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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3:18 선한 양심

“…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히13:18)

[해석] 신자가 모든 일에 선을 행하며 지극히 선한 열매가 충만케 하려면 성령의 오심으로 악한 양심이 깨어나 선한 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선한 일이 선한 양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암시한다. 양심의 활동을 다룬 것을 보아 히브리서 저자가 바울처럼 보인다. 구원받은 후의 구원의 삶을 바울은 거짓 없는 믿음과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의 활동임을 강조했고 그 자신이 양심의 거리낌 없이 사역했다고 말한다.(행20:20) 양심은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이며 마음에 두신 하나님의 대리역할을 한다. 양심이란 말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과학이란 뜻이다. 단번에 구원받은 신자는 지속적으로 구원의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선한 양심의 소리에 충실한다.

히 13:1-17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1) – 그 큰 사랑을 아는 신자는 그 흐름의 물고를 수평으로 흐르게 한다. 그것은 형제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타난다. 손님을 먼저 조건 없이 대접하는 섬김으로 이 사랑이 표현된다는 뜻이다. 착한 행실을 통해 그리스도의 빛이 나타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된다. 교회는 영원히 사랑 에서 사랑으로 나가게 하는 섭리적 제도 속에 살아간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사랑에서 사랑으로 그리고 소망에서 소망으로 나아가는 것이 좁은 길을 걷는 자의 행복이다. 새해의 정한 기간에 이 사랑의 흐름을 따라 겸손히 나아가야한다.

2.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16)- 그리스도가 이루신 속죄 제사는 누가 도울 수 없이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루신 독일무이한 제사이다. 그것은 자기 백성의 모든 삶의 유일한 근거이다. 과거의 모든 죄를 청산하고 현재의 모든 죄를 처리하고 미래의 영원한 완성을 이루는 원 천이다. 그 안에서 신자는 항상 영원한 현재의 은혜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과거나 현재나 영원히 동일하신 분으로 나타나신다. 그 속죄 제사는 신자의 선행의 제사, 찬미의 제사, 구제의 제사를 세우는 근거 가 된다 그의 속죄를 떠난 선행은 선이 아니라 악이며, 그의 피를 통과하지 않은 구제는 자기과시일 뿐이고 외식의 추한 열매이며 그의 피가 중심하지 않는 입술의 노래는 신세타령 내지 터지는 꿈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보좌에서 열납 되는 제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자는 모든 일마다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야한다. 이것이 신령과 진리 의 개인적 예배이다. 교회의 공 예배는 이것을 기초로 한다. 새해의 승리는 이 제사에 근거한다. 피를 통한 제사를 붙들고 사는 자는 형통한다.

히 10:35 양심의 담력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히10:35)

[해석] 담력은 신자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열린 하늘 문안의 보좌에 서 계신 인자를 볼 때 스데반의 순교의 담력이 생긴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 볼 때 성 령으로 그의 형상으로 변하는데서 일어나는 것이다.(고후3:18) 그래서 담력은 변화된 삶의 중요한 증거이다. 히브리서 이단은 율법주의로서 그 리스도와 그의 죽음의 효능을 불신하는 교묘한 가르침이었다. 천사, 모 세, 여호수아, 아브라함, 아론은 단지 그리스도의 그림자이었고 가나안 성전성막 제사 제도는 모두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주는 모형이다. 그림 자 위에 머물러 안주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서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실체이신 그리스도와 완성이신 그의 죽음의 공로를 힘입어 나가 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양심의 담대함을 갖는다.

히 10:19-25

1.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의 영원한 효력 을 믿는 신자는 외형적 생활보다 먼저 양심에 변화가 일어난다. 양심은 진정한 마음의 다른 표현이다. 거듭날 때 생긴 양심의 악을 깨닫고 그 리스도의 공로를 진실로 믿어 변화를 경험한 신자는 그 때부터 새 생활이 시작된다. 그 후 이 새로운 양심은 항상 새로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피 뿌 림이 필요하다. 구약에서 암송아지 잿물을 뿌려 부정한 모든 것을 정결하 게 한 것처럼, 그리고 속죄일에 짐승의 피를 뿌려 죄를 사하는 것처럼 신자의 양심은 계속 그 공로가 적용되어져야 한다. 이것은 이미 완성된 과거의 공로가 현실적으로 체험되어지는 것이지, 다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이 즉시 용서하시고 죄가 끊어지는 체험이 일어난다고 말한다.(요일1:9) 이 자백을 회개라고 말하 는데 그 속에는 죄에 대한 시인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죽음을 내 것으로 적용하는 믿음이 반드시 포함된다. 성령이 우리의 믿음의 자백 속에 적용하 시는 일을 하기에 우리는 선한 양심을 따라 “감사합니다” “친양합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목욕한 나는 발 씻는 일을 힘쓴다.

2. “짐짓 죄(25)”- 이것은 의도적 반복적 그리고 고의적인 죄를 가리 킨다. 주님은 성령 훼방죄라 했고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했다. 이 죄를 범한 자의 결과는 심각한 형벌과 저주이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이 죄를 범할 수가 없다. 이 말은 약해서 범하고 실수해서 범하는 것이지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지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일 그런 죄에 들어간다면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이 죄는 유대주의 이단적 교훈을 따 른 자를 겨냥한 것이다. 그리스도만을 믿고 그의 공로만을 의지하는 순수성을 상실한 자 곧, 교묘한 이단 교훈을 따른 자는 무서운 심판을 받는다 는 것이다. 오직 예수의 신앙에 머무는 것이 나의 의무이며 특권이다.

히 7:27 완전한 속죄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7:27)

[해석] 수천 년을 걸쳐 시행하던 레위의 제사제도는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 된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 제사의 그림자이다. 짐승제물이 예수님으 로, 짐승의 피가 예수의 피로, 반복되어야하는 불완전한 것이 단번에 드림으로 완성되었다. 한마디로 그 실체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이다. 이것은 구약은 짐승의 피로, 신약은 예수의 피로 속죄되는 가르침에 쐐기를 박는다. 오직 구약이나 신약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십자가의 속죄 제사를 믿을 때 구원받는 그 유일성(uniqueness)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그 효력은 영원하고 모든 것에 적용되고 다른 제사가 전혀 필요 없는 속죄제이다. 제사장의 죽음과 불완전한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히 살아계셔 제사의 효능을 항상 나타내시는 승천하신 주님에게만 우리의 눈을 고정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