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트러스 레이머스(Petrus Ramus 1515-1572)

    피터 레이머스가 위험한 길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세가지 적극적 까닭이 있었다. 첫째, 그는 지성인이었다. 죤 칼빈의 출생지와 가까운 프랑스 피카디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한 레이머스는 소년시절에 아버지를 잃었다. 정말 그는 거대한 사회적 기만을 극복하면서 그것을 보상하기 위하여 군인으로, 하인으로 그리고 논리학과 수사학의 석사학위를 얻은 학생으로서 섬겼다. 둘째, 레이머스는 창조적이었다. 그의 연구는 그의 머리를 다른…

  • 월터 밀( Walter Mill 1558)

    형틀에 매여 화형을 당해 죽으면서 월터 밀은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다음같이 외쳤다. “하나님의 종들을 그렇게 혹독하게 쫓던 외식 자에게 임할 진노로 인하여 나는 두려워한다. 82세인 나는 자연 질서에 비추어 보면 오래 살았으나 너희가 흩는 나의 재는 백년이상 떠돌아 다닐 것이다. 하나님 백성의 외식자며 박해자요, 자신에 대해 최상의 것을 생각하는 너희는 내가 당하는 정직한 죽음을 이기지…

  • 쥴리어스 팔머 (Julius Palmer 1556)

    탁월한 한 학자로 캐톨릭에 헌신한 쥴리어스 팔머는 개신교 순교자들이 고통 속에서 기쁨과 평안의 모습으로 죽는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일이 그를 혼란케 했고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그는 그들의 믿음은 거짓이고 아무 근거도 없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거짓이라면 박해자들에 대하여 어떤 악의를 가지고 대들어야하고 그것을 위해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악의 대신에 도리어…

  •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

    토마스 크랜머는 말년에 단 한 가지 부족한 일을 행했다. 그는 영국 교회의 리더며 왕의 자문으로 가장 유명한 신앙서를 발행한 편집자였다. 대주교인 그는 넓게 여행했으며 두 번 결혼했고 임종하는 군주의 손을 잡은 사람이다. 그에게 필요한 한 가지는 순교에 직면할 때 가져야 할 용기였다. 토마스 크랜머는 겸손한 가정에서 시작하여 서방 크리스챤을 통해 명성을 얻기까지 높아갔다. 그는 캠브릿지를…

  • 윌리엄 헌터(William Hunter 1555)

    젊은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라는 것이 감독의 방침이었다. 소년에게 그가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지 무엇을 제공하라. 돈을 주라. 공적 명예를 주라. 그러면 어떤 소년이든지 만족할 것이다. 그는 그것을 바랄 것이다. 런던 감독 보너는 이 일에 확신이 넘쳐있었다. 그는 런던 젊은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헌터의 복종을 받아 내려고 한 보너는 자신과 자기 여왕에게 역사적…

  • 로랜드 테일러(Rowland Taylor) (1510-1555)

    교육을 받거나 설교하지 않았으나 애국주의자였던 로랜드 테일러는 그의 우수한 생활 때문에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고 그의 자녀들은 어버지 없는 아이들이 되었다. 정말 로랜드의 부친은 부유하진 않았으나 부와 관계가 있어 자손들이 번성할 수 있도록 할 최상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 특별한 영역의 사무관으로 일했다. 로랜드도 그랬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4세의 로랜드는 캠브릿지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설교로 영향을 미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