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요한복음

요 7:53-8:11

1.“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와서”(3)- 현장범 물증이 확실하여 그녀는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채워진다. 이것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스스로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즉시 생긴 수치와 같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하나 님의 감찰 하시는 눈을 누가 피하겠는가? 바래새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할 거리로 이를 이용했다해도 그 여인의 죄는 자신의 인격을 천하게 만드는 죄로서 죄책감에 사로 잡히는 순간이다. 죄책에 사로잡힌 나의 할일은 요일1:9따라 자백 하는 일이다. 그 자백에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2.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7) – 이 말은 재판과 판결은 오직 하나님의 소관이란 뜻이다. 원수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한 것은 우리의 무분별한 판 결로 하나님을 월권하는 일을 금하신 것이다. 비판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 하셨다. 율법의 근본정신 역시 의와 사랑이다. 이것을 균형있게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내가 남을 판단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 우선이다.

3.“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11)”- 양심의 가책받은 그들이 다 떠나 갔을 때 주님은 개별적으로 자신도 정죄하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간음이란 죄를 무마하시 려는 것이 아니고 이 일을 위하여 주께 용서받은 것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담당할 것을 전제 하신 것이다. 죄를 이기는 것은 용서받은 은혜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 용서받은 자의 삶은 죄와 싸우는 삶이어야한다 . 한날의 나의 삶의 목표도 죄와 싸우는 일이다. 주여 죄를 미워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요 9:24-41

1.“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4)- 현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아는 것은 외식중의자들의 생애의 표어가 되었다. 실로암 소경이 누든 기적이 안식일에 했따하여 고소고리를 찾은그들이 예수께서 행하심을 알앜ㅅ지만 믿지않으려고 그 눈뜬ㅅ경에게 하난ㅔ만 영광을 돌리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는 거짓마하는 사람으로 일축햇다. 외시자들의 능수능란한 방법은 진리와 은혜와 거룩을 표방하여 그 뒤에 웅크리고 숨기를 잘한다. 그들은 말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지, 자기 영광만을 구 했다. 하나님께 만 영광을 돌리려면 그를 먼저 즐거워해야만 한다. 이 둘은 서로 떨어질 수가 없다.

2. “이상하다”(30) –눈 뜬 소경의 양심 속에 자리잡은 확신은 이상하다는 말로 표현되었다. 순종함으로 받은 이 기이한 일을 말하면`다 `믿을 것 같은데 믿지않는 저들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진리를 따르 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따라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 이 당연한 것을 전하기 위해 나의 생애를 모두 드리기를 원한다. 누구든지 예 수님의 실상, 성경의 가르침을 알기만한다면 모두 믿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3.“네가 인자를 믿느냐”(35)- 처음에는 선지자로 믿던 그는 다시 오신 그 분 을 만나 인자로 믿었다. 인자는 다니엘7:13절의 예언된 그 분이다. 초자연적으로 오셔서 온 세상의 자기 백성을 불러 모아 한 나라를 이루어 그 분께 바치는 이로 오신다. 그는 죽음과 부활로 그 나라의 왕이 되셨다. 그 인자를 믿을 때 구원을 받는다. 나도 그 인자를 나의 주로 믿는다.

요 7:39 생수의 강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 니”(요7:39)

[해석] 그리스도의 자기 주장 중 하나는 생수란 표현이다. 6장에서도 이미 자신의 피를 마시라고 한 것처럼 자신이 생수이니 목마르면 와서 마시라고 초대하신다. 이 것은 그를 믿는 것이 물을 마심과 같다는 뜻이다. 목마른 자가 물과 연합이 되듯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와의 연합을 가리킨다. 이 연합은 혼돈이 아니고 신인의 명확한 구분이며 인간은 의존적이란 사실이다. 생수의 강이 흘러가는 것은 속에 있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온갖 은혜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구약을 말한다. 이사야는 값없이 돈없이 와서 사서 마실 수 있는 물을 예언했다. 그 물은 예수 그리스 도, 성령 구원을 뜻한다. 복음 선지자인 이사야는 성령의 감동으로 70년 후에 시작될 넘치는 강수를 본 것이다. 에스겔은 그의 환상에서 성전 문지방 밑에서 조용히 흘러나 오는 물이 성전 안을 덮고 밖으로 흘러 사해를 치료하여 물고기가 뛰놀고 주변에 각종 과일이 달마다 맺히고 잎파리는 약재료가 되는 것처럼 믿는 자의 영혼속에 넘쳐나는 은혜이다. 한 마디로 성령이다. 이 성령은 오순절에 온 교회에 임하여 때로는 폭풍, 때로는 불 그리고 때로는 강수와 같이 흘러 넘치어 속에서 밖으로 나아가 메마른 사 막같은 세상을 싱그럽게 한다. 이 강수는 먼저 죄사함이고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의 체험이다.

요 9:3 하나님이 하시는 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해석] 그리스도인의 고난관은 죄의 벌로 온 결과로서의 고난도 인정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 이것은 만성 질고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고난이란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유대중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도 부모나 그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 생각을 지배했 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데 사용된 도구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고난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그리스도게서 이것을 위해 단번에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셧기 때문이다. 성화과정에 있는 성도의 고난은 모두 하나님의 목적을 나타내 는 것이다. 여기성의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빛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그를 전하여 알게하려는것이 고난의 목적이엇다. 비록 죄를 범하여 넘여져서 당하는 고난일지라고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잇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효능은 효과적이기 대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육체에 가진 가시의 육익을 말하기를 그것 이 약한 나를 강하게 하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의 은혜의 만족을 누리며 나아가 은혜를 유지하는 힘이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 6:30-40

1.“만나”(31)- 광야 이스라엘이 먹은 만나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상징주의이다. 장대에 매달린 놋뱀이 십자가 달릴 자신이라고 설명하심처럼 실체를 나타 내신다. 이스라엘은 일시적 기적의 떡으로 살았으나 새 이스라엘이 먹은 참 만나 이신 그리스도는 영원을 살 수 있게 하신다. 아무리 참 떡이 떨어졌어도 믿지 못하면 그 부요를 전혀 알 수가 없다. 광야 생활이 만나 공급하는 것을 중심한 것이라면 신약에는`모든 방면에 그리스도를 중심한 삶이 되게 하셨다. 기적을 체험해도 썩을 양식을 위하여 사는 자가 될 수 있다. 그 실체를 체험한 자는 반드시 영생하는 양식의 힘으로 살아간다. 새해는 만나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먹어 그 힘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2.“생명의 떡”(35) – 생명의 떡, 참떡, 그리고 하늘로 내리신 살아있는 떡이란 표현에 중요한 것은 수식어이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 진리 그리고 새생명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신자의 삶이다. 성령충만,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을 가리킨다. 항상 나 자신이 생명의 떡을 먹었는가를 점검한 새해 항해가 되어야만 하겠다.

3.“믿는 자(35)” 생명과 보호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를 보장받는 자는 오직 믿는 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한계성에 머무나 그리스도를 믿는 나는 참 만족을 누리고 그 복을 알리고 영원한 효력을 가져오도록 되어있다. 이것은 오직 그를 믿음으로 시작되고 진행된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가는 삶이 나의 새해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