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출애굽기

출 40:34 여호와의 임재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 충만하매.”(출40:34)

[설명] 모세가 시내산에서 본 식양대로 성막을 완성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여 회막에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솔로몬의 성전이 완공되어 헌당할 때도 그 안에 동일한 영광이 나타났다. 여기 구름이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곧 하나님의 강림 혹은 현현의 모습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은 구름과 불기둥의 현상의 주체이신 하나님 성품의 표현이다. 제단 에서 시작하여 성막, 성전으로 나타난 하나님 임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 성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본다. 참 하나님이 참사람이 되어 우리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함께 사시는 그 분을 주목할 때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 곧,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란 이름을 가지셨다. 사람이 만든 건물에 영광이 충만했다면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영광이 얼마나 더 풍성하겠는가?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충만한 영광은 성령 충만으로 누려지도록 약속되었다.

출 38:1-20

(1) 8절- 성소와 지성소의 기구들인 언약궤, 향단, 진설병상, 등잔은 대부분 금을 사용했으나 성전뜰의 물두멍과 번제단과 거기 사용되는 도구들은 놋이 중심재료이다, 놋은 구리와 은의 합금인 청동으로서 우리 성경에는 구리 혹은 주석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사도 요한이 본 인자의 발이 빛난 주석같다(계1:15)고 한 것을 보아 불로 연단된 후 나타난 결과이기에 고난의 일정한 과정을 통해 빚어진 진실성을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2) 물두멍- 여기서 씻는 목적은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일할 때 성결을 위하여 제일 먼저 거쳐야 하는 곳이다. 그리스도로 씻음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고 또 성결 본위인 자만이 하나님을 끝까지 섬깅 수 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과하는 자만이 항상 쓰임 받는다. 거룩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3) 번제단- 생축 전체를 불에 태워드리는 의식처럼 신자는 반드시 번제인생을 살아야한다.(롬12:1-2) 그럴 때 우상으로 채워진 세상에 살지만 이 세대를 본 삼지 않고 날마다 변화되어 그리스도안의 모든 부요를 내 것으로 누릴 수 있다.

(4) 성막뜰: 성막 모두가 세마포로 둘러 있는 것처럼 성도는 옳은 행실인 의와 인과 신을 항상 추구해야한다.(계19:8)

출 38:29 독특한 향유

“거룩한 관유와 향품으로 정결한 향을 만들었으되 향을 만드는 법대로 하였더라.”(출38:29)

[설명] 성막과 그 모든 기구들을 만들 때 항상 하나님이 보이신 식양대로 하는 것이 강조되었다. 오직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으로만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준비된 사람들을 참여시킴으로 그 영광에 참여케 하시려는 목적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광없이도 영광가운데 계시는 분이시다. 여기 나타난 향단에 항상 피울 향 기름을 만들 때도 하나님이 친히 명하는대로 만들게 하셨고 그것을 맡으려고 같은 방법으로 만들때 누구든지 백성 중에서 제외된다.(출30:38)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광을 다른 것에게 뺏기지 않으심을 분명히 하셨다.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에 유향을 각기 동량으로 섞고 그 위에 소금을 치라고 하셨다. 이것은 거룩이 목적이 다.(출30:34-36) 복음 안에서 이 독특한 향은 오직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찬미와 헌신 그리고 봉사로 항상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산 제물을 가리킨다. 천상의 24장로들이 집중하는 기도와 찬미의 향이 항상 올라가야한다.(계5:6-8)

출 35:1-19

(1) 2절- 새 돌판을 받고 내려온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첫 번 전한 말씀이 안식일 계명과 성막 건립을 위한 계명이었다. 그 중 안식일 계명은 시내산에서 첫 돌판을 받고 십계명과 율법을 명령하고 마지막에 도장을 치듯이 한 말씀이다.(출23:12) 그리고 안식일을 중심해서 세절기와 안식년의 명령이 파생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첫 창조의 원리를 따라 마지막에 안식일 계명을 주신 것과 통한다. 새 이스라엘의 구원은 새 안식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 그만큼 안식일의 의미는 중요하다. 구속의 중심에 서있는 진리이다

(2) 전체-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었다. 스가랴선지자를 통한 네 병거이상의 마지막 결론은 (슥6:8) 북쪽에 나가자 내 영을 쉬게하리라“는 것이다. 내 영은 성령이시고 쉰다는 말은 안식이다. 성령의 안식이다. 이 안식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힘쓰면 이 안식 곧 에덴의 희락과 평강은 내 것이 된다.

(3) 이 안식은 성막을 만든 과정에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성막은 하나님과 만나는 교제 장소로서 이스라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성령으로 감동된 사람들이 성령이 보이신 설계도를 따라 만들며 성령으로 예배하게 하는 상징들로 꽉 차있다. 성령의 안식은 언제나 신자가 누리는 최고의 복이다.

출 33:24 낮추신 하나님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33:24)

[설명] 친구와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가 주의 영광 보기 를 간구할 때 등을 보이심으로 응답하셨다. 반석 위에 서있는 모세를 손으 로 덮고 지나실 때 등만 보인 것은 하나님의 넘치시는 긍휼이었다. 왜냐하 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면 죽기 때문이다.(20) 태양을 직접 볼 때 시력 이 상하듯이 크신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아신 주님 은 친히 모세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등만 보이셨다. 하나님의 인카네이숀 (성육신)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비어 죄인 모양으로 오신 것처럼 모세가 쉽게 보며 만지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친히 자신의 영광을 가리신 것이다. 그 등에 나타난 영광만이 모세에게 경험된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우리 구속은 그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자리로 나간다고 하니,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고전13:12) 그러기에 낮은 우리가 직접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리로 이끄시려고 하나님께서 친히 스스로 낮추신 것이다.(빌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