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4:1-22

1. 기름 부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성령을 부어 성령으로 친히 일하시는 하나님 앞에 사람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 도구라면 모신 성령님께 협력하고 순종함으로 모든 일을 성령의 사역이 되게 해야한다.

2. 하나님 자리의 월권을 싫어하고 늘 하나님과 교감 있는 다윗의 살아 있는 신앙을 본다. 절호의 기회에 사울의 목을 쳐도 될 법 한데도 사울의 겉 옷자락만을 베었다. 그것도 악심보다는 사울을 사랑하는 증표로서 그리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그를 지배하여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다윗처럼 나도 하나님과의 연합의 증거인 예민한 영감을 소유하고 싶다.

삼상 2:26 바른 성장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삼상2:26)

[설명]

경건한 어머니에게서 출생한 사무엘의 성장 과정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을 받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장 표현을 생각케 한다.(눅2:52) 육체적, 지성적, 사회적 성장보다 영적 성장이 기본이다. 사무엘의 경건은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니고 무수한 연단 과정을 통해 말이 하나도 그냥 땅에 떨어짐이 없는 영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당대의

타락한 엘리의 지도 아래 있었어도 온전한 영적 성장을 이룬 것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 말씀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한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잘 받아 그대로 순종하는 좋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거듭난 신자의 성장이 바로 되려면 다른 무엇보다 말씀을 잘 받는 순종의 마음을 가져야한다.

벧전 4:14 성령의 임재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4:14)

[설명]

베드로 전서의 특징은 환난 속에 있는 신자가 어떻게 사는 지혜를 보여주는데 있다. 이리가운데 있는 양처럼 긴장, 고통, 상처, 죽음의 위기가 엄습할 때 교회는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평안할 때 하지 못한 은혜를 체험하고 누리는 순간이란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시련이 금보다 더 귀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상투적인 용어가 아니라 시련의 때에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라는 것이다. 고난이 다가 올 때 믿음으로 바로 받으면 즉, 복음 때문에 욕을 당하면 반드시 영광의 영이 임하여 감당할 힘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 체험은 정말 신비로운 사건이다. 성령이 그의 마음을 새롭게 하며 그 일을 이길 힘이 생기고 그 일을 통해 지혜를 배우게 하며 신앙의 차원을 높인다. 사도들은 위험을 제해달라는 기도보다 이 위협을 감당할 능력을 받아 복음증거를 더 강하게 하는 상승작용을 체험했다. 감당할 시험만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자.

벧전 1:8 성령의 능력의 세례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벧전 1:8)

[설명]

베드로가 서신을 쓴 성도들은 복음 때문에 흩어져 고생하는 나그네지만 하늘 영광을 아는 빛으로 가득 찬 삶을 산 자들로 우리의 산 표본이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첫째 그들은 그리스도를 실제로 본 일이 없는 것이 우리와 같다. 둘째, 주를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기록된 말씀을 따라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이 우리와 같다. 보고 믿는 자 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된 행복을 알기 때문이다. 셋째, 영광스러운 즐거움의 체험이 일어난 것이 우리의 본이다. 이 체험을 퓨리탄 신학자들은 성령의 능력의 세례라고 말한다. 성령으로 중생한 신자는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가 된다.(고전12:13) 그의 긴 영적 여정에서 감당할 힘을 주실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 곧 능력의 세례를 받는다. 이것이 신자 생애의 최고의 체험이다. 변화산 주님을 만난 세 제자의 체험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 능력을 맛본 자는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된다.

존 블래포드 (1510-1555)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는 자기 생명을 잃었다. 서약을 했기 때문에 그는 거짓말한 사람으로 정죄되어다. 겸손하면서 간혹 소심한 사람인 이 순교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많이 인용되지만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16세기는 영국사에 가장 종교적으로 위험한 때였다. 생존을 위해서는 군주의 변덕에 의존하면서 카멜레온 처럼 색깔 변화를 요구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의해 사로잡혀 어떤 희생을 치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감행해야만 했다. 존 블레포드를 위해 그 희생은 정부의 약정된 지위와 마침내 그의 생명을 드려야만 햇다.

블래포드는 한 부자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이 비지네스와 법의 훈련을 받았다. 그의 기술은 유명한 헨리 8세의 정부를 섬기도록 부름받았다. 남자 상속자를 위한 헨리의 요청은 로마 캐톨릭과 결별하게 되었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아내들을 죽이거나 추방시키게 했다.

런던의 한 법학도로 있던 블래포드는 그리스도를 믿었고 곧 캠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려고 갔었다. 왕 에드워드 6세의 짧은 통치기간 1550년에 교목으로 안수를 받았다. 한번은 블래포드가 교수형을 당하는 죄수들을 돌보고 있을 때 “나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간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그 자신의 최종적인 죽음의 때를 예견한 것처럼 보인다.

1553년 에드워드는 죽었고 메리 왕정이 들어섰다. 피흘리는 메리로 알려진 그는 영국을 캐톨릭 교회로 돌이키려는 수고로 300명 이상의 순교자들을 내었다. 어떤 설교자 혹은 고위 성직자는 돌아갔고 많은 사람이 타협했다. 그러나 블래포드는 메리가 그에게 이교파간 영웅 약조를 체결했다.

메리의 등극 원년 어느 더운 8월의 일요일 그녀의 충성스런 배스 감독은 최근의 몰락하는 왕에 대해 비판하는 설교를 했다. 군중은 분노하며 위협적이었다. 한 청중이 감독에게 칼을 던졌으나 맞았지만 상처는 입지 못했다. 그 때 블래포드가 나타나 군중은 조용하였고 그들에게 질서를 촉구했다. 자신의 위협 속에서도 공포에 질린 감독을 보호하며 피신시켰다. 3일 후 블래포드는 난동으로 체포되었다.

2년 동안 블래포드는 습한 영국 감옥에서 설교하며 글을 쓰며 살았다. 그의 말이 너무 신실했기 때문에 간수들이 밤에는 그를 석방하여 날이 밝기 전까지 돌아오도록 허락했다. 그는 항상 그렇게 했다. 마침내 허물을 찾기로 결정한 교회재판정에 의해 조사하기 위해 취조관은 여왕의 선처를 받아드릴 여부를 물었다. 블래포드는 대답하기를 “나는 생명이신 은혜의 주님께 대한 나의 의무와 일치한 호의에 대해서는 왕의 호의를 기뻐하지만 주님을 불쾌하게 하는 일은 어떤 고통의 죽음보다 더 나쁩니다.”고 말했다.

당대의 그 위대한 설교자는 1555.7.1 화형장으로 끌려갔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그를 둘러싼 군인들에게 그 동안 그릇된 행동에 대해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막대기를 주워 입을 맞추었다. 그는 한 젊은 죄수와 함께 화형대에 묶여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형제여 위로가 있을 지어다. 오늘밤 주님과 함께 즐거운 만찬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네, 거기서 우리의 모든 고통이 평화로 바꿔지고 우리의 싸움이 기쁨의 노래로 변할 것이네.”라는 확신 찬 말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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