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하나님

미얀마에 사이클론의 재난에 이어 금주에는 중국에 진시황의 왕릉 관광지로 유명한 쓰촨성(四川省)에 진도 7.8도의 강진으로 4만여명이 죽고 실종된 사태가 일어나 세상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진정한 소망이 어디 있는가를 찾게됩니다. 로마서 5장 8절-13절에 바울은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았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소망은 한마디로 완성된 구원이었습니다. 구원 혹은 구속을 빼 놓은 소망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망, 비죤을 꿈꾸고 나간다 할지라도 죄에서의 구원이 없는 소망은 참 소망이 아닙니다. 그 마지막은 허무이기 때문입니다. 밭의 소출이 풍성하여 창고를 짓고 영원토록 즐기리라는 한 부자의 터지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보내 열방에 흩어진 택한 자를 구원하는 경륜(계획)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경륜이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안에 있는 자는 아브라함의 복의 근원이 되어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삼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소망을 이룹니다. 구속 역사가 모두 마치는 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골자입니다.

또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 중요한 소망을 이루려고 성부는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시고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때로는 보슬비처럼, 때로는 불처럼 일하십니다. 이 사역으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현실화됩니다. 제일 큰 문제는 언제나 우리 자신입니다. 자신 속에는 언제나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정욕과 부패성이 돌덩이처럼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때로는 보이게, 때로는 보호색을 띄고 나타납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왕국을 꿈꿉니다. 경건을 이용하며 직분을 이용하여 소망 아닌 소망의 신기루를 따르는 것처럼 됩니다.

그러나 택한 자의 마음에 계신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심으로 참 소망의 길을 걷도록 능력으로 도와주십니다. 성령을 좇아 갈 때만 우리는 참 소망과 참 비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소망을 가진 자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산 소망입니다. 영원히 남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일시적 기쁨이 아닌 영원한 기쁨을 맛봅니다. 이것이 영생의 체험이며 이것이 성령 충만의 맛입니다. 이 땅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 소망과 기대를 거는 자가 아니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입니다. 이런 소망을 아는 자에게는 찬송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처럼 이런 산 소망을 갖고 성경에서 샘을 파며 기도 속에서 소망을 꿈구며 성령의 인도가 무엇인지를 배우기 바랍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때야말로 우리으 소망이 더 선명해지는 순간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우리를 잘 인도하실 것입니다. 정해 놓으신 영원한 목적지를 향해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29편-50편 )과 함께하는 가정예배

여호와의 소리(시29:1-11)

시인은 온 우주와 세상만사에 꽉 찬 여호와의 권위(authority)의 영광(glory)과 말씀(words)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1) 여호와에게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 분명한 이유는 그만이 모든 영역에 왕으로 좌정하셔서 온 세상을 친히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3-9절에는 자연현상 가운데 친히 간섭하심을 지적하여 그의 왕되심을 밝힙니다. 그 분의 크고 깊고 넓고 높은 세심한 통치는 대양의 물결이나 뇌성, 꺾이고 부서진 레바논의 백향목, 폭풍우에 흔들리는 산림, 광야를 진동하는 천둥과 화염을 가르는 번개같은 자연법칙의 운행 뿐 아니라, 암사슴 한 마리의 낙태하는 일까지도 다 포함합니다.

이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하나님은 치료하시고 구원하셔서 의를 세우시는 절대 왕이십니다. 노아시대에 전면적으로 임한 홍수로 인해 일그러진 땅을 하나님의 입김으로 회복시키셨듯이 그분은 약속하신 말씀대로 자기 백성을 억만 죄 가운데서 구하시는 구원의 왕이십니다.(10)

그런데 다윗을 더욱 감동시킨 것은 이 놀라운 일을 이루실때 그 왕은 자신의 소리 곧 말씀으로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한 것이 그의 말씀이 온 우주에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성문화 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성경의 권위를 믿고 순종하는 이유는 말씀으로 만사를 친히 다스리시는 만군의 왕 여호와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그 주권과 왕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반드시 권능을 받고 평강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11) 누구든지 현재 있는 거기서 성경을 순종하기만 한다면 다윗처럼 그를 진실로 경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원한 감사(시30:1-12)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시작된 우리 구원은 자아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 생각을 공격하며 십자가를 팽개치도록 유혹합니다. 구약의 다윗도 이 유혹과 자아부인과 십자가 지는 과정을 거침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고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다윗의 처지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잠깐의 노염과 저녁의 울음이 있었습니다. 무슨 죄 때문이지 잘 드러나진 않지만 그는 진정으로 슬퍼하며 회개합니다. 그런 처지를 당할 때야말로 자아부인을 배우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목숨(자아)을 잃는 진리를 잘 배워야합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주로 높이고 그가 자기를 진토에서 건지셨음을 말함으로서 자아부인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님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영혼깊이 배워 자기를 종으로 철저히 인정할 때 자기 목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은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마5:3)

둘째, 그는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자기를 죽이는 용광로의 불과 같습니다.(9-10) 기도의 골방에서 우리는 새롭게 빚어지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도 내용을 보십시오. 여호와만이 왕이시고 하나님의 긍휼과 도움만이 자기를 살리는 것을 알고 전적으로 그에게 매달립니다.(9-10)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를 나타내는 시간임을 봅니다. 생각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빌4:6-7)

셋째, 그 결과는 풍성한 삶이었습니다. 살아나 많은 열매가 맺히는 것은 죽을 때 오는 것입니다. 요동치 않는 신앙(6), 슬픔이 춤으로, 베옷이 기쁨의 옷으로 바뀌고(11) 영원한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12)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감사와 찬양은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노염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한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담대한 신앙 (시31:1-24)

신앙의 생명은 담력입니다. 또한 바울은 “너희 믿음을 스스로 시험하라”고 하며 확증이 없으면 버리운 자라고 까지 말합니다. 그래서 담력이 없는 작은 믿음은 불신앙이고 의심하는 믿음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고전13:5) 그래서 우리 주님의 우리에 대한 최대관심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신앙을 갖는데 있었습니다. 본문의고난 중에 보인 다윗의 모습이 그런 담대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담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첫째, 그는 하나님과 연합되어있음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믿음은 주님과의 연합입니다.(요1:12) 연합되었기에 고난당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는 두 번이나 자기를 구해달라고 그것도 속히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으며 자신을 지도하고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1-3,15-18) 예수와 연합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모든 좋은 것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영적부요로 인해 어떤 고난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감찰하심을 알고 담력이 생겼습니다. 다윗이 기도에서 원수의 흉악한 궤계로 그가 난관을 겪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허탄을 숭상하고 거짓입술로 은밀한 그물을 쳐 다윗을 궁지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께서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자기 영을 아셨고 그의 발을 넓은 곳에 두셨음”을 알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즐거움이고 찬양의 근거였습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14) 셋째,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담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연합된 주님이 자기를 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문제를 모두 주님께 위탁한 다윗은 담대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강하고 담대하라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23)

담대한 신앙의 목표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맛본 하나님의 얼굴과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다루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환난을 이길 수 있게 합니다.

죄 사함의 은총(시32:1-11)

앞선 시편에는 고난 속에서의 구원을 감사하는 찬송이 많았지만 본문은 죄로 인한 절망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훗날 바울은 로마서에서 구원을 설명할 때 죄 가리움을 받은 자의 행복에 관한 다윗의 체험(롬4:7-8)을 인용하여 속죄의 은총을 설명합니다. 다윗이 맛본 죄 사함의 은총이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 그는 죄 사함의 은혜가 복중의 복임을 확신했습니다. (1-2) 허물이 용서되고 정죄를 당치 않는 자가 복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진정한 구속은 죄 사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엡1:7) 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진실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습니다. 그 행복을 누리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둘째 죄를 고백했습니다.(3-4) 죄 고백하지 않을 때는 종일 신음하며 심령이 메말랐습니다. 재갈을 물여 통제하는 말이나 노새처럼 미련한 삶을 살았습니다.(9) 그런 다윗이 죄를 토해낼 때 모든 악이 즉시 사해졌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으며 자기의 갈 길을 친히 알게 되었습니다. 홍수가 범람해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며 여호와만이 은신처임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6-8) 자기 죄를 인정하고 숨기지 않고 자복하였을 때 기억지 아니하시고 즉시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죄 자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2000년 전,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의 모든 죄가 처리된 것을 믿고 진실되이 죄를 시인하고 그 공로를 감사함으로 받을 때 죄 사함의 은혜는 내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죄 사함의 은총이란 하나님사랑의 체험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신뢰함은 하나님자신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성령이 부어지고 사랑의 경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10) 그 결과 여호와만을 즐거워하고 그를 찬송하는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에 거하기 위해 진정한 회개의 사람이 됩시다.

여호와를 찬양할 이유(시33:1-22)

시편 33편은 구원받은 성도의 찬양입니다. 형식적 찬양이 아닌 생명체의 움직임 같은 반응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찬송입니다. 구원받은 감격으로 영적 기능이 활발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어떻게 왜 찬양했습니까?

첫째,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것은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1)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인 하나님을 즐기는 것(enjoying God)은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맛 볼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의는 믿음으로만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으면 자연히 감사가 나오고 찬양하게 되고 그를 즐거워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감격으로 찬양이 가득 찬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둘째, 무엇으로 찬송해야했습니까?(2-3) 수금과 열줄 비파와 같은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했으며 무엇보다 영혼에서 구원의 감격으로 터쳐 나온 새 노래와 즐거운 소리와 공교한 연주로 찬양했습니다. 문화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찬양하되 특히 자기 영혼으로 노래할 때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마리아처럼(눅2:), 빌립보 감옥의 바울과 실라처럼(행16:) 모든 지체를 찬양의 도구가 되게 해야합니다.

셋째, 왜 여호와를 찬양해야만 합니까?(4-5) 말씀의 정직 성과 하나님의 진실한 행사 곧, 정의, 공의, 사랑이 충만한 것을 보고 찬양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자신의 성품을 온 세 상에 가득 채우시기 원하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그의 진실과 의와 사랑을 나타내기 원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천지 와 바다, 만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그의 도모는 견고하며 영영히 섭니다. 바로 이 창조와 섭리의 말씀 에 사로잡힐 때 찬양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우리들은 모든 인생의 행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디어 그의 구원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여호와 경외 자의 노래(시34:1-22)

세상 사람들의 그릇된 경외와 달리 그리스도인은 마음 속의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경외심으로 인해 항상 여호와를 찬송할수 있습니다. 그 본중 하나가 시편 34편의 다윗의 경우입니다. 아비멜렉 앞에서 혹심한 고난을 당하는 중 드린 그의 찬송과 기도를 살펴보면 경외심이란 어떤 것이며 이 경외심을 가진 자에게 일어나는 체험과 이것을 증진시키는 길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첫째, 여호와 경외자란? 1-2절에 보면 경외란 참 믿음의 골자이기에 다윗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하며 환난 날에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만이 유일한 피난처이며 그 안에 있는 은혜 맛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영혼 깊은데서부터 여호와를 자랑하며 송축하게 되는 것이 산 믿음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리에서라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높이고 최고 경의를 드릴 때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경외가 회중의 경외로 나가기를 그렇게 원했던 것입니다.(3)

둘째, 경외자에게 임하는 복은? 1) 모든 두려움에서 건짐을 받습니다.(4-7) 앙망하는 자에게 여호와의 빛이 임하고 여호와 사자가 나타나 보호해주십니다. 2) 부족함이 없는 모든 좋은 것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9-10)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그의 선하심과 사랑을 맛보고 누립니다. (8) 3) 생명의 풍성함과 장수와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11-17)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는 절대 보호를 받습니다.

셋째, 그러면 어떻게 경외심이 증진됩니까? 자기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랑을 고백하며 환난 날에 그의 말씀을 묵상과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증진됩니다. 그리고 상한 마음으로 통회할 때 경외심이 생깁니다. 여호와 앙망하는 심령위에 임하는 능력을 체험하는 성도로 자라갑시다.

원수를 이긴 기도(시35:1-14) 찬393장

하나님의 원수는 성도의 원수이기 때문 에 다윗은 그들의 뜻이 좌절되고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기를 반복해서 구했습니다. (1-6, 19-24) 몰려오는 원수의 공격 앞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첫째, 원수의 실상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은밀하게 친 그물에 졸지에 죽이려는 공격을 먼저 알때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싸움의 대상인 악령은 주로 까닭 없이 찾아 오기 때문에 억울한 일, 원망과 불평이 터지 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이깁니다. 13절에 다윗은 원수가 병들 때 금식기도하며 간구했습니다.

원수갚음이 주님 손아래 있음을 알기에 그의 주권에 맡기고 그 안에서 쉬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기도로 다윗의 품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평안을 빌 때 합당치 않으면 빈자에게 돌아온다는 원리입니다. 공연히 하 나님 자리에 서서 좌지우지 하면 실패합니다. 멸망할 원수의 공격을 받을 때 죄를 범치 말고 기도로서 복 받을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복된 삶의 실상(시36:5-14) 찬28장

다윗은 악인의 죄를 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과 의 안에 거하는 복된 사람이었 습니다. 그가 받은 복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그의 인자를 맛보는 것입니다.(7) 극 에 달한 죄악이 엄습해도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맛보며 누렸습니다. 둘째, 그의 의의 피난처에 숨는 것입니다. (7) 원수의 궤 계가 자기를 어지럽혀도 그는 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에게 주신 믿음의 의 때문에 절대 보호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그는 하나 님의 의로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셋째, 하나 님의 빛 아래서 자기를 보는 것입니다. (9) 자기의 빛으로는 정확히 볼 수 없습니다. 오 직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만 자기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칼빈이 말한대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 때만 자기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믿음을 가진 우리는 복락 의 강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의인의 보장된 삶(시37:1-40) 찬265장

다윗은 악인의 삶과 대조하면서 의인의 삶이 어떠해야 됨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악인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행악하는 자는 반드시 끊어지고(9) 팔은 부러 지고(17),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잠시 후에 없어지고(10,35), 타는 기름의 연기처럼

없어지고 끊어집니다.(20,38) 둘째, 그러나 의인은 반드시 복을 받습니 다. 그의 의는 정 오의 빛처럼 빛나고(6), 땅을 차지하며(9,11, 29,34) 풍부한 화평을 즐기며(11) 적은 소유로도 풍부를 맛보며(16) 기근에도 풍족하며 (19), 아주 엎드러지지 않으며(24) 절대 보호 안에서 (32 -33)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39) 셋째, 그러므로 의인은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를 바라며 참아 기다려야 합 니다. (1-3) 행 악자로 인해 불평하지 말고 그를 의뢰하며 선을 행하고 그를 기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의인의 낙입니다. 금생과 내생에 절대 보장받는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가정이 됩시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시38:1-22)찬421장

시인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고통을 당합니다. 아프고 구부러지고 온 종일 슬퍼하는 비참함에 떨어졌어도(6) 하나님의 구원만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본문은 탄원으 로 시작 하여 탄원으로 마칩니다.(1,22) 첫째, 징계는 사랑의 증표이기에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버림받은 자는 덤덤하여 절 망으로 마치지만 사랑받는 자는 현실을 정결 케 하려는 소원으로 행동합니다. 죄에 대해 자기를 찌르고 누르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2) 동시에 그는 자기의 죄를 고하여 생명에 이르는 회개로 나갔습니 다. (18) 마음에 불안과 초조를 느끼며 신음 합니다. 자기 탄식을 토로하며(9) 심장이 뛰 고 기력이 쇠하고 눈빛을 잃습니다.(10) 하나 님 앞에 침묵하며 반박하지않고 죄를 슬퍼 하며 고합니다.(13-14,18) 악인의 조롱을 그 대로 받으며 하나님께 살려고 부르짖습니다. (16) 참 회개의 자리가 소망의 시작입니다. 이 자리에 바로 서는 가정이 됩시다.

소망의 하나님(시39:1-13) 찬 539장

건강의 위기에 떨어진 다윗은 하나님께 회복을 구합니다.(13) 어떻게 구했습니까?

첫째, 그는 진실한 말로 아뢰었습니다. (1 -2)“혀로 범죄치 않기 위해 입에 자갈을 먹이 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말, 선한 말을 들으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래 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정미로운 기도를 드리기 위해 겸손하고 진지하게 문을 두드려 야합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시기 때문 입니다.(마7:7-9) 둘째, 그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습니다.(7) 이런 진실은 오직 하나님과만 상대로 기도하는 자에게 생깁니다. 골방 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는자 에게 응답하십니다.(마6:6) 셋째, 그는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12) 자기 질병이 죄의 결과인 줄 알고 진실로 회개했습니다.(8,11) 그래 서 용서를 구하며 자기가 없어지기 전에 회 복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모든 병에서 건지시는 하나님만이 우리 가정의 소망입니다.

새 노래의 하나님(시40:1-17)찬49장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만나 주시는 하나님 임을 다윗을 수렁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통 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상태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떨어져서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영적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연단하여 귀하게 쓰시려는 뜻이 있기 때문입 니다. 그때 그가 한 일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찾았습니다. 큰 긴장을 가지고 속히 구해달라고 부르짖 으며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산 믿음입니다. (롐33:3) 하나님은 4가지 응답을 주셨습니다. 1) 그의 발을 반석위에 두게 하셨고 2) 새 노래를 부르게 하셨고 3) 하나님의 뜻을 즐기 게 하셨으며 4) 주의 사랑과 진실로 충만케 하셨습니다.

가정이 어려운 지경에 있다면 다윗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으면 기이한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치료의 하나님(시41:1-13) 찬 530장

죽을 병에 걸린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구원받아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13) 그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는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원수들은 그 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며(7-8) 간악한 마음 으로 악담하며 이를 널리 알렸습니다.(5-6) 그때 다윗이 한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빈약한 자를 권고 하며 원수의 불의가 무너지기를 간구했습니 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기를 구하며 (11-12)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10)

그의 믿음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 만이 구원자임을 찬송하였기 때문입니다.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 며 겸손히 보좌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반 드시 응답하십니다. 약이나 의사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는 가정이 됩시다.

하나님을 바라라(시42:1-11) 찬 409장

본문에는 낙망할 때 하나님을 사모하는 진리를 가르쳐줍니다.(5,11)

첫째, 갈구의 동기(3,4). 원수의 조롱과 영 혼의 낙망과 불안이 주님을 갈구하게 했습니 다. 원수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고 조 롱할 때 시인은 주야로 눈물이 음식이 되었 습니다. 둘째, 갈구의 내용. 어떤 물질이나 세상이상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생존하시는 하나님(2), 반석이신 하나님(9), 생명이신 하나님(8)을 구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갈구했습니다. (1) 최소한 세 장소를 옮겨 다니며 기도하기 를 힘썼습니다.(6) 셋째, 갈구의 결과.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잠기게 되었습니다.(7- 8) 폭포와 파도 소리 속에서 주의 사랑을 느꼈 습니다. 그리고 밤중에 찬미의 기도가 저절 로 흘러나왔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바울과 실라처럼 터쳐 난 것입니다. 이런 갈구로 채워진 가정이 행복합니다.

극락의 하나님(시43:1-5) 찬117장

그리스도인 삶의 활력소는 육적인 즐거움 (pleasure)이 아니라 영적인 즐거움(joy)에 있 습니다. 어떻게 이 내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나요?

첫째, 하나님을 힘으로 삼을 때 생깁니다. (2) 육신의 건강, 명예, 권력, 정신세계에서 오는 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힘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도 하나님만을 자기 힘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진리의 빛에 거할 때 생깁 니다.(3) 3절에 나온 빛은 은혜(사랑)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은혜와 진리의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의 말씀인 성경에 있다는 것은 정말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시편기자처럼 빛 과 진리를 보내달라고 기도할 때 성령으로 참 희락을 얻습니다.(롬13:14) 셋째, 하나님을 만날 때 찾아옵니다. 빛과 진리가 성령으로 임하기 위해 우리는 가만히 있지 말고 나아 가야합니다. (마7:7-9) 이것이 믿음 입니다.

은혜의 원천(시44:1-8) 찬178장

성도가 원수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하나님 의 구원을 어떻게 사모했습니까?

첫째, 과거 역사를 회고함으로 구원방법 을 배웠습니다. 스펠죤은 3절을 가리켜 “은 혜의 원천”이라 했습니다. 오른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며, 팔은 하나님의 절대능력을 가 리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은 혜를 이미 받은 자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그들은 현재 구원을 확신 하였습니다.(5-8) 이 성도는 “하나님만을 의 지하리라(5-6)”, “구원은 주께 로 온다(7)”, “주님만을 자랑하리라 (8)”는 확신으로 충만했 습니다. 어두움의 압제가 몰려올 때 자기의 아집 에 머물지 말고 은혜의 원천, 생명의 원 천, 평강과 보호의 원천이신 삼위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합시다. 처음 받은 은혜의 때를 회상하며 현재의 확신으로 무장하는 가정이 됩시다.

왕이신 그리스도(시45:1-14) 찬352장

고라자손은 다윗, 솔로몬 같은 인간 왕을 예찬하지 않고 인간 왕의 상징을 통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찬양한 것입니다. 메시야 왕 에게 주어진 은혜는 어떤 것입니까 ?

첫째, 충만한 은혜입니다. “그 왕은 인생보 다 아름다워 입술에 은혜를 머금었다”고 했 습니다. 성경은 은혜가 사무친 왕의 말씀입니 다. 둘째, 절대승리를 얻습니다. 원수의 염통 을 뚫도록 영전에 능하신 왕이기에 항상 이 기고 또 이기십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뱀의 머리를 부순 후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셋째, 그 왕은 만왕의 왕으로 경배를 받으십 니다.(11) 이스라엘의 경배는 온 세상에 있는 자기백성의 경배의 본입니다. 5-6절에 만민 이 엎드리고 성부가 하나님이라고 호칭한 것 이나(히1:8) 만세에 기억되고 영영히 찬송받 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기 때문 입니다.(17) 그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 든 보화는 신자의 것입니다. 이 약속이 성취 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그 왕께 절대 순종 함으로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어 야합니다.

환난 날의 도울 분(시46:5-14) 찬463장

성도가 환난 당할 때 담대할 이유는 진정 으로 도울 왕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 구이기에 현실의 도움이 되십니까?

첫째, 그는 피난처시기 때문입니다. (1 -3)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고 바다가 흉용해도 우리를 붙드신 그 분의 손은 요동치 않고 실 패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거하는 성은 온 세 상의 중심이며 모든 능력의 근원입니다. 둘 째, 그는 전능하신 통치자이기 때문입니다 . 활을 꺾고 창과 수레를 부수어 스스로 하나 님 되심을 드러내십니다. (9) 열방과 세계에 가장 높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셋째, 이 왕을 어떻게 섬길까요? 새벽을 깨워야합니다. 그는 첫 시간과 첫 자 리를 바친 종들의 기 도를 반드시 들으시고 도와주십니다. (2) 그 리고 은밀한 중에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10) 모든 구원을 친히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 분께 맡기고 쉬 어야합니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시47:5-14)찬512장

본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밝힙니 다. 왜 찬양해야합니까?

첫째, 그는 만유의 주임이기 때문입니다. (2)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친히 다스 리는 분이십니다. 온 우주의 일월성신을 간섭 하실 뿐 아니라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까 지 아실 정도로 자상하게 다스리십니다. 둘 째, 그는 택한 자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3-4) 그런 중에 특히 선택한 일부의 사람들 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에서 환경오염, 심지어 지구 온난 화 현상도 그리스도인의 책임소관입니다. 셋 째, 그는 열방을 다스리시는 왕이기 때문입니 다.(8) 그의 통치는 이스라엘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해당됩니다. 핵 문제도 하나님 손 안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 든 방패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9) 유일한 왕이신 그 분께 우리 자신을 드리며 모든 악기와 지혜로운 시와 그리고 손뼉치며 즐거운 소리로 찬양을 돌려야합니다.

영원하신 우리 하나님(시48:1-13)찬421장

일반적으로 여호사밧 왕 때 일어난 사건으 로 알려진 본문은 암몬과 모압과 에돔 연합 군을 기도로 승리한 것을 찬양하는 노래입니 다. (대하 20:19, 25,36) 그 주제는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영원히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2) 어떻게 보호하십니까?

첫째, 하나님이 친히 피난처가 되십니다. (1-8) 1-2절에는 여호와와 시온산을 찬양 하 고, 3-6절에는 방어도 하시고 공격도 하시는 유일한 피난처라는 사실을 보이며, 8 절에는 하나님이 견고케 하셨음 찬양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로 인도하십니다.(9-13) 하나님은 인자와 공의가 충만하십니다. 오늘 날 이것을 맛보고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세상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그의 사랑과 공의를 사모하며 그의 형상을 보고 그렇게 변하는 것을 인생의 제일 목표로 삼아야합니다.

말씀 의뢰자의 영광(시49:1-12)찬219장

고라자손의 찬송시인 본문에는 물질주의 자와 하나님 경외자를 대조하여 하나님 계 시(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삶을 살라고 권고 하고 있습니다.

첫째,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은 교만하여 물질을 하나님처럼 섬깁니다.(6) 그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으며 모든 명예와 소유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며 장래의 빛은 일시 동안 반짝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11)

둘째, 이와 달리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의인은 장래의 보장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영접하여 환난 중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 습니다.(5) 이 담력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지혜 와 명철과 비유와 오묘한 말로 표현된 성경 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는 자에게는 죄악의 물결이 엄습할지라도 영적 담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환난 날에 주를 찾아라(시50:1-23)찬480장

다윗의 음악장, 아삽의 12시편들 중 최초 의 찬송시인 본문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 께 나아갈 방법과 결과를 가르쳐줍니다.

첫째, 예배함을 나가야합니다. 하나님과 제 사로 언약했기에 제사로 나오기 원십니다. (1-5) 하나님 앞에 드린(8) 감사의 제사를 (14) 하나님은 영광스럽게 받으십니다.(23) 둘째, 감사와 서원과 기도로(14) 나갈 수 있습니다. 감사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반 응하는 것이고 서원은 언약에 대한 반응이며 기도는 이 둘의 실제적 표현입니다.

셋째,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 앞에 드린 산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셔서 고난에서 건져 주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리에 서게 합니다.

모든 제사의 총화인 기도로 나가는 성도는 반드시 광야에 백합화가 피고 오아시스가 터지는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환난 날 에 낙심치 말고 주를 찾는 성도가 됩시다.

시편(1편-28편)과 함께 가정예배

복있는 사람(시1:1-6) 찬506장

전체 시편의 서론에 해당되는 1편은 복있는 자를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정의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 묵상 자란 것입니다.(3) 여호와 경외란 말씀 묵상이며 그 속에서 경외자로 빚어집니다. 묵상이란 성경을 읽고 듣고 연구하고 암송하는 차원에서 실천하는 차원으로 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세속적 복관에 사로잡힌 우리 시대에 말씀묵상이 복이란 것을 확신하는 것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래서 복있는 자는 두 가지 일에 열심을 갖습니다. 첫째, 죄 를 멀리합니다.(1- 2) 악인의 꾀(생각), 죄인의 길(행동),오만한 자의 자리(소속)를 멀리합니다. 죄와 싸우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둘째, 성경에 착념합니다. 요가의 명상은 좋아하는 자기 아이디어에 집중하여 말을 되풀이함으로 자기 성찰에 이르지만 말씀묵상은 읽은 말씀을 마음에 집중하여 나와 깊은 관련을 시키는 일입니다. 그 때 성령은 우리 마음에 말씀을 밝혀 그것에 사로잡 힌 반응을 보이게 하십니다. 한 해에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체험적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시2:1-10) 찬46장

다윗 왕의 즉위식을 염두에 둔 본 시편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경외하는 자만이 복받는 다고 전합니다. 메시야는 누구이며 어떻게 사 랑해야 합니까?

첫째, 고난 가운데 임하신 메시야입니다. 1 -3절에 그는 열방의 적대행위 가운데서 왕이 심을 보였듯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여 자기 백성의 죄를 속하셨습니다. 그의 고난은 구 속을 완수하기 위한 필연적 길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그 분은 왕, 선지자, 제사장으로 서의 참 메시야 곧, 하나님 나라 왕이 되십니 다. (4-6) 우리 주님이 바로 그 분이십니다.

둘째, 어떻게 메시야를 사랑해야합니까? 경외함과 즐거움으로 섬겨야하고(11) 입맞춤으로 섬겨야합니다. (12) 아들과의 달콤한 사랑 관계만이 새해를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 친밀함을 누리는 가정이 되게 합시다.

여호와께 오는 구원(시3:1-17) 찬101장

전통적으로 제왕 시로 분류되는 본 시편은 조석으로 드린 기도로 알려졌습니다. (삼하15 -19장 참조) 어째서 구원이 하나님께로 옵니까?

첫째, 그는 방패이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화전 공격의 위급함을 막으시는 분이 하나님 이심을 알고 그 안에서 안식하는 다윗을 볼 수 있습니다.(5-6) 우리의 진정한 방패는 오 직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 안에 쉬어야합니다. 둘째, 그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로 세우시 는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믿음이 실제적 으 로 표현되었습니다. 1) 자기 목소리로 기도 하며 2) 부르짖으며 3) 성산을 향하여 구별된 간구를 드렸습니다. 셋째, 여호와만이 은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고 깨는 순간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알고 주님께 직접 나아가 구했습니다.(6-8)

오직 기도의 신앙으로 밀어 붙일 때 어떤 위험도 거뜬히 이길 수 있습니다. “네 믿음대 로 되라”(마8:12)는 주님 말씀을 붙들고 전진 합시다.

주께서 두신 기쁨(시4:1-8) 찬189장

저녁 기도로 알려진 본 시편은 애가시편으로 분류됩니다. 극심한 가뭄 때문에 조롱을 당하고 신하의 배반으로 권위가 실추되었지 만 간구의 응답함으로 하나님의 즐거움을 체 험했습니다. 그가 받은 기쁨은 어떻게 임했습 니까?

첫째,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찾아왔습니 다. 의의 하나님께(1) 의의 제사를 드리라는 권면은(5) 마태복음 6장 33절을 자신에게 적용한 것처럼 생각하게 합니다. 둘째, 경건한 자에게 임하는 은혜입니다. 경건이란 구약의 믿음입니다.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경건이었습니다. 외식을 경계하고 진리를 따라 믿음으로 기도를 드릴 때 참 즐거움을 체험합니다. 셋째,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평강, 은혜, 보호의 얼굴을 구할 때 (민6:) 하나님은 반드 시 응답하십니다. 은밀한 골방을 찾아 현실의 문제를 믿음으로 구하는 가정이 되어 하나님이 두신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아갑시다.

은혜의 호위(시5:1-12) 찬344장

악인의 매서운 공격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어떻게 확신했습니까?

첫째, 악인의 공격을 당할 때 보호를 확신 했습니다. 악인은 오만한 자(5) 거짓말하는 자(6) 속이는 자(6)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6) 아첨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특히 다윗은 믿음을 배반한 악인의 공격에 보호를 확신했습니 다.

둘째, 기도의 제물을 드렸습니다. 1-2절 에 “나의 하나님, 나의 여호와”라고 절규하며 자기 심사를 살펴달라는 기도를 아침 제물로 드렸습니다. 기도의 제물을 받으시는 하나님께 즐거움으로 기도를 드립시다.

셋째, 의의 길을 파수하려는 결심으로 나갔습니다. 악인 의 꾀에 넘어가 신앙주관을 포기한 자가 우굴거리는 때에 기도하며 예배하며 주께 피 하는 것이 의의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악인의 패망과 의인의 승리를 구함으로서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즐거움임 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 신하가 왕께 나아가는 것처럼 (John Owen) 절대보호의 약속을 믿고 그의 보좌로 나갑시다.

징계에서의 자유(시6:1-10) 찬492장

“병상에서 드리는 기도” 혹은 “참회시” (32, 38, 51,102,130,143)로 알려진 6편은 다윗이 당한 심각한 고난을 잘 표현합니다. 수척한 몸, 떨리는 영혼은 하나님 징계의 결과였습니 다.(1 -3) 그러나 그는 회개와 믿음으로 소망을 가졌습니다.(2-3, 6-7) 밤마다 요를 적시는 슬픔의 눈물과 답답한 마음을 진실되이 털어 놓고 도와주기만을 기도합니다.(4) 하나님이 자기를 용납하시면 현재의 악한 상황이 다 해결되리라고 믿었습니다. 마침내 원수는 두려워 떨며 물러감을 확신한 것은 자기의 곡성과 눈물을 하나님이 보셨음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기와 상관없이 반드시 징계의 손길을 맛봅니다. 이것이 없으면 사생자요, 버림받은 자입니다. 징계의 손이 잠깐 아파도 마침내 참 자유와 기쁨을 체험케 하기 때문에 성도는 징계 때에 회개하며 믿음으로 견 딜 수 있습니다.

악에서 구하소서(시7:1-17) 찬338장

식가욘(엄숙한 분위기)이란 음악부호로 시작하는 본 시편은 탄원시로 알려졌습니다. (삼상16:5, 24:-26:)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자같은 공격 앞에서 범죄치 않고 주께 피 합니다. 자기 손에 죄가 없고 배은망덕하거 나 약탈함이 없음을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그 리고 주권의 손에 모든 것을 위탁하여 하나 님을 방패로 삼아 그에게 숨습니다.(8)

이렇게 원수의 압제와 공격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며 악인에 대한 의 로운 심판을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구합니다. 섭리적 고난을 받는 성도는 자기를 살펴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공격하는 원수에 대해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곤고한 날을 당할 때 범죄치 말고 하나님의 성실과 의가 드러나기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성도는 반드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인자의 노래(시8:1-9) 찬97장

공동체 찬양인 본 시편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가운데 가득 찬 영광을 선포합니다.

첫째, 창조 속에 보여진 영광 즉 하늘과 달 과 별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1, 3-4, 9)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그 피조물 속에 하나님의 신성을 새긴 것과 그리스도 아니고는 그 어느 하나도 이루어 질 수 없는 사실을 알고 인간이 만물의 왕관으 로 지어졌음을 관찰합니다. 둘째, 구원 속에 보여진 영광을 노래합니다.(2) 주의 대적을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손으로 무력케 하 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노래하는 것입니 다. 새 창조의 안목으로만 새 창조(구원)의 영 광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창조와 구속의 영광은 섭리의 영광으로 활짝 꽂을 피웁니다. 특히 다윗은 사람 영광의 아름다 움을 보았습니다.(4-5)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와 같이 변하 여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중심한 삶을 영위합시다.

의의 왕을 찬양하라(시9:1-20) 찬352장

전통에 의하면 9편은 10편과 연결된 알파벹 찬송시로 분류됩니다. 개인 찬송과 선포로 시작된 것(1)이 공동체의 찬양과 전파로 나가기를 원하는(11) 다윗의 찬송은 의의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먼저, 다윗은 전심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이유가 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으로 악인이 패 망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4-6) 다음에 그는 공의롭고 정직한 심판을 보았기 때문입 니다.(7-10) 의의 공도가 세상에 세워지는 것 은 그리스도인이 먼저 구할 것이며 목말라 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동체가 찬양할 것을 권면합니다. “나”가 “너 희”로 바 꾸어졌습니다. 그가 온 세상에 전파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증표인 십자가 사랑이었습니다.(11-12) 원수들은 자기 올무에 걸려 망하지만 의인은 어떤 고 난을 당해도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을 받습 니다.(15-16,17-20) 이 은혜를 찬송합시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시10:1-13) 찬412장

애가시로 알려진 시편 10편은 악인이 압제 를 당할 때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어 찌하여 환난 때에 멀리 서시며 숨으시나이 까?” 라고 탄식함으로 시작한 시인은 어찌하 여 악인을 벌하지 않느냐고 부르짖습니다. 그의 고통은 악인의 압제보다 하나님과의 영적 분리의식에 있었습니다.

첫째, 그는 악인의 죄악을 어떻게 표현했습 니까?(2-3) 교만한 얼굴로 의인을 압제하는 것은 무신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 이 자기의 무자비한 행위를 보지 않는다하여 악독과 잔해가 가득 찬 굶주린 사자와 같았 습니다. (7) 이 때 시인은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며 속히 일어나 의로운 심판을 단행하 기를 구합니다. 그는 승리의 확신에 차 있었 습니다. 마지막 때를 통과하는 우리들은 아무 리 악 인의 공격이 거세어도 악인의 이를 꺽 으시고 의인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서 견디며 승리하는 삶을 이루 어 가야합니다.

터가 무너져도(시11:1-7) 찬439장

타가 무너져도 낙망치 않고 소망으로 나가는 다윗의 본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첫째, 다윗은 악인에게 조롱을 당하며 도 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1) 어두움과 고독과 두려움이 엄습할 때 악인들은 저 산으로 새처럼 도망하라고 조롱합니다. 그리스 도인은 무너진 터에서도 의미를 찾습니다. 둘째, 터가 무너질 때 다윗은 어떻게 대처했 습니까? (1-3) 피난처인 하나님께 피했습니 다. 감사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 고 피했습니다.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 가 기도했습니다.(5-6) 셋째,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셨습니까?(5-6) 의인을 감찰하 시고 악인을 미워하셨습니다. 의의 하나님 이기 때문입니다.

터가 무너져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은 주님의 십자가에 귀착됩니다. “그리하지 아니 하실지라도” 끝까지 의지하는 순교적 신앙을 통해 주님은 일하십니다.

말씀의 순결성(시12:1-8) 찬221장

개혁자들은 “성경의 순결성”을 확신했습니 다. 이것은 성경의 모든 계시가 성령의 감동 으로 기록되어 구원의 길을 확실히 보여주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대하면 반드시 구원을 받 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는 “흙 도가니 속에 일곱 번 연단된 은과 같은 하나님 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 한 언행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첫째, 악인의 말은 헛됩니다. 악인의 말이 세력을 얻는 것을 본 의인은 탄식으로 시작 합니다. 왜 탄식했는가요? 경건 자가 끊어지 고 충실한 자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거짓 말과 아첨과 자랑의 말로 이웃을 죽이고 있 기에 그는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말이 얼마나 헛된 것을 드러내실 것입니 다. 둘째, 의인의 말은 보장을 받습니다. 악한 날일지라도 의인은 악의 손에서 벗어나 안전 지대에 서게 됩니다.(5) 이것이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6) 성경의 모든 약속은 다 진실입니다. 여기에 모든 언행을 거는 자는 복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13:1-6) 찬338장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은 딱 부러지는 기계적이기보다 은근과 끈기로 이어지는 유기적 삶입니다. 절규로 시작하여 찬송으로 마치는 13편은 그 사실을 밝혀줍니다.

첫째, 시인이 탄식한 세 가지 이유는 1)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기 때문이고(1-2) 2) 원수가 득세하는 환경 때문이며(4) 그리고 3) 사망의 잠을 잘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 다. 시인은 극심한 질병으로 큰 고통 속에 있기에 주님이 오셔서 사망의 잠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둘째, 그가 찬송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의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 을 의지하는 믿음의 표현이며(5)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을 믿는 믿음의 표현 입니다.

탄식과 찬양, 영적 은근과 끈기가 우리가 걸어야할 좁은 길입니다. 이 때야말로 참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탄식하는 상황을 두려워 말고 주께 나아가 부르짖는 성도가 됩시다.

야곱의 피난처(시14:1-7) 찬82장

다윗은 어리석은 자, 악인(1)과 가난한 자, 의인(6)을 서로 비교함으로서 성도란 영적 가 난을 추구하고 즐기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마5:3) 그는 원수의 공격 중, 하나님께 피해 절대 보호를 받으면서 주만이 복의 원천이란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를 “나의 기업, 나의 분깃, 나의 소득, 나의 아름다움, 나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주님 과의 깊은 교제를 이루기 위해 그 분에게 피해 그에게 아뢰었고 그의 교훈을 밤마다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영원한 즐거 움을 누리고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 차있기에 환난 중에서도 요동치 않을 수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세상살이에서 나의 진정한 복은 그리스도뿐임을 확신하고 그에게 마음을 다 토하여 언제나 말씀하시는 주의 교훈을 따라 순종함으로 기쁨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성도가 됩시다.

성산에 거할 자(시15:1-5) 찬456장

성산에 거할 자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 람을 가리킵니다. 2-5절에 십계명을 연상케 하는 10가지 자격조항이 나옵니다. 정직히 행하는 자. 공의를 행하는 자, 진실을 말하는 자, 혀로 참소치 않는 자, 행악지 않는 자, 이웃을 훼방하지 않는 자, 망령된 자를 멸시 하고 서원을 갚으며 변리로 대금치 않고 뇌 물을 받아 판결치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여호와를 경외하여 착함과 진실함과 의로움을 나타내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란 율법에 완전한 자 이기에 사람으로 이룰 수 없는 표준입니다. 오직 그것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성령을 따를 때 이루어지는 성령의 작품입니다. 날마다 은혜의 보좌로 나가는 자 만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표준을 상실하여 방황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과 영원히 동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 진정한 성전이신 그리스도안에 거하기를 힘씀으로 천국생활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유일한 복(시16:1-12) 찬88장

죽음의 위기를 만난 시인은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서 유일한 도피처는 하나님뿐임을 알았습니다. 애매한 고난때문 에 탄식하는 중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복 임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 습니다.

첫째, 그만이 즐거움의 원천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2-3) 마음의 형통이 모든 영역에 서 기대할 수 있기에 그는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여호와만이 자신의 기업임 을 알았기 때문입니다.(5) “나의 산업”, “나의 잔의 소득”, “나의 분깃”이란 것입니다. 셋째, 주님만이 생명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1) 그래서 다윗은 밤마다 하나님이 교훈하 심 을 맛보았고 (7) 항상 우편에 계신 그 분을 바라봄으로 요동치 않았습니다. (8) 그 리고 주님만이 복의 원천임을 알고 영혼이 음부에 버려지지 않고 썩지 않을 것을 확신 했습니다.(10) 고난당한 성도의 유일한 소망 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습니다.

주의 얼굴로 만족하자(시17:1-15)찬495장

악인의 공격으로 어려움 중에 있는 다윗 은 정직한 입술로 구원을 부르짖습니다.(1) 하나님의 절대 보호하시는 약속을 믿고 주의 날개아래 숨기를 원합니다.(8)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진정한 만족이 원수가 거꾸러지거나 환경의 변화에 두지 아니하고 자고 깨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 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인은 금생의 분깃이 나 재물이나 자녀로 만족하지만 성도는 하나 님의 형상을 보는 것으로 참 만족을 갖습니다. (15)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정한 구원입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성령안 에서 지금 우리 속에 일하십니다. 그래서 바 울은 “주는 영이다”(고후3:17)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주님이란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주님이 높은 신분으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그의 영광을 봄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형상으로 화하여 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최대 의 복입니다.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시18:1-50) 찬231장

다윗은 사망의 줄, 불의의 창수, 음부의 줄, 사망의 올무(3-5)의 4중 난관에서 부르짖음으로서 놀라운 구원을 체험합니다. 자비 한 자에게 자비로, 완전한 자에게 완전으로, 깨끗한 자에게 개끗함으로 갚으시지만, 교만 한 자에게는 낮추심으로 사특한 자에게는 거스림으로 갚으심을 알고 정미한 말씀을 찬양합니다.

마침내 그는 모든 환난에서 절대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와의 개인적 관계를 고백합니다.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 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 를 건지시는 자, 나의 산성, 나의 하나님이라 는 7중적 고백을 통해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고백은 나의 고백이 되어야합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그분의 사랑이 내 속에서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예 수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는 사랑의 언어가 흘러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계시의 충족성(시19:1-14)

시편 19편은 “계시예찬” 혹은 “성경예찬”을 주제로 다룹니다. 1-6절까지 자연계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를, 7-14절은 토라(율법)를 통한 구원계시가 얼마나 분명하고 충족한가를 감탄하며 찬양합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는 수단을 하늘과 궁창이라고 하며(1), 언어와 소리가 없어도 온 세상에 통하는 지식과 말씀과 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연과 인간양심을 통해 자신의 신성을 분명히 보이셔서 감사와 영광을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얼마나 풍성한지요.(롬1:19-20) 물론 성령의 역사로서 하나님 아는 지식이 세계에 꽉 차 있는 것을 발견하고 노래하는 다윗은 영안이 뜨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이어 죄로 어두워진 영혼이 구원의 길을 알게 되는 유일한 계시가 기록된 말씀뿐임을 확신한 다윗은 지금 그 말씀의 특성과 효과를 선포하며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가 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율법의 성격에 따라 증거, 규례, 교훈 등으로 표현된 말씀은 66권 성경을 가리키며 이것은 모두 완전하며 확실하며 정직하며 순결하며 정결함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어두워진 우리 영혼이 눈이 뜨여지고 밝아져 지혜롭게 되고 순수하게 되어 영원한 구원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먼저 그 맛을 본 다윗은 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 말씀을 믿고 따르는 길뿐임을 알고 풍성한 계시를 내 것으로 누리기 위해 모든 생각과 묵상이 말씀에서 시작되고 말씀으로 완성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계시(성경)의존사색으로만 구원받는 진리가 깊이 깨달아져 여러분의 가슴 속에 감사의 샘이 터쳐 나기를 축원합니다.

승리한 왕의 찬양(시편21:1-13)

본 시편은 20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자는 전쟁하기 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부탁하는 기도라면, 후자는 승리 후에 주께 드린 찬양과 감사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승리 후 관리가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바입니다.

첫째, 다윗이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 한 동기는(1) 주의 능력으로 받은 구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랑으로 마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의 시작과 목적과 방법과 결과가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으로만 만족합니다. 에스라 1장에 나온 출 바벨론 사건을 보더라도 고레스를 감동케 하고 돕는 사람을 감동케 하여 시작한 성전 재건이 성령이 시작한 것처럼 우리의 구원도 전적인 하나님 은혜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마음의 소원을 주께 아룀으로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2)

둘째, 다윗이 받은 은혜는 (3-6) 너무나 엄청났습니다. 아름다운 복, 정금 면류관, 영영한 장수, 큰 영광, 존귀와 위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지극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다윗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자이지만(엡1:3)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최고의 복중 에 복인 하나님 사랑을 의지한 다윗이 요동치 않은 것처럼 우리 역시 그 사랑을 맛 볼 때(롬5:8) 담대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진노의(7-10) 풀무는 절대 심판을 가리킵니다. 8절에 “네 손이 발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서 원수들을 포로로 잡아 멸한다는 뜻입니다. 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우리는 단지 그의 도구입니다. 숨어서 일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구원 후 펼쳐지는 계속적 승리를 누리기 위해 하나님께만 찬양을 돌리는 성도가 됩시다.

메시야의 수난(시22:1-31)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구유에서 십자가를 볼 수 있어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자기 백성의 죄를 제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주전 1200년 전 다윗이 당한 고난의 환경에서 예언한 것이 시편 22편입니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어쩌면 적나라하게 묘사된점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1절의 절규는 성부로부터 버림받은 성자의 고난을 보이고(마27:46), 7절에 보는 자마다 비웃고 조롱하는 것은 십자가상의 주님을 향해 퍼부었던 행인들의 무정한 행동이었으며(마27:39-43) 15절에는 체형으로 인한 목마름을 리얼하게 묘사하였으며(요19:28) 그리고 18절에는 문자대로 그리스도의 속옷을 제비 뽑는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령의 예시에 놀라게 됩니다.(요19:24)

그의 고난은 사자 이빨에 물어뜯기는 것같아 물같이 쏟아졌으며 뼈는 어그러졌고 마음은 촛밀같이 녹아내렸습니다.(13-14) 다윗은 이 원수 마귀를 “칼, 개, 사자 들소 뿔”로 비유하여 그 무자비성과 처절함을 강조하고 잇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난은 목적이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믿는 자는 소망을 갖습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도 부르짖을 때얻은 4가지 복을 확신했습니다. 찬송하는 자가 되었고 영생을 가졌으며 열방의 회개와 세계에 이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23-31)

다윗은 한 낫 그림자의 고난에 불과했고 그 영광도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고난의 실체를 당하신것이고 결과와 영광도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그 은혜를 지금 누리고 있으며 눈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마우신 그리스도의 수난 앞에서 그의 탄생사건의 진의를 보는 자가 되어 참된 은혜를 누리고 증거하는 성탄절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신자의 목가(시23:1-6)

먼저 신자는 주님과의 개인적 관계 때문에 노래합니다. 목자는 반석, 능력, 복이란 개념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여호와는 양을 거느리는 목자이고 다윗은 그의 양으로 인도를 받기에 최대 최고의 만족을 누립니다. 신자는 말씀을 잘 먹어야하고 그리스도안에 펑안을 누림으로 영적만족을 갖습니다. 그 다음에 신자는 낙심하고 절망할 때 부흥과 소생의 은혜를 받기에 찬양합니다. 또 주님 영광위한 의의 목적과 표준을 알고 행하기 때문에 기뻐하며 즐거운 찬송을 부릅니다.

셋째, 그는 절대보호로 인해 찬양합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확신과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지는 구원의 지팡이와 맹수의 공격을 퇴치하는 막대기로 철저히 지키시는 보호의식으로 감격하는 것입니다.

넷째, 원수 목전에 높여주신다는 것, 사망의 길을 지나는 영전에 승리의 상급이 준비되었다는 것이 신자로 찬송하게 합니다. 그 상이란 기름 곧, 성령을 가리키며 그의 풍성한 은혜를 말합니다. 신자가 받을 최고의 상급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성령 충만의 체험입니다. 이 기름은 우리 평생에 약속된 것이고 그의 착하심과 인자을 맛보는 체험으로 나타나는 복입니다. 바로 이 사랑의 줄은 아무도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눈은 물질의 복에서 여호와 자신의 복으로 옮겨집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전주곡으로 이미 아버지 집에 사는 자인 줄 알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험하지만 문제의 키를 가진 만능의 해결사로서 사는 것이기에 찬송하며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목자로 두고 따르는 자가 찬송을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들입니다. 금년 항해에 여러분의 영혼에 하늘 목가가 흘러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성산에 거할 자(시24:1-10)

주후 2세기, 로마 역사가 플리니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날에 한 장소에 모여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애찬을 나누며 시편 24편을 찬송했다고 전합니다. 본문은 창조자 구원자 섭리자이신 하나님만이 영광의 왕되심을 선포하며 그를 경외함으로 감격으로 영접하라는 예배권고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영역이 이 세상 모든 만물과 사람인 것을 지적하면서 그분의 주권자 되심을 선언합니다.(1) 그리고 땅을 물에서 끌어내신 창조하심의 권능 보다 더 근원적인 그의 활동도 설명합니다.(2)

그러면서 곧이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냐?”고 자문하면서 그 자격조항을 제시합니다. 여기 “여호와의 성산”이란 하나님의 보좌를 지칭합니다. 요한계시록4:-5:에서 우리는 천상 보좌를 중심한 네 생물과 24장로와 천군천사와 만물을 봅니다. 보좌란 곧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 곳에 거할 자는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고, 거짓 맹세치 않는 자입니다. 이 도덕 수준은 영적수준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그 자리에 설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를 얻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 시편은 영광의 왕이 창조주요 섭리주요 구원자이심을 말하면서 그 분을 영접하라는 권고로 이어집니다. 그 분을 환영하기 위해 겸손히 자신을 정결케 하는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5:8)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여호와의 성산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모든 존귀와 평강의 자리 를 양도할 때 진정한 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 성산인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생활에 심혈을 기울여 천국 복을 깊이 체험하는 성도가 됩시다.

이스라엘의 탄원(시25:1-22)

알파벳 시편으로 알려진 25편은 악인의 공격과 과거의 죄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다윗이 하나님을 앙망하여 그에게 탄원함으로 이를 극복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편 1편에는 악인과 의인의 두 길 중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지만 본 시편은 정작 선택의 기로에서 의의 길을 택하는 일은 많은 고민이 따른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더 공감이 가고 친밀감을 더해 줍니다.

다윗은 영적 패배의 저변에서 탄식할 때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거룩한 자존심이 다 무너지는 수치심 속에서 원수가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 기도는 “수치를 면케 하리라”는 변치 않는 그 분의 약속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3) 또 다윗은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의 도와 진리로 그 길을 가르쳐달라고 부르짖습니다.(4-5)

큰 약속에 근거를 두었다하여 안일한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의지하여 겸손하게 나아가 기도합니다. 두 가지 때문에 절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는 과거의 죄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원수의 곤경 때문에 괴롭고 외로운 영적공허에 떨어져 허우적거리면서 하나님만을 종일 바라봅니다.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은 것입니다.

마침내 시인은 죄 사함의 확신과 평탄한 영혼을 소유했고 땅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물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갖는 사랑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것이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온유한 자의 몫입니다.

시인의 고통이 우리가 당하는 현실의 고민입니다. 이중적 고민에 사로 잡힌 외롭고 괴로운 좁은 길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오직 주를 앙망해야합니다. 이 길을 따름으로 상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완전한 행위(시26:1-12)

주님은 의롭다고 인정받음으로 시작한 우리의 구원이 거룩케 하는 과정을 통해 완전한 행위인 영화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26편에 나온 다윗의 몸부림은 바로 이 과정을 통과하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완전한 삶을 이룰 수 있나요?

첫째, 하나님 앞에 판단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1-2) 자기 행실의 뿌리인 마음의 의지가 거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의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원했고 허망과 간사가 없는 진실의 삶을 구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에 푹 빠질 때만이 완전해 질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139:) 위대한 삶은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서 연단받는 마음으로 살 때 이루어집니다.

둘째, 악인의 모임을 경계했습니다.(5) 그는 주변 환경의 영향이 얼마나 자극적인 것을 알았기에 행악자의 집회에 가지 않고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죄를 이기는 길은 예방함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죄의 영향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죄와 싸우는 것이며 이 싸움이 충만한 것이 복입니다.

셋째,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삶의 초점을 맞추어야합니다. 주의 제단을 두루 다니면서 감사와 찬송의 제물을 드립니다.(6-7) 다른 어떤 것보다 주의 임재한 장소를 그렇게 좋아했습니다.(8) 악독과 뇌물을 즐기는 악인의 행동과는 달리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즐겼습니다.(9-10) 그래서 궂을 때에도 그러했지만 평탄에 처할 때에도 하나님의 구속과 긍휼을 간절히 구한 것입니다. 참된 거룩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이 가능합니다. 날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을 산 제물로 드리는 하나님에 대한 항복과 헌신의 삶만이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사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도 이 일을 위해 우리 속에서 부단히 일하심을 잊지 말고 그 분의 뜻에 따라 겸손히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로 죄와 사워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너의 하나님 얼굴을 구하라(시27:1-14)

다윗은 원수들의 거짓된 고소와 조롱으로 비참한 자리에 처해 있습니다. 얼마나 비참했는지 부모형제라도 소망이 없다고 버리는 아픔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병상에 드린 기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어떻게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1,14)

첫째,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내 얼굴을 찾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주의 제단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고 기도와 찬미의 제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을 구했습니다. 이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둘째, 믿음으로 구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친밀하였습니다. 천하가 다 버려도 하나님만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의 생명의 능력인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생사가 오가는 병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얼굴을 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13)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역사합니다.

셋째, 그는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원수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자기 살을 먹으려고 왔고 전쟁을 일으켰으나 두렵거나 무섭지 않고 도리어 안연했습니다. 환난 중에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바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절박한 환경은 다윗을 위대하게 만드는 연단의 터전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난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그리며 주목하여 그에게 구하기 바랍니다. 의와 진실과 사랑으로 가득 찬 주님은 반드시 은혜로 응답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이 넘칩니다. 이 사모심으로 충만한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구원의 산성(시28:1-9)

애가시(1) 혹은, 제왕시(8)나 질병 가운데 드린 기도시로 알려진 28편은 앞 선 26편과 27편과 같은 부류에 넣는 것은 고난 중 기도함으로 구원의 응답을 체험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은 지경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합니다. 그가 당한 무덤의 환경은 질고라기보다 민족적으로 추방당할 위기를 가리킵니다. 압살롬처럼 화평의 얼굴로 말하나 속에는 악독이 있는 사람들에게(3-5) 억울한 일을 당한 매우 고독한 처지를 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장인 사울에게 그리고 가장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에게 배반을 당하는 치명적인 위헙도 있었고 시글락에서의 참패로 따르던 심복들이 돌변하여 돌로 죽이려는 지옥 같은 환경을 경험했지만 하나님으로 인해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여호와를 반석으로 삼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습니다. 2절에 주의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부르짖는 그의 간구는 은혜받을 자의 태도를 지녔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께 항복하며 주님에게 전적 달라붙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아 기쁨으로 노래하는 자가 되었습니다.(6-7)

하나님을 반석, 힘, 구원으로 고백하던 것이 “목자(shepherd)”로 말합니다. 반석이란 받쳐주는 기초로 보호의식을 갖게 했다면 목자는 그 분과의 인격적 교감이 오가는 친밀관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친밀 관계가 더 깊어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위기를 허락하신 이유이며 목적입니다.

세상에 있는 교회에 가라지와 알곡을 그대로 두게 하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살 깊은 교제 즉, 임마누엘의 깊은 경험을 누리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덤 같은 상황에서도 낙심치 않고 주께 부르짖는 기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반석에 물이 터지는 기적의 체험도 귀하지만 주님과 주고받는 목자와 양과의 친밀함이 더 귀합니다. 이 친밀함을 체험하기 위해 고난의 날에 기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퓨리탄의 지혜 제 2권

48. Judging a Person’s Experiences I. “Look to see :1) That the influence be upon the will or heart, not on the imagination, nor on the speculative understanding or thought processes of the mind, even if these processes sweep the emotions along with them as a consequence. That the disturbance in their thinking not be excessive, in that their thinking is [actually] bothered by those things it has reason to be disturbed about; and that the troubling of their minds seems to function in such a way, with the kind of troubling and exercising of the mind that is thoughtful: meaning that it is based on reasonable, solid consideration; a solid perception and conviction of truth, that is, of things as they really are.(Jonathan Edwards)
(영적체험을 분별하는 법) (1) 체험과정에 좋은 감정이 동반되어도 의지나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상상과 깊은 깨달음과 사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주의하라. 분산된 생각, 잡다한 생각, 그리고 이성적, 실제적 일들의 규범이나 진리의 확신에 근거를 둔 기능처럼 보이는 고민과 활동 역시 조심해야 한다 – 요나단 에드워드)

49. ‘See that your chief study be about heart, that there God’s image may be planted, and his interest advanced, and the interest of the world and flesh subdued, and the love of every sin cast out, and the love of holiness succeed;and that you content not yourselves with seeming to do good in outward acts, when you are bad yourselves, and strangers to the great internal duties. The first and great work of a Christian is about his heart.” (Richard Baxter)
(하나님 형상이 심겨지고 그것에 대한 관심이 증진되고, 세상과 육체적 관심이 질식당하며 모든 죄에 대한 애착이 던져져 거룩에 대한 열망이 계속되기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펴라. 그리고 그대 자신이 곤경에 처할 때 외적으로 선을 행하는체하는 행동에 만족하지 말고 외인에 대해 내적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살펴라.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우선되며 위대한 일은 마음의 일이기 때문이다.-리차드 빽스터)

50. ‘Luxury and gluttony is a sin exceeding contrary to the love of God: it is idolatry: it hath the heart, which God should have; and therefore gluttons are commonly and well called belly-gods, and god-bellies, because that love, that care, that delight, that service and diligence which God should have is given by the glutton to his belly and his throat.”(Richard Baxter)
(사치와 탐욕은 하나님의 사랑에 맞선 지나친 죄악이다. 그것은 우상 숭배로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마음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자기 배를 신으로 삼는 것이라고 했다. 이 탐욕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사랑, 관심, 기쁨 그리고 섬김과 근면을 자기 배와 자기 목구멍으로 삼켜버린다.- 리차드 빽스터))

51. ‘In the Scripture there is a portrait of God, but in Christ there God himself. A coin bears the image of Caesar’s son is his own lively resemblance. Christ is the living Bible.”(Thomas Manton)
(성경 안에 하나님의 초상화가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 자신이 있다. 동전 속에 새겨진 가이사 화상과 가이사 아들이 닮은꼴이지만 리스도는 살아있는 성경 자체이시다.- 토마스 맨톤)

52. ‘Our mind is where our pleasure is, our heart is where our treasure is, our love is where our life, but all these, our pleasure, treasure, and life, are resposed in Jesus Christ.”(Thomas Adams)
(우리 생각에 우리 즐거움이 있고, 우리 마음에 우리 보화가 있으며, 우리 사랑이 우리 생명에 있으나 이 모든 즐거움과 보화와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토마스 아담스)

53. ‘For every look at self take ten looks at Christ.” (ROBERT MURRAY MCCHEYNE)
(자신을 한번 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열 번 보는 사람이다.- 맥췌인)

54. “Despair is hope stark dead, presumption is hope stark mad.” (THOMAS ADAMS)
(절망은 굳어버린 소망이며 선입견은 굳어버린 미친 소망이다. -토마스 아담스)

55. “Assurance grows by repeated conflict, by our repeated experimental proof of the Lord’s power and goodness to save; when we have been brought very low and helped, sorely wounded and healed, cast down and raised again, have given up all hope, and been suddenly snatched from danger, and placed in safety; and when these things have been repeated to us and in us a thousand times over, we begin to learn to trust simply to the word and power of God, beyond and against appearances: and this trust, when habitual and strong, bears the name of assurance; for even assurance has degrees.”(JOHN NEWTON)
(확신은 계속되는 갈등과 구해주시는 주의 능력과 선하심에 대해 거듭되는 체험적 증거에 의해 자란다: 매우 낮은 자리에서 도움을 받고 상처를 치료받으며, 던져질 때 다시 일으키시며, 모든 소망을 포기 하게하는 갑자기 몰려온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옮기심; 이런 일들이 수천 번 반복될 때 우리는 보이는 것에 대항해 더 멀리 단순히 하나님 말씀과 능력의 신뢰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런 신뢰가 습관적이고 강할 때 확신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확신에도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존 뉴톤)

56. “Oh, better were it for you to die in a jail, in a ditch, in a dungeon, than to die in your sins. If death, as it will take away all your comforts, would take away all your sins too, it were some mitigation; but your sins will follow you when your friends leave you, and all your worldly enjoyments shake hands with you. Your sins will not die with you as a prisoner’s other debts will; but they will got to judgment with you there to be your accusers; and they will go to hell with you there to be your tormentors.” (JOSEPH ALLEINE)
(오, 죄 가운데서 죽는 것보다 감옥과 시궁창이나 거름더미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 만일 죽음이 모든 위로를 가져가 버리는 것처럼 어떤 경감함이 있었다면 당신의 모든 죄도 가져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죄는 당신 친구들이 떠난다 해도 그대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당신과 악수할 것이다. 죄수의 다른 채무처럼 당신의 죄는 당신과 함께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죄들은 당신의 고소자로서 당신과 같이 심판 자리에 설 것이다. 그리고 그 죄들은 당신을 괴롭히는 자로서 지옥에도 함께 갈 것이다.- 죠셉 얼라인)

57. “If a wicked man seems to have peace at death, it is not from the knowledge of his happiness, but from the ignorance of his danger.” (THOMAS WATSON)
(만일 악인이 임종시 평안을 갖는다면 그것은 행복의 지식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당할 위험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이다.- 토마스 왓슨)

58. “Let us not satisfy ourselves with a knowledge of God in the mass; a glance upon a picture never directs you to the discerning the worth and art of it.” (STEPHEN CHARNOCK)
(덩어리로 된 하나님의 지식으로 만족하지 말자. 왜냐하면 한 폭의 그림을 한번 보는 것으로 그 가치와 기술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테반 챠르낙)

59. “Nothing is more contrary to a heavenly hope than an earthly heart.”(WILLIAM GURNALL)
(세속적 마음만큼 하늘 소망을 대적하는 것이란 없다.-윌리엄 거널)

60. “Sin hath the devil for its father, shame for its companion, and death for its wages.” (THOMAS WATSON)
(죄의 아비는 마귀이고 수치는 그의 친구이고 죽음이 그 값이다.- 토마스 왓슨)

61. “Christ did not die for any upon condition, if theydo believe; but He died for all God’s elect, that they should believe.” (JOHN OWEN)
(그리스도는 믿든지 믿지 않든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지 않으셨다. 다만 그는 택한 자들을 믿게 하려고 죽으셨다. – 존 오웬)

62. “God hath work to do in this world; and to desert it because of its difficulties and entanglements, is to cast off His authority. It is not enough that we be just, that we be righteous, and walk with God in holiness; but we must also serve our generation, as David did before he fell asleep. God hath a work to do; and not to help Him is to oppose Him.” (JOHN OWEN)
(하나님은 세상에서 일하고 계신다. 어렵고 꼬이기 때문에 일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우리가 공평하고 의롭고 거룩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다윗이 죽기 전에 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세대를 섬겨야만 한다. 하나님은 일하시기 때문에 그를 섬기지 않는 것은 그를 반대하는 것이다.- 존 오웬)

63. “My brethren, when God first began to love you, He gave you all that He ever meant to give you in the lump, and eternity of time is that in which He is retailing of it out.”(THOMAS GOODWIN)
(나의 형제들이여, 하나님이 먼저 당신을 사랑하실 때 그대에게 모든 것을 송두리채 주신다. 또 그는 영원 안에 그대에게 영원히 주신다.-

64. “If a man were invited to a feast, and there being music at the feast, he should so listen to the music, that he did not mind his meat, you would say, Sure he is not hungry; so when men are for jingling words, and like rather gallantry of speech than spirituality of matter, it is a sign that they have surfeited stomachs, and itching ears.” (THOMAS WATSON)
(잔치에 초대를 받은 한 사람이 잔치 음악이 있을 때, 음식에 과념치 않고 음악을 듣는 자는 배고프지 않은 자다. 사람들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신령한 말씀보다 웅변적인 말을 더 좋아한다면 이것은 배가 부르고 귀가 가렵다는 증거이다. – 토마스 왓슨)

65. “Temptations, when we meet them at first, are as the lion that reared upon Samson; but if we overcome them, the next time we see them we shall find a nest of honey within them.”(JOHN BUNYAN)
(유혹, 우리가 그것을 처음 만날 때는 삼손을 향해 울부짖던 사자 같으나 이기 다음, 우리는 그 속에서 꿀 송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존 번연)

66. Advice to a Young Minister
“It is easy for me to advise you to be humble, and for you to acknowledge the propriety of the advice; but while human nature remains in its present state, there will be almost the same connection between popularity and pride, as between fire and gunpowder: they cannot meet without an explosion, at least not unless the gun powder is kept very damp.”(JOHN NEWTON)
(젊은 사역자에게 하는 충고
“내가 당신에게 겸손하라고 충고하는 것과 당신이 적절한 충고를 인정하기란 쉽다. 그러나 인간 본성이 있는 한 인기와 자만과의 관계는 마치 불과 화약 관계와 같아 같이 있으면 반드시 폭발할 수밖에 없다. 화약이 많이 젖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 존 뉴톤)

67. “None so empty of grace as he that thinks he is full.” (THOMAS WATSON)
(은혜가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은혜가 고갈된 사람은 없다.- 토마스 왓슨)

68. “A sermon is not made with an eye upon the sermon, but with both eyes upon the people and all the heart upon God.”(JOHN OWEN)
(한편의 설교는 설교 위에 있는 한 눈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사람들을 보는 두 눈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온전한 마음으로 만들어 진다.- 존 오웬)

69. “Every thing that a man leans upon but God, will be a dart that will certainly pierce his heart through and through. He who leans only upon Christ, lives the highest, choicest, safest, and sweetest life.” (THOMAS BROOKS)
(한 사람이 하나님만 의뢰하는 모든 일은 그의 마음을 온통 찌르는 창과 같다. 그리스도만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자란 가장 고상하고 구별되며, 가장 안전하고 달콤한 삶을 사는 것이다.-토마스 브룩스)

70. “The doctrine of repentance is right gospel doctrine. Not only the austere Baptist, who was looked upon as a melancholy, morose man, but the sweet and gracious Jesus, whose lips dropped as a honey-comb, preached repentance; for it is an unspeakable privilege that room is left for repentance.” (WILLIAM PLUMER)
(회개의 교리는 바른 복음의 교훈이다. 침울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우러러 보는 근엄한 세례 요한이나 송이 꿀이 떨어지는 입술로 달콤하고 은혜롭게 말씀하시는 예수님도 회개를 전파하셨다. 회개할 여지가 있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플러머)

71. “Faith lives in a broken heart. ‘He cried out with tears, Lord, I believe.’ True faith is always in a heart bruised for sin. They, therefore, whose hearts were never touched for sin, have no faith. If a physician should tell us there was a herb that would help us against all infections, but it always grows in a watery place; if we should see a herb like it in colour, leaf, smell, blossom, but growing upon a rock, we should conclude that it was the wrong herb. So saving faith always grows in a heart humbled for sin, in a weeping eye and a tearful conscience.” (THOMAS WATSON)
(믿음은 상한 마음 안에 살아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는 눈물로 부르짖었다.” 참 믿음은 항상 죄 때문에 상한 마음에 머문다. 그러므로 죄를 만진 일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믿음을 갖지 못한다. 만일 의사가 모든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약초가 물 속에서 자란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색깔, 잎, 냄새, 꽃이 그 약초와 같아도 바위 위에 자란다면 잘못된 약초라고 결론내릴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하는 믿음은 항상 죄 때문에 겸손한 마음과 우는 눈과 슬퍼하는 양심 안에서 자란다.- 토마스 왓슨)

72. “There are three things that earthly riches can never do; they can never satisfy divine justice, they can never pacify divine wrath, nor can they every quiet a guilty conscience. And till these things are done man is undone.”(THOMAS BROOKS)
(세상의 부요가 할 수 없는 세 가지 일이 있다. 그들은 거룩한 공의를 만족할 수 없고 거룩한 진노를 잠재울 수 없고 죄책을 가진 양심을 쉬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일이 다 되기까지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토마스 브룩스,)

73. “Question: How shall we know that we love the reproofs of the Word? answer 1: When we desire to sit under a heart -searching ministry. Who cares for medicines that will not work? A godly man does not choose to sit under a ministry that will not work upon his conscience. Answer 2: When we pray that the Word may meet with our sins. If there is any traitorous lust in our heart, we would have it found out and executed. We do not want sin covered, but cured. We can open our breast to the bullet of the Word and say, ‘Lord, smite this sin.'”(THOMAS WATSON)
(질문: 우리는 말씀의 책망을 사랑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대답1. 우리가 마음을 살피는 일을 하고 싶어 할 때이다. 효력이 없는 약을 누가 사용하겠는가? 경건한 사람은 자기 양심에 효력이 없는 일에 머무는 것을 결코 택하지 않는다. 대답2. 말씀이 우리의 죄를 만나도록 기도할 때이다. 만일 우리 마음에 어떤 욕망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 제하고 싶어 할 것이다. 우리는 죄를 가리기보다 치료받기를 원한다. 우리의 가슴을 말씀의 거울 앞에 열어놓고 “주여 이 죄를 제하소서” 라고 말할 수 있다.- 토마스 왓슨)

74. “True union makes a true Christian: many close with Christ, but it is upon their own terms; they take and own him, but not as God offers him. The terms upon which God in the gospel offers Christ, are, that we shall accept of a broken Christ with a broken heart, and yet a whole Christ with the whole heart. A broken Christ with a broken heart, as a witness of our humility; a whole Christ with a whole heart, as a witness of our sincerity. A broken Christ respects his suffering for sin; a broken heart respects our sense of sin; a whole Christ includes all his offices; a whole heart includes all our faculties. Christ as King, Priest, and Prophet, and as a Mediator. Without any one of these offices, the work of salvation could not have been completed.” (MATTHEW MEAD)
(참된 연합이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든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하지만 자기 말만하고 그를 영접했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처럼 드리지 않는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는 말은 우리가 상한 마음을 가진 상하신 그리스도를 겸손의 증인으로 영접하며 온전한 마음을 가진 온전한 그리스도를 신실한 증인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상하신 그리스도는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다. 그 이유는 온전한 마음에는 그의 제사장 ,선지자. 그리고 중보자의 온전한 기능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직무가 없이 구원 사역은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매티유 미드)

75. “Heart-work is hard work indeed. To shuffle over religious duties with a loose and careless spirit, will cost no great difficulties; but to set yourself before the Lord, and to tie up your loose and vain thoughts to a constant and serious attendance upon him: this will cost you something. To attain ease and dexterity of language in prayer and to be able to put your meaning into appropriate and fitting expressions is easy; but to get your heart broken for sin while you are actually confessing it; melted with free grace even while you are blessing God for it; to be really ashamed and humbled through the awareness of God’s infinite holiness, and to keep your heart in this state not only in, but after these duties, will surely cost you some groans and travailing pain of soul.”(JOHN FLAVEL)
(마음의 일이란 정말 힘이 든다. 느슨하고 부주의한 영으로 종교적 의무를 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느슨하고 헛된 생각을 묶어 그에게 끊임없이 심각하게 시중들기란 쉽지 않다. 기도에 빈틈없고 용이한 말을 쓰는 경지에 이르거나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꼭 맞게 적절히 표현하기는 쉽다. 그러나 실제로 죄를 고백하는 동안 상한 마음이 되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유로운 은혜의 감동을 받으며 무한하신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 때는 정말 부끄러워하며 겸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의 마음을 지키며 그 의무를 다하려면 일연의 고통이 따르고 영혼의 진통을 갖게 될 것이다.- 존 훌라벨)

76. “My brethren, when God first began to love you, He gave you all that He ever meant to give you in the lump, and eternity of time is that in which He is retailing of it out.”(THOMAS GOODWIN)
(나의 형제들이여, 하나님이 먼저 당신을 사랑하실 때 그대에게 모든 것을 송두리채 주신다. 또 그는 영원 안에 그대에게 영원히 주신다 . -토마스 굳윈)

77. “What fools are they who, for a drop of pleasure, drink a sea of wrath.”(THOMAS WATSON)
(한 방울의 즐거움 때문에 진노의 바닷물을 마시는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토마스 왓슨)

78. “RULE. Hold this as a fixed verity, that is best which God wills. All that have come to God believe this, else they would have not come; for what could draw the heart from all its good but that which is greater than all? But though this is habitually in them, yet they do not always actually believe it; for what should be the cause of their excursions and deviations but because at present they think it better to walk in another way than the way of God.”(JOSEPH SYMONDS)
(법.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상의 것으로 요약된 다양성을 붙들어라. 하나님께 오는 모든 이들은 이것을 믿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에게로 오지 않는다. 무엇이 모든 선에서부터 마음을 끌 수 있으며 어느 것이 만유보다 더 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비록 법이 그들에게 습관화 되었어도 그들 은 항상 그것을 믿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의 탈선과 타락의 원인이겠는가? 현재 그들은 하나님의 길보다 자기 길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셉 사이몬드)

79.“There are no men more careful of the use of means than those that are assured of a good issue and conclusion, for the one stirs up diligence in the other. Assurance of the end stirs up diligence in the means. For the soul of a believing Christian knows that God has decreed both.”(RICHARD SIBBES)
(어떤 선한 문제와 결론을 확신하는 사람만큼 방법 사용에 주의 깊은 사람이란 없다.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 안에서 근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결론에 관한 확신은 방법으로 근면하도록 분발시킨다. 믿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이 둘을 명령하셨음을 안다.- 리차드 시브스)

80. “I am tempted to think that I am now an established Christian,–that I have overcome this or that lust so long,–that I have got into the habit of the opposite grace,–so that there is no fear; I may venture very near the temptation–nearer than other men. This is a lie of Satan. One might as well speak of gunpowder getting by habit of resisting fire, so as not to catch spark. As long as powder is wet, it resists the spark; but when it becomes dry, it is ready to explode at the first touch. As long as the Spirit dwells in my heart, He deadens me to sin, so that, if lawfully called through temptation, I may reckon upon God carrying me through. But when the Spirit leaves me, I am like dry gunpowder. Oh for a sense of this!” (ROBERT M M’CHEYNE)
(나는 든든한 신자로서 이런 저런 정욕을 오랫동안 이겨온 사람인양 생각하도록 유혹받아 은혜를 대적하는 길로 나가게 되었는데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어 다른 이보다 더 유혹에 가까이 노출되어 있을지 모른다. 이것이 사탄의 속임수이다. 마치 이것은 불에 저항하도록 습관되 어 다루어지는 그래서 불이 붙지 않는 화약이야기와 같다. 화약이 젖어있는 한 불이 붙지 않지만, 마르기만 하면 건드려 폭발할 준비가 완료된다..성령이 내 마음에 내주하는 한 죄에 대해 죽도록 해 주시므로 법적으로 유혹에 연결되어도 하나님이 나로 난관을 극복하게 해 주심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이 나를 떠나시면 나는 마른 화약처럼 된다. 오 이것을 느낀다면! – 로버트 맥췌인)

81. “It was a particular condescension of the Son of God, to be born of any of Adam’s sinful children. True honour in God’s account consists in holiness, and sin is to Him the vilest disgrace. Original sin in Christ’s mother had made her more contemptible and ignoble than anything else could; had she been an empress, it would yet have been to Christ an abasing of himself to derive his humanity from her. That a clean thing should come out of an unclean is strange; for though she was sanctified by grace, nevertheless she had not attained spotless perfection, but still had the stain and pollution of sin on her. As it is a disgrace to have a traitor as one’s father, so it is no less to have a sinner for one’s mother. Thus Christ, though without sin, would be intimately related to sinners, for whose sake he came into the world.” (SAMUEL WILLARD)
(아담의 죄를 가진 사람으로의 출생은 하나님 아들의 독특한 겸손이다. 하나님의 경영가운데 참된 명예는 거룩함에 있고 죄란 그 분에 대해 가장 악한 불명예가 된다. 그리스도 모친의 원죄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경멸되고 도외시 할 수밖에 없다. 불결한 데서 깨끗한 것이 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녀가 은혜로 헌신했다 할지라도 흠 없는 완전에 도달하지 못한다. 여전히 죄의 흠과 점이 그녀에게 있다. 사람의 아버지로 배신자를 갖는 것은 불명예가 되는 것처럼 사람의 어머니로 죄인을 잉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죄가 없다 해도 그리스도는 죄인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는 죄인을 위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 사무엘 윌라드)

82. “Though our private desires are ever so confused, though our private requests are ever so broken, and though our private groaning are ever so hidden from men, yet God eyes them, records them, and puts them upon the file of heaven, and will one day crown them with glorious answers and returns.” (THOMAS BROOKS)
(우리 개인 욕망이 너무 혼란스럽고 개인 요구가 거절당하며 개인의 탄식이 사람들에게 숨겨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보시고 기록하시고 하늘 파일에 정돈하신다. 어느 날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응답의 관을 씌우시고 보답하신다.- 토마스 부룩스)

퓨리탄의 지혜 제 1권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 “걸어 다니는 성경”, “성경대로 믿고 생활한 사람”으로 통한 16세기 말-17세기 초의 청교도들은 사도 시대 이래 복음을 가장 잘 표현한 세상의 성자들로 알려졌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신학적 지식과 신앙적 삶의 자취는 모든 방면에 도사리는 어두움을 몰아내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퓨리탄의 세계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그들의 진수를 맛보기에는 너무 많은 수고가 따릅니다. 이 퓨리탄들의 성경 묵상과 성경 강해와 설교 속에서 영감을 주는 말들을 하나 하나 생각하는 것이 그들을 알고 우리 삶에 적용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어떤 개인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달아 그대로 행하여 경험한 지혜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들은 개혁주의 퓨리탄 웹사이트의 하나인 Fire & Ice: Puritan and Reformed Writing에 나온 것들의 일부를 번역한 것입니다. 총 26명의 퓨리탄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의 책에서 발췌한 47 개의 말들을 정리하여 [퓨리탄의 지혜]란 제목으로 묶어 보았습니다. 영적 거장들이 믿고 따른 지혜를 접하여 신선한 도전을 받는 기회가 된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된것입니다. 혼란한 교훈의 광풍에 휩쓸려 가는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샘솟는 위로와 활력을 즐것입니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리라(사60:22)”는 주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는 우리는 먼저 나 자신 이 천의 왕국을 체험하고 나아가 우리 이웃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가득 채우기를 소원합니다. 선한 싸움으로 약하여 지쳐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퓨리탄의 지혜]를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1. “Christ is the sun, and all the watches of our lives should be set by the dial of the motion.”(Thomas Brooks)
(그리스도는 태양이다. 생활의 모든 시계를 그 분의 움직임의 다이얼에 맞추어야 한다.)

2. “Guilt is to danger what fire is to gunpowder.” (John Flavel)
(죄책감은 화약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위험하다)

3. “Neither be idle in the means, nor make an idol of the means.” (William Secker)
(수단은 소홀히 여겨도 안 되고 우상이 되서도 안 된다.)

4. “It is better to have a sore than a seared conscience. (Thomas Brooks)
(화인 맞은 양심보다 고통을 당하는 양심이 더 낫다.)

5. God sees us in secret, therefore, let us seek his face in secret, Though heaven be God’s palace, yet it is not his prison.(Thomas Brooks)
(하나님이 은밀한 가운데서 우리를 보시기에 은밀한 중에 그의 얼굴을 구하자. 하나님의 왕국인 천국은 그의 감옥이 아니기 때문이다.)

6. “The two poles could sooner meet, than the love of Christ and the love of the world.”(Thomas Brooks)
(그리스도의 사랑과 세상의 사랑이 만나는 것보다 기둥의 양 끝이 더 빨리 만난다.)

7. “Faith, without trouble or fighting, is a suspicious faith; for true faith is a fighting, wrestling faith.” (Ralph Erskine)
(고난이나 싸움 없는 믿음은 수상한 믿음이다. 왜냐하면 참 믿음은 싸 우고 씨름하기 때문이다.)

8. “Christ is the most cheap physician, he takes no fee, He desires us to bring nothing to him but broken hearts: and when he has cured us he desires us to bestow nothing on him but our love.”(Tomas Watson)
(그리스도는 가장 싼 의사이다. 그에게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필요 없고 단지 상한 마음만 가지고 오면 된다. 그는 우리를 치료하시고 우리의 사랑 외에 아무 댓가도 원치 않으신다.)

9. “All The Spirit’s operations, how rough so ever some of them may appear, are always useful to believers, and tend to make them fruitful. To this end the most sharp influences contribute as well as the more comfortable.” (James Durham)
(성령의 모든 역사가 어떤 때는 거친 것처럼 나타나지만 신자에게 항상 유익이 되며 열매를 맺힌다. 마침내 이것은 가장 세밀한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더 많은 위로를 안겨준다.)

10.“The law breaks the hard heart, but the gospel melts it. A stone duly broken, may be still a hard stone; but the gospel melt.”(Ralph Erskine)
(율법은 강팎한 마음을 부수지만 복음은 그것을 녹인다. 날카로운 돌이 단단한 돌을 부술지 모르지만 복음은 굳은 마음을 녹여버린다.)

11. “If we would talk less and pray more about them, things would be better than they are in the world; at least, we should be better enabled to bear them.(John Owen)
(우리가 그들에 관해 적게 말하고 더 많이 기도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최소한의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더 잘 참게 하기 때문이다.)

12. “No heart can conceive that treasury of mercies which lies in this one privilege, in having liberty and ability to approach unto God at all times, according to his mind and will.”(John Owen)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항상 그 분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자유롭고 능력있는 특권을 소유한 긍휼의 보화를 언제나 생각해야만 한다.)

13.“Christ is the most tender-hearted physician. He hath ended his passion but not his compassion. He is not more full of skill than sympathy, ‘ He healed the broken in heart, and bindeth up their wounds'(Psalm 147:3) Every groan of the patient goes to the heart of the physician.”(Thomas Watson)
(그리스도는 가장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신 의원이시다. 그의 고난은 끝났 지만 동정은 계속된다. 그는 기술보다 동정이 가득 차신 분이시다. 그는 상한 마음을 치료하시고 상처를 싸매신다.(시147:3) 병자의 신음 소리는 모두 그에게 들려진다.)

14.“O. Come! Kiss the Son, by believing in Him, and applying the benefits of this glorious transaction to yourself: and be who you will, if you kiss and embrace the Son, you shall find the glorious attitudes of kissing and embracing you, and hugging you in their arms, as a darling of heaven and a favorite in the house of God.” (Ralph Erskine)
(어서 오라 ! 그를 믿고 그의 영광스러운 공로를 자신에게 적용함으로 그 아들에게 입 맞추고 가슴에 품는다면 도리어 당신에게 입 맞추고 그의 가슴에 품고 팔로 쓰다듬으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천국의 애인이나 하나님 집에서 사랑받는 자들처럼 말이다.)

15.“Sense of sin may be often great, and more felt than grace: yet not be more than grace. A man feels the ache of his finger more sensibly than the health of his whole body : yet he knows that the ache of s finger is nothing so much as the health of the whole body.”(Thomas Adams)
(죄의식은 은혜의식보다 더 크고 더 많이 느낀다. 사람이 자기 몸의 건강보다 손가락의 아픔을 더욱 예민하게 느낄 수 있지만 손가락의 고통은 몸 전체의 건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안다.)

16 “God dwells as glorious in a saint when he is in dark, as when he is in light, for darkness is His secret place, and His pavilion round about Him are dark waters.”(Wlliam Erberry)
(하나님은 어떤 성도가 빛 가운데 있을 때처럼 어두움에서도 영광스럽게 함께 하신다. 왜냐하면 어두움은 그의 비밀스러운 장소이며 어두운 바다는 그를 둘러싼 장막이기 때문이다.)

17.“Knowledge alone is like a winter sun, which hath no heat or influence; it doth not warm the affections, or purify the conscience, Judas was a great luminary, he knew God’s will, but he was a traitor.”(Thomas Watson)
(지식만은 열기도 영향도 없는 겨울 태양과 같다. 그것은 애정을 따스하게도 못하고 양심을 깨끗하게도 못하기 때문이다. 유다는 매우 총명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았지만 배반자가 되어버렸다.)

18. “God keeps open house for hungry sinner(Isa. 45:1,2). ”(Thomas Watson)
(하나님은 배고픈 죄인들에게 항상 집을 열어 놓으신다.)

19 ”Christ is the most bountiful physician. Other patients do enrich their physicians, but here the physician doth enrich the patient. Christ elevates all his patients: he doth not only cure them but crown them (Revelation 2:10). Christ doth not only raise them from the bed, but to the throne: he gives the sick man not only health but also heaven.”(Thomas Watson).
(그리스도는 가장 풍부한 의사이다. 다른 환자들은 의사를 부자가 되게 하지만 그리스도는 환자를 부요케 하신다. 그리스도는 자기 환자를 모두 높이신다. 이는 그들을 치료할 뿐 아니라 면류관을 씌워주기 때문이다. (계2:10) 그리스도는 침상에서 일으키실 뿐 아니라 보좌에 앉혀주신다. 병자를 건강하게 하실 뿐 아니라 천국에 올려주신다.)

20. In natures, we see God, as it were, like the sun in a picture; in the law, as the sun in a cloud, in Christ we see Him in His beams; He being ‘the brightness of His glory, and the exact image of His person.”(Stephen Charnock).
(우리는 자연 속에서 그림의 태양처럼 그리스도를 보고 율법에서는 구름에 가려진 태양처럼 그를 보지만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영광의 밝음과 분명한 인간적 형상을 본다.)

21.“Seek not to grow in Knowledge chiefly for the sake of applause, and to enable you to dispute with others; but seek it for the benefit of your souls, and in order to practice… Practice according to what knowledge you have. This will be the way to know more…[According to Ps. 119:100]’l understand more than the ancients, because I keep thy precepts.”(Jonathan Edwards).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거나 경쟁하기위해 지식을 추구하지 말고 당신 영혼의 유익과 실행을 위하여 구하라. 당신이 가지는 지식을 따라 살아가라 이것이 더 많은 것을 알게 하는 비결이 될 것이다. ( 시119:110) 내가 주의 규례를 지킴으로 노인보다 승할 수 있음을 깨달아라.)

22.“Whatsoever is good for God’s children they shall have it; for all is theirs to help them towards heaven; therefore if poverty be good they shall have it; if disgrace or crosses be good they shall have them; for all is ours to promote our greatest prosperity.”(Richard Sibbes).
(하나님 자녀에게 유익된 것은 무엇이든지 소유해야한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천국 향해 나아가는 그들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만일 가난이 유익하다면 그대로 받아야하고, 불명예나 십자가가 유익하다면 그대로 당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최대 번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23.“Examples do strangely charm us into imitation. When holiness is pressed upon us we are prone to think that it is a doctrine calculated for angels and spirits whose dwelling is not with flesh. But when we read the lives of them that excelled in holiness, though they were persons of like passions with ourselves, the conviction is wonderful and powerful.”(Cotton Mather).
(본이란 우리로 모방하게 하려는 이상한 매력을 끈다. 우리에게 거룩이 압도할 때 우리 육체와 함께하지 않는 천사나 영들에 적합한 교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그들의 뛰어난 거룩의 삶을 볼 때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되고자 하는 놀랍고 능력있는 확신을 갖게 된다.)

24. It is truth alone that capacitates any soul to glorify God.”(John Owen)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영혼으로 자라게 하는 것은 오직 진리뿐이다.)

25. “It is an undoubted truth that every doctrine that comes from God, leads to God ; and that which doth not tend to promote holiness is not of God.(George Whitefield)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께 이끄는 모든 교훈은 확실한 진리이지만 거룩을 증진시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26.”Pride is the shirt of the soul, put on first and put off last.”(George Swinnock)
(교만은 영혼의 셔츠다. 먼저 입고 마지막에 벗기 때문이다.)

27. “Most of God’s people are contented to be saved from the hell that is without; they are not so anxious to be saved from the hell that is within.”(Robert Murray Mccheyne)
(대부분의 하나님 백성은 밖에 있는 지옥에서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지 안에 있는 지옥에서 구원받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28. “The godly have some good in them, therefore the devil afflicts them; and some evil in them, therefore God afflicts them.”(Thomas Watson)
(경건한 사람은 그 속에 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가 괴롭히고 또한 그 속에 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괴롭힌다.)

29. “As God delightly in his own beauty, he must necessarily delight in the creature’s holiness which is a conformity to and participation of it, as truly as the brightness of a jewel, held in the sun’s beams, is a participation or derivation of the sun’s brightness, though immensely less in degree.”(Jonathan Edwards)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름다움 안에서 기뻐하시는 것처럼, 정도의 차이는 달라도, 태양의 밝음에 어떤 보석이 참여하여 비취는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에 순응하고 참여시킨 피조물의 거룩 안에서 기뻐하신다.)

30. “The Christian’s life should put his minister’s sermon in print.(William Gurnall)
(크리스챤 생활은 자기 목사의 설교를 자기 삶에 각인시켜야한다.)

31. “Thy sorrows outbid thy heart, thy fears outbid thy sorrows, and thy thoughts go beyond thy fears; and yet here is the comfort of a poor soul: in all his misery and wretchedness, the mercy of Lord outbids all these, whatsoever may, can, or shall befall thee.”(Thomas Hooker)
(슬픔이 마음보다 앞서고 두려움이 슬픔보다 앞서고 그리고 생각이 두려움보다 더 앞선다 할지라도 넘어뜨릴 수 있는 불행과 파멸 가운데 있는 어떤 가련한 영혼이라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긍휼은 준비되어 있다.)

32. “Christian Direction(그리스도인의 지침) (Samuel Rutherford)
(1) That hours of the day, less or more time, for the Word and prayer, be given to God; not sparing the twelfth hour, or mid-day, howbeit it should then be the shorter time.”
(그 날의 시간이 적든지 많든지 12시든지 혹은 정오든지 상관없이, 아니 더 짧은 시간일지라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바쳐야한다.)

(2) In the midst of worldly employments, there should be some thoughts of sin, death, judgement, and eternity, with at least a word or two of ejaculatory prayer to God.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께 기도 할 때, 죄, 죽음, 심판 그리고 영원에 관한 내용을 한 두 마디라도 반드시 아뢰어야한다.)

(3) To beware of wondering of heart in private prayer.
(개인기도 시간에 마음의 방황을 조심해야한다.)

(4) Not to grudge if you come from prayer without sense of joy. Downcasting, sense of guiltiness, and hunger, are often best for us.
(만약 기쁨이 없이 기도한다하여 꺼리지 말 것. 가끔 버림받은 의식과 죄감과 갈급증은 우리를 위해 최선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That the Lord’s Day, from morning to night, be spent always either in private or public worship.
(주의 날에는 항상 개인 예배와 공예배로 시간을 보내야한다.)

(6) That words be observed, wandering and idle thoughts be avoided, sudden anger and desire of revenge, even of such as persecute the truth, be guarded against; for we often mix our zeal with our wild-fire.
(진리가 핍박받는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갑작스러운 분노나 보복하는 마음을 경계하고, 말씀을 살핌으로서 방황하는 게으른 생각들을 피해야 한다.)

(7) That known, discovered, and revealed sins, that are against the conscience, be avoided, as most dangerous preparatives to hardness of heart.
(강팎한 마음에 이르는 가장 위험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양심에 맞서 알려지고 발견되고 드러난 죄를 피해야 한다.)

(8) That in dealing with men, faith and truth in covenants and trafficking be regarded, that we deal with all men in sincerity; that conscience be made of idle and lying words; and that our carriage be such, as that they who see it may speak honourably of our sweet Master and profession.
(사람과의 거래는 언약의 신실함과 진리로 대하고 양심이 게으름과 거짓된 말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모든 사람과 참신한 교제를 하여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아름다운 우리 주님과 그 신앙고백을 칭찬하게 해야 한다.)

33. “A proud faith is as much a contradiction as a humble devil.”(Stephen Charnock)
(자랑하는 믿음은 겸손한 척하는 마귀처럼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34.“Tis no easy matter to be saved. ‘Twas difficult work to Jesus Christ to work redemption for us. ‘Tis difficult work to the Spirit to work grace in us, and to carry it on against corruption, temptations, distractions.”(Philip Henry)
(구원받는 일은 쉽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구속 사역을 이루는 것은 어렵다. 우리 안에서 부패성과 유혹과 혼란과 맞서 은혜로 이끄시는 성령의 사역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35.‘Use thy duties, as Noah’s dove did her wings, to carry thee to the Ark of the Lord Jesus Christ, where only there is rest.”(Issac Ambrose)
(유일한 안식처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로 나아가기 위하여 노아의 비둘기의 날개처럼 그대의 의무를 다하라)

36.“When we love things baser than ourselves it is like a sweet stream that runs into a sink. As our love therefore is the best thing we have, and none deserves it more than God, so let him have our love, yea, the strength of our love, that we may love him’ with all our souls, and with all our mind, and with all our strength,’Lev 19:18″ (Richard Sibbes).
(우리가 물질을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달콤한 물줄기를 싱크로 흘 러가게 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인 사랑을 아무도 하나님 보다 더 가질 자격이 없다. 고로 우리의 혼과 마음과 힘을 다하여 그 분을 사랑하여 나오는 사랑의 능력을 그 분께 드리자.(레19:18)

37.“Christ heals with more ease than any other. Christ makes devil go out with a word (Mark 9:25). Nay, he can cure with a look: Christ’s look melted Peter into repentance; it was a healing look. If Christ doth but cast a look upon the soul he can recover it. Therefore David prays to have a look from God, “Look Thou upon me, and be merciful unto me'(Psalm 119:132)(Thomas Watson)
(그리스도는 다른 것보다 더 쉽게 치료하신다.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귀신을 좇아내시고(맛9:25) 그가 쳐다보기만 해도 고치신다. 베드로를 주목할 때 그의 마음이 녹아 회개했다. 이것이 그의 치료하는 눈이시다. 그리스도가 주목함으로 영혼이 회복됨을 알았던 다윗은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시119 :132)라고 간구했다.)

38. “Seek not to grow in knowledge chiefly for the sake of applause, and to enable you to dispute with others; but seek it for the benefit of your souls, and in order to practice…. Practice according to what knowledge you have. This will be the way to know more…[According to Ps. 119:100] ‘I understand more than the ancients, because I keep thy precepts.”(Jonathan Edwards)
(주로 박수갈채를 받고 이웃과 논쟁하기위해 지식 안의 성장을 구하지 말고 다만 자기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배운 지식을 따라 살기 위하여 그것을 구하라. 이로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119 :100에 의하면 ”주의 법도를 지킴으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고 말했다.

39. Remember the perfections of that God whom you worship, that he is a Spirit, and therefore to be worshipped in spirit and truth; and that he is most great and terrile, and therefore to be worshipped with seriousness and reverence, and not to be dallied with, or served with toys or lifeless lip-service; and that he is most holy, pure, and jealous, and therefore to be purely worshipped; and that he is still present with you, and all things are naked and open to him with whom we have to do. The knowledge of God, and the remembrance of his all- seeing presence, are the most powerful means against hypocrisy.”(Richard Baxter)
(그대가 예배하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기억하라. 그는 영이시며 신령과 진리 안에서의 예배를 받으시며 가장 위대하고 존엄하신 분이기에 장난 치듯 하는 생명 없는 말이 아닌 심각성과 경외의 예배를 받으신다. 그러 므로 순전한 예배를 받기위해 지금 그대와 함께 계시고 그대가 행하고 자하는 모든 것을 밝히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지식과 그의 임재에 관한 묵상은 외식을 이기는 가장 놀라운 수단이다.)

40.“The rattle without the breast will not satisfy the child; the house without the husband will not satisfy the wife; the cabinet without jewel will not satisfy the virgin; the world without Christ not satisfy the soul.”(Thomas Brooks)
(젖이 없는 달램이 젖먹이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남편 없는 집이 아내를 만족시킬 수 없고 보석없는 캐비넷이 신부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 없는 세상은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

41.“Neither place, parts, nay, nor graces, will exempts any man from falling. O believers, what need is there to be watchful and humble!” (James Durham)
(오 신자들이여, 어떤 장소, 어떤 부분, 어떤 은혜라도 타락의 자리에서 아무 누구도 제외시킬 수 없다. 다만 근신과 겸손이 필요할 뿐이다.)

42. “It is sure mark of grace to desire more.”(Robert Murray Mccheyne)
(더 많은 것을 사모하는 것은 은혜 받은 자의 확실한 표식이다.)

43. “Oh, Christians, look to your steps! When you have prayed against sin, then watch against temptation. Such as are more excellent than others, God expects some singular thing from them. They should bring more gloly to God and, by their exemplary piety, make proselytes to religion. Better fruit is expected from a vineyard than from a wild forest.”(Thomas Watson)
(오 신자들이여! 그대의 발걸음을 살펴라. 죄와 맞서 기도할 때 그대에게 몰려오는 유혹을 경계하라. 이 일은 다른 일보다 더 귀한 일이다. 하나님 은 이런 사람에게서 어떤 귀한 열매를 기대하신다. 그들은 경건한 본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더 많이 가져올 뿐 아니라 초신자를 신앙으로 살게 한다. 더 나은 열매는 들판 보다 포도원에서 따기 때문이다.)

44. “a ministry may fill his pews, his communion roll, the mouths of the public, but what that minister is on his knees in secret before God Almighty, that he is and no more.”(John Owen)
(목회는 교인들을 모아 성찬 떡을 주며 공적 요구를 채우는 일이지만 목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은밀히 기도하는 사람이다.)

45. “A faithful minister must see before he say.”(Edward Marbury )
(신실한 목사는 말하기 전에 먼저 봐야 한다.)

46. “He doth preach most that doth live best.”(John Boys)
(최상의 삶을 사는 목사가 가장 많은 것을 설교한다.)

47. “Antichrist is Mammon’s son.”(John Milton)
(적그리스도는 맘몬(물욕)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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