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창세기

창 45:7 섭리의 신앙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창45:7)

설명- 두려워하는 형님들을 위로하는 요셉의 대답은 섭리를 믿는 신앙이 무엇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경영)은 창조와 섭리로 요약된다. 말씀으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그가 또한 세상을 친히 간섭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이것이 섭리의 신앙이다.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거래되는 것,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까지 하나님의 결재를 받아야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사람관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진행되는 것을 믿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사건을 보는 것이다. 요셉도 동일한 안목으로 철천지원수인 형님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팔아버리는 악행보다 하나님이 이를 선용하여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려고 미리 자기를 보내신 사건으로 본다. 이것이 맞는 해석이다. 원수를 포용하고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이 섭리는 신앙성장은 물론 그에게 진정한 위로의 원천이 된다. 이 신앙이 배워질 때 교회는 진정한 위로를 체험하게 된다.

창 39:3 복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3)

설명- 요셉 생애의 복은 어떤 것이었나? 물질, 명예, 권력이 그가 만난 복이지만 더 근원적 복이 있다. 이것은 임마누엘의 복이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시간과 장소와 상황은 어떠하든지 그에게 복이다. 형들에게 팔려가는 것도 복이고, 보디발 장군의 종이 되는 것도 복이고, 그가 감옥에 갇히는 것도 복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이 없는 그의 부모의 사랑, 총리의 자리는 모두 저주이다. 복의 모습을 띈 저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복은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있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기에 빈궁에나 풍부에도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가졌다고 선언했다. 범사의 복을 알고 누리며 응답하는 삶을 사는 자가 복있는 사람이다.

창 35:3 예배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 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창 35:3)

설명-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때 언제나 제단에 초점을 맞추신다. 제단이란 예배를 가리킨다. 예배하는 마음의 성소 위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거기서 말씀하시고 거기서 복을 주신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나 아벨의 제단처럼 야곱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법이 틀렸어도 복을 사모했으니 바로 예배했다면 은혜를 받았을 텐데 20여년간 하나님께 예배한 기록이 없고 브니엘에서 예배함으로 반짝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만 세겜에서의 디나 사건으로 드디어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 때 하나님의 손가락은 예배를 가리켰다. 20년 전에 서원한 것을 기억케 하여 벧엘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마침내 야곱은 응답하고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순간과 모든 장소가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를 하라고 명령받았다. 이것이 가장 복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창 41:38 영감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창 41:3)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고 지혜가 풍성하 시기에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실 수 있으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영감 받은 사람을 필요로 하셨다. 자신의 뜻을 이루실 능력의 통로, 지혜의 도구로 사용하여 사람으로 그 영광에 참여케 하시려는 깊으신 뜻이 있다. 요셉의 생애가 그 대표적인 경우 였다. 요셉이 당한 일연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영감있는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 모든 역사의 목표였음을 보인다. 보디발의 종으로, 감옥 죄수로 인생 밑바닥에 내 동댕이쳐진 요셉이 바로 앞에서 영감의 사람으로 드러난 것은 하나님이 역사 한 증거였다. 영감이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상태인데 성령이 지배하는 인격을 갖추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는 사람이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글인 것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는 인격이 될 때 하나님이 일하기에 아주 적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감의 사람이 되는 목표로 움직이자 !

창 50:26 복

“요셉이 일백 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50:26)

창세기는 창조로 시작하여 장례로 끝난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신실하게 적용되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시작 된 구원의 역사가 이삭과 야곱을 거쳐 요셉에 와서 분명하게 드러남으로 하나님의 특혜가 주어질만도 한데 브니엘 사건 후 야곱은 다리가 아픈 장애인으로 살다 죽었고 요셉 역시 청년시절 고생 때문인지 족장들 중 가장 나이가 적은 110세에 죽는다. 물론 그의 자손 3대를 보았지만 형제들보다 먼저 부름을 받았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세상에 속한 육신은 죽음으로 소멸되고 예수 안에서 새로 태어나기 위해 죽음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복, 하늘의 복, 원천의 복, 태의 복, 젖먹이의 복, 능력의 복이 샘 곁의 무성한 가지처럼 퍼져나가는 복을 가졌어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복으로 실현되기까지 그림자에 불과 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의 완성된 구원의 복은 세상과 상관없는 것이기에 옛 것은 반드시 지나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복이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순간 순간 자신을 기꺼이 드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