. 가르칠 진리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인도를 따름이 승리라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홍해의 건넘이 “죄로부터의 구원”이 라면, 요단강 건넘은 “성화” 곧, 구원에로의 성장을 가리킵니다. 가나안을 얻으려면 요단강을 건너야하 는 것처럼 바른 신앙성장을 하려면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기념비를 볼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물이 갈라지고 닫히는 것을 하나님이 친히 하셨고(18) 다만 그들은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만을 영원히 경외하게 하려는 것이 기념비를 세운 목적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의 인도와 그의 전능성을 아는 것도 중 요하지만 하나님 경외신앙이 더 중요합니다.(24) 기념비 중 기념비인 십자가를 중심에 두고 승리를 누리는 가정이 됩시다.

거룩으로 이기는 싸움 (수5:1-15) 찬 9장

요단강을 건넌 후에도 이스라엘은 거룩이 절대 필요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중심한 가나안 왕들을 이길 힘이 바로 거룩을 지키는 여부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거룩케 하셨습니까?

처음 맺은 언약의 표시인 할례를 받게 하심으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거룩은 새로운 무엇을 덧붙이는데 있지 않고 본래의 구원관계를 신실하게 지키데 있습니다. 그리고 싸움을 통해 얻은 승리의 열매를 먹음으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소산을 먹자 40년간 먹은 만나가 즉시 그친 것처럼,(10-12) 우리는 현재 치르는 영전의 승리를 통해 새 힘을 얻어 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군대장관인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따라 거룩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 가정의 거룩함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을 힘쓰는 삶을 살아갑시다.

영전승리의 원리들(수6:1-21) 찬 388장

여리고 전쟁은 우리의 영전에 계속 적용되어야 할 원리들을 보여줍니다. 그 원리는 어떤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무기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오합지졸에 불과한 이스 라엘은 방어형도 아닌 공격형으로 성을 돌고 소리치는 것으로, 허술한 전법일지라도 여호와께서 붙이시기로 한 약속을 전심으로 의지할 때 이겼습니다. 둘째, 순종 할 때 승리했습니다. 3절에 보니까, 성 주위를 매일 한 번 6일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고 외치라고 한 대로 했는데 견고한 성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6-19) “그대로의 순종”이 승리의 길입니다.(수1:8) 그리고 무너진 그 성에 들어가 해야될 일을 끝까지 그대로 수행 했습니다.(17-19)

이 원리를 신실하게 적용하는 가정이 됩시다.

여리고성 재건의 유혹 (수 6:22-27) 찬 402장

요단강을 건넌 후, 만난 첫 성인 여리고의 지리적 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리키는 영적 의미입 니다.

하나님 백성의 길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생각, 모든 이론, 모든 환경, 모든 단체, 모든 나라 등은 다 여리고 성입니다.(고후10:4-5)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정욕은 더욱 더 무너뜨려야 할 여리고 성입니다.

어떻게 성 쌓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째, 구별된 길을 가야합니다. 여리고 성의 라합과 그의 친족들이 정탐꾼에게 행한 믿음의 섬김으로 구원을 받은 것 같이 우리는 세상, 마귀, 육에서의 교묘한 유혹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구별된 길을 가야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집에 바쳐진 삶을 살아야합니다. 교회의 헌신된 삶을 사는 것이 유혹을 이기는 길입니다. 여리고 성 재건의 유혹을 이기는 가정이 됩시다.

패배에서 벗어나려면 (수7:1-15) 찬 202장

성공 원리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패를 막고, 회복하는 원리를 배우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이 성공 보다 실패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3천명이 아이성을 치러갔다가 36명이 죽고 실패한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작은 일에 불충했기 때문입니다. 삽시간에 여리고 성을 멸한 여호수아는 승리에 사로잡혀 문제를 점검하지 않고 정탐꾼의 정보를 토대로 작전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는데 공격 명령을 내린 것(1-2)은 얼마나 걸맞지 않은 것입니까? 작은 일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바친 물건 에 대한 그릇된 태도 때문입니다. 시날 산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금 오십 세겔을 훔쳐 자기 장막에 감춘 아간의 행위 (12)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범한 것처럼 취급되었습니다.(1, 11) 이미 주께 바쳐진 우리 몸이란 사실을 잊지맙시다.

승리회복의 은총 (수8:1-29) 찬 393장

아이성의 첫 번 실패로 의기소침한 이스라엘에게 또 다른 회복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1) 첫째, 하나님의 뜻에 맞는 최선의 작전으로 이겼습니다.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춘 계획을 세우고 순종함으로 이긴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아이성이 멸하기까지 단창으로 가리키게 함은 거기서 무슨 힘이 나온 것이 아닙니 다. 오직 여호수아를 통해 일하고 계심을 보여 그의 권위를 세우는데 있었습니다. 홍해를 가리키는 모세의 지팡이로 바다를 가른 것이나 법궤를 멘 제사 장이 요단강에 들어 섦이 여호수아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할 때 된 것과 같습니다. 셋째, 원수를 철저히 죽였습니다. 여리고 성도 그러했지만 아이 주민을 모두 죽였고 아이 왕은 성밖에 매달렸고 가축들은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주장함으로 회복의 은혜를 누리는 가정이 됩시다.

에발 제단이 주는 교훈(수8:30-34) 찬 361장

요단강을 건넌 후, 에발 산에 제단 쌓는 것은 이상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 모세가 지시한 것을 그대로 한 것뿐입니다.(신27:4-6)

첫째, 예배중심의 삶을 배웁니다. “토단을 그대로 쌓고 철기를 대지 말라”(30-31)고 한 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진실되이 드려지는 것이 참 예배임을 보여줍니다. 번제는 헌신이고 화목제는 감사제입니다. 둘째, 에발산, 그리심산에 서서 축복과 저주의 명령에 아멘하라고 하심은 “기록된 성경”을 중심한 삶이 얼마나 귀한 가를 보여줍니다. 법궤를 중심하여 절반은 그리심산, 절반은 에발산에 서게하여 그들의 기억에 깊이 심어 놓으셨습니다. 셋째, 이것은 순종 중심의 삶을 가리킵니다. 기록된 말씀은 전파되어야하고 설명되어야하고 읽혀져야하고 들려져야만 했습니다.(34-35) 모세, 여호수아, 이스라엘이 따른 “순종 중심”이 우리 가정이 추구하는 절대 목표입니다.

에발제단의 목적(수8:30-35) 찬241장

여리고와 아이성을 정복한 후 에발산에서 번제와 화목제 제단을 쌓고 율법을 돌에 기록케 한 것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영적 승리의 방법은 말씀 순종뿐 임을 다시 교육함에 있었습니다. 레위 제사장의 궤를 그리심산과 에발산 중간에 세워 놓고 율법이 낭독될 때마다 응답케 하신 것은 일찍이 신명기 27장에 언급된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역시 이것은 여호수아를 부르실 때 율법을 순종할 때 형통하는 가르침을 반복한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의 길은 말씀 순종에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기록된 말씀을 전수하려는 것입니다. 율법을 돌에 기록하고 낭독하며 아멘 하게 한 것은 언약 백성의 힘이 말씀을 가까이 할 때 되는 것을 가르치는 실물 교육입니다. 복음 안에 있는 우리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따라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영원한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구하자(수9:1-15)찬174장

두 성을 정복한 소식이 알려지자 기브온 사람들이 생존 자구책으로 거짓으로 화친을 청하러 왔을 때 여호수아는 실수하여 큰 위기를 당했습니다. 신앙생활에 영적 분별력은 왜 필요합니까?

첫째, 원수의 교묘한 거짓말이 많기 때문 입니다. 기브온의 거짓된 항복은 목적은 좋았어도 방법은 그릇된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 가면 되는 수단주의는 비 성경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것이고 그 나라의 연합을 헐어버리는 원인이기 때문 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게으름이 많기 때문입니다. 승리의 분위기 속에 있는 여호수아는 이 일을 하나님께 아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드려 그들로 성전에서 물 긷고 나무패는 일에 종사케 했습니다. 기도 없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사소한 일에까지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그들의 악한 처사가 용납되었지만 하나님 교회의 큰 오점이었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집시다.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수9:16-27) 찬321장

기브온의 거짓은 분명한 죄였지만 긍휼 많으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신 자비의 동기는 어디에 있었나요?

첫째, 하나님 편에 서려는 선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족속을 다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그들은 살기위해 그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아무리 절박해도 주께 항복하면 주님은 반드시 구해주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둘째, 겸손한 마음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물 속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으려는 겸허한 심정으로 주님께 은혜를 구할 때 주님은 반드시 구하십니다. 옷자락이라도 붙잡으면 구원받겠다는 혈루증 걸린 한 여인의 마음이나 부스러기라도 좋다고 하는 가나안 여인의 불퇴의 믿음처럼 겸손히 나갈 때 은혜를 받습니다.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기기 때문입니다.

기도응답(수10:1-34) 찬482장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10:14)

여리고성, 아이성 그리고 기브온 항복의 소식을 듣고 위기를 느낀 남부 5개 연합군의 공격이 맹렬하게 진행될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 손에 그들을 붙이셨습니다. 그들의 작전에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신 것이지요. 큰 우박으로 그들을 죽이며 여호수아의 간구에 따라 다 멸하기까지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증거들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것을 볼 때 자기 백성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영전 승리에 동참하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초자연적 일을 행하시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빌4:6-7) 부족한 나의 기도 소리라도 세밀하게 들으시고 크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이 분을 향해 입을 크게 열고 부르짖읍시다.

가나안정복(수11:1-23) 찬221장

가나안 족속 중(8) 호흡있는 자는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11) 멸절시킴은 세 가지 영적 교훈을 보여줍니다.

첫째, 참 여호수아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의 모든 부패성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멸하신 것의 상징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의 정과 욕심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갈2:20).

둘째, 가나안이 망한 원인은 그들의 강팎 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20) 은혜가 없고 심판을 자처하는 교만한 마음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강팍한 옛사람은 주님의 죽음과 함께 죽었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전쟁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로 영전을 모두 이기시고 쉬게 하셨으며 지금은 우리가 주 앞에 서기까지 승리가 계속되게 하셨습니다. 반드시 이기도록 한 싸움이기에 우리는 행복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영전 속에 숨겨있는 하늘 안식을 즐깁시다.

기업의 꿈을 그리자(수11:12-23) 찬174장

아직도 땅 분배를 받지 못한 7개 지파의 분배가 특이한 방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선정된 세 명의 책임자로 남은 땅을 정탐하고, 자기 지파에 알맞은 지역을 종이에 그려, 하나님 앞에서 제비뽑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기업에 대한 꿈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받은 “은사에 대한 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받은 구원에 포함된 구체적인 복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나누어주는 꿈을 꾸어야합니다. 먼저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간절히 사모해야합 니다. 그리고 마음의 캔버스 위에 그 꿈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어서 누가 물을 때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더 나아가 말씀의 거울에 비추 어 정련된 그 꿈을 가슴에 품고 기도해야합니다. 을 넓게 열어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시81:10-14)

신령한 땅을 뺏기(수12:1-24) 259장

본문은 요단동편의 바산의 옥과 아모리의 시혼을 정복하고 두 지파 반에게 기업을 분배한 내용과 남부 31왕들을 파한 기록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신령한 땅을 빼앗는 진리 를 가르칩니다.

첫째, 그 땅이란 이 세상에서의 택함 받은 하나님 백성을 가리킵니다.

둘째, 그 땅을 뺏는 방법은 주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지혜는 단지 도구일 뿐이지 하나님이 친히 싸워주심으로 땅을 차 지하게 하십니다.

셋째, 그 땅을 뺏은 이후에는 기업지로 삼아 잘 관리해야합니다. 구원받는 것은 순간적 이지만 구원의 삶을 완성하는 것은 평생 걸립니다. 나아가 사단아래 놓여있는 마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어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해야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정복자의 꿈을 꾸며 실행에 옮깁시다.

신자의 기업(수13:1-33) 찬492장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 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수13:33)

12지파에게 기업이 분배되었지만 레위 지파는 기업이 분배되지 않고 그들의 가축과 거주할 성읍과 들, 그리고 도피성 6개가 분배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이 기업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제사 곧 예배가 이스라엘 생활에 중 심 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신약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벧전2:9) 그리스도 인은 주님의 왕, 제사장, 선지자의 삼중직을 가진 자이기에 복되며 책임이 막중합니다. 의와 진실과 거룩함을 드러내어 하나님 나라의 진수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원한 기업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언제 어디서나 주님께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여야 합니다.

갈렙의 신실한 기도(수14:1-15) 찬 382장

본문에 나오는 갈렙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삶이 어떠함을 또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45년 전, 가나안을 정탐하고 보고할 때 가진 믿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7)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는 확신이 변치 않은 사실은 그의 마음이 주님과 그의 말씀만을 온전히 좇은 결과로 주어진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11-12) 여호수아와는 달리,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자기 기업을 사모하던 갈렙은 지금 강청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께서 혹시 나와 함께하시면”(13) 이긴다는 겸손한 태도로 구할 때 어려운 아낙 고지를 자기 기업으로 차지한 것입니다. 신실한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갈렙가문의 믿음(수15:1-20) 찬340장

우리 신앙의 본인 갈렙의 신앙은 어떠했습니까?

첫째, 갈렙은 헤브론 산지를 얻으려는 갈망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가정적 희생까지도 감수한 것은 그 길이 영광스러운 길임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딸, 악사의 결혼 대상자로 기럇세벨을 차지하는 사람에게 준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둘째, 믿음의 가문을 만들었습니다. 딸까지도 기업에 대한 사모심이 있었습니다. 출가하면서도 복을 요청했습니다. 기업을 복으로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우리의 기업입니다. 특히 그의 말씀이 기업이며 교회의 섬김이 기업입니다. 믿음이 장성한 사람이 되려는 강한 욕심이 필요합니다.

갈렙처럼 위대한 믿음의 가문을 만들기 위해 나부터 씨를 심읍시다.

요셉지파의 기업(수16:1-10) 찬340장

요셉지파의 기업 지를 보이는 본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첫째, 요셉은 하늘의 복, 원천의 복, 젖먹 이는 복, 태의 복을 받아 물가의 심긴 나무가 담장을 넘은 것처럼 조상의 모든 복이 그에게 임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창49:25) 숫한 고난의 연단을 통해 정금처럼 쓰임 받은 것 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요셉의 복의 실체를 받은자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제일 중요한 기업은 주님의 형상을 닮는 영혼의 변화입니다. 지경을 넓히는 야베스의 복도 영혼 변화에 초점을 맞출 때 온전해 집니다.

셋째, 아무리 큰 기업을 받았어도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좇아내지 못한 것이 화근이기에 언제나 전쟁을 통해 좇아내게 하셨습니다. 내 속에 세속적인 습관과 죄악을 반드시 좇아내야 합니다. 사람과의 비교로 낙심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수준에 맞춰 하늘 기업을 누리는 신자가 되어야합니다.

강청하는 기도(수17:1-18) 찬482장

하나님의 은혜는 전심으로 강청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진리를 다음 두 사건을 통해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슬로보핫 딸, 다섯이 자기들의 기업지를 달라고 요청하여 얻은 것은 신분을 막론하고 은혜를 구하면 얻는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천국은 침노함으로 얻기 때문입니다. 이미 임한 그 나라의 은혜를 존귀하게 여겨 간구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이 열심이 거듭난 자의 특징입니다.

둘째, 요셉지파는 스스로 개척함으로 헤브론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어도 누리려면 뜨거운 열심으로 구하고 찾아야합니다. 이것은 은혜의 맛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은 인간의 자유 의지의 활용과 지각을 사용함으로 온전해집니다. 지금 있는 자리가 어떠 하든지 믿음으로 입을 열어 하나님께 간절히 구합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나눠주는 지파 (수18:1-28)찬355장

시므온은 유다지파의 기업에서 어느 일부에서 얻었고, 스불론은 베들레험 지역을 차지 했고, 잇사갈은 북쪽 갈릴리 해 지역을 차지 했으며, 유다는 사자처럼 나누어주는 강한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 받아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복된 무리입니다. 그래서 구원 후 우리는 이웃에게 이 은혜를 나눠주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제와 증거로 열매를 맺힙니다. 그 열매가 풍성하여 강한 신자가 되려면,

첫째,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잘해야 합니다.(요15:5) 그리스도안에 들어가게 한 것은 내가 아니고 주님이십니다. 이제는 그 안에서 그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의 말씀을 순종해야합니다. (요15:7) 그의 주권이 나타나는 말씀인 성경을 절대 순종할 때 능력을 받습니다. 셋째, 하나님 사랑을 맛 보아야합니다.(요15: 11) 주 안에서의 생활은 사랑을 실감하는 삶입니다. 그 사랑으로 만족 할 때 천하를 품는 담력이 생기며 받은 것을 나눠주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기업분배의 의미(수19:1-51) 찬246장

이제 남은 7지파의 기업지가 하나님 앞에서 제비를 뽑음으로 모두 마쳐졌습니다.(51) 기업분배를 구체적으로 마쳐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드러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첫 언약(창12;1-3)이 오랜 세월 후에 반드시 이루어 진 것을 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그리스도안에 구체적인 나의 기업이 주어졌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후, “내 은사” ‘내 상급“ ’내 처소”가 약속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안식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받은 우리들은 이제 그 안에 주어진 풍성 한 복(엡1:3)을 주장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락을 누리는 자가 되자.

도피성에서의 회복 (수20:1-9) 찬79장

12지파의 땅 분배를 마친 후, 그들의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이 되게 하려고 이스라엘 땅의 중간 지 역에 도피성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갈릴리 게데스, 세겜, 기럇아르바, 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 골란, 도합 여섯 곳에 도피성을 만들었습니다. 레위인들이 관리하에 오살자들이 도피하여 살게하려고 만든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안에 기름 부으심이 있기 때문에 결코 의도적인 죄(intended sin)를 범치 못합니다. 우리가 약하여 넘어진 자리에서 벗어나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성은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단번에 죽으심이 나의 모든 죄(every sin), 나의 죄책, 나의 정욕을 단번에 처리하셨고 죄를 하나도 범치 않은 자로 인정해주셨기 때문입니다.(히10:12-18) 영원한 도피성이신 그리스도에게 피하여 깨어진 교제를 회복합시다.

사방에서 오는 안식(수21:1-45) 찬469장

12지파의 땅 분배를 마친 후, 이제 레위지파에게 구체적인 땅을 정하고 마치는 일이 본문에 나타납니다.(41) 레위는 기업이 없는 특이한 지파이지만 하나님의 예배하는 일을 잘 하게 하기위해 일상 생활을 보장하는 거주지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그 만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민족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은 사방으로 안식을 주셨습니다.(44) 그리스도인에게도 예배 중심한 삶이 올때 진정한 안식이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밖에서 안으로,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안식을 구하지만 우리는 위로부터 내 안에 임하는 안식이 가정, 직장, 사회로 나가는 안식을 구합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순종이 참 안식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나의 모든 방면에 진정한 안식이 있는가를 살펴 안식을 회복 시키는 하루가 되게합시다.

영적긴장의 필요성(수22:1-34) 찬394장

일찍이 요단동편 기업을 받은 르우벤, 갓, 므낫새 반지파의 임무가 마쳐지자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확인하고 축복하며 돌려보냈습니다.(5-6) 그런데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엣(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신다)이란 단을 쌓음으로 다른 열지파의 오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호와 경외의 신앙을 떠난 증거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그들 나름대로 후손들의 장래신앙의 변질을 걱정해서 한 행동임이 드러남으로서 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24-29)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과 그를 경외하고 성결을 유지하려는 영적 긴장이 절대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생명을 잃은 신자이며 교회입니다. 성결과 화평을 좇지 않으면 아무도 주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히12:14) 내가 몸담고 있는 가정과 교회에 이런 영적 긴장이 있기를 간절히 구하십시다.

복을 유지하는 길 (수23:1-11) 찬455장

모세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장래에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을 잘 지키면 복을 받지만 그렇지않으면 저주가 임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28장에 이미 말한 것을 또다시 반복한 것 뿐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우상을 섬기지 않으면 복을 받느다는 것입니다.(6-8) 하나님이 도우시면 한명이 천명을 당하는 능력이 임한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미약해도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일을 계속 힘쓰는 자는 한 사람이 천을 당하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능력이 주어지도록 되어있습니다. 자신심을 버리고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이 복을 누립시다.

경고에 귀를 기울이자(수23:12-16) 찬167장

아무리 사방의 안식을 얻고 복을 누린다할지라도 여호와 경외신앙을 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언약을 어기고 다른 신을 섬기면 그 결과는 멸망이라는 사실입니다. (16)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참스승은 좋은 말만 하지않고 경고와 책망을 들려줍니다. 이 경고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으면서 그 안에 머무는 생활을 힘쓰지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못하는 자가 될 수 있고, 포도나무에서 끊쳐질 수 있습니다.(요15:1-5) 택함받았다는 확신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구원의 놀라움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마음도 절대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산 구원, 산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경고에 즉시 응답합시다.

한 사람의 신앙(수24:1-18) 찬506장

여호수아 23장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향한 설교라면 24장은 온 백성을 향한 그의 고별설교입니다. 같은 요지를 반복한 것은 중요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언약이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2-10) 백성, 율법, 땅이란 세 가지가 지금 주어진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구원이었기 때문입니다.(창3:15,12:1-3) 그러나 이 놀라운 언약이 한 가정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을 보면 정말 기이합니다.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노라”(15)고 한 것은 약속 성취의 방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 나의 한 가정이 참되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지킬 때, 그 자체가 이웃을 살리는 길임을 믿고 여호와 경외신앙을 지켜나갑시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수24:19-33) 찬416장

여호수아의 설교를 통해 구약시대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여호와만을 섬기리라(18)”고 한대로 그대로 실행했음(31)이 그 증거입니다. 반면에 여호수아는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 떨어질 때 오는 심각한 벌을 경고함으로 이 부흥의 열매가 계속되기를 원했습니다. 어떻게 바로 섬길 수 있나요? 첫째, 내 속에서부터 세상이란 이방신을 제해야하며(23) 둘째, 하나님의 목소리를 전적으로 청종하며(24), 셋째, 온전히 주님을 따라 가야합니다.(31) 신이 너무 많아 공허와 혼돈 속에 살아가는 오늘날의 부흥을 누리는 길은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의 진실과 사랑에 만족한 삶을 누리는데 있습니다. 아침마 다 주의 인자로 만족한 모세처럼(시90:14) 말씀 앞에 정직히 서서 하밍버드가 꽃에서 쑬을 빨아 먹듯이 “내게 주신 말씀”을 묵상하여 그의 풍성한 사랑을 맛보며 살아가십시다.

당신 의지를 주님 의지 위에 세우라

의지(volition)란 인격의 삼 요소, 지성, 감성, 의지 중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기능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의지를 가리킨다. 의지를 다른 말로 뜻(will)이라고 한다. 성경은 이 의지를 어디에 두느냐를 중요하게 다룬다. 이것은 그 사람의 향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겟세마네 동산 기도의 결론이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한 것은 자기 의지를 하나님 의지에 두는 결정이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의지는 우리 인생의 나침반이요 자동차의 핸들과 같다. 이 의지는 때로는 결심으로, 때로는 소원으로, 때로는 고집으로 나타난다. 이 의지의 기둥을 든든한데 세우는 자가 복되다. 그러나 약한 곳에, 변하는 곳에 세우는 자는 믿을 수가 없다.

다니엘의 위대한 점은 바로 자기 의지를 주님의 의지에 세웠다는데 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것이 그의 의지를 하나님 의지에 둔 모습이다. 그의 소원을 하나님의 소원에 둔 인생을 살 때 그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상황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정하는 생활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런 의지를 세우려면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적 뜻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해야한다. 하나님의 의지는 성경에 표현되었다. 성경은 하나님 의지의 책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가 분명하게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소원으로 충만하다.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은 그의 의지를 가리킨다. 그것의 요약인 십계명과 사랑 계명은 하나님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의지 위에 우리 의지를 세울 때 보장을 받는다. 절대 의지에 나의 약한 의지를 세우는 지혜자가 될 때 바로 분별하고 바로 살아 나갈 수 있다.

둘째, 유혹을 이겨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의지를 알고서도 자신의 의지 위에 하나님의 의지를 맞추려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는 인간의 얄팍한 욕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다니엘은 당한 환경이 어려운 처지로 자기 신앙의 절개를 꺽기 쉬운 환경에 있었다. 그럴 때 그는 무엇을 했는가? 다른 소년들이 쉽게 따르는 길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알고 거기에 자신을 드렸다. 이런 외적 환경의 유혹을 이김으로 자기 의지를 하나님 의지 위에 세웠다.

셋째, 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한 다니엘처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 의지 위에 세우는 자이다. 그리고 말씀의 거울을 보아야 한다.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를 발견하고 그 의지가 빛이요, 그 의지가 소망이요, 그 의지가 더 강한 것을 발견하고 나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세상에 흔들리지 않은 하나님의 절대 의지에 우리 자신의 뜻을 세워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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