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사무엘상

삼상 7:9 응답되는 기도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삼상 7:9)

[설명] 미스바 부흥사건에 일어난 것 중 하나가 기도의 응답이다. 외식의 옷을 찢고 진실되이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준비되어있었다. 제사 중에 공격한 불레셋 군대를 기도로 물리친 사건이기 때문이다. 부흥의 불길은 기도의 쏘시게를 통해 계속 타오른다. 기도없이 자동적으로 제하는 일도 있지만 기도함으로서 하나님 응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다. 기도하기 전에 우리 쓸 것을 미리 아시는 주님은 기도함으로 받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심이고 하나님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배양함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근본적인 필요이신 그리스도와의 깊은 연합을 이루기 위함이다. 모든 필요의 배후에 반드시 그리스도가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삼상 17:47 구원의 근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 17:47)

[설명] 골리앗과의 한판 승부에 보여진 다윗의 확신은 분명했다. 구원이 하나님의 손에 놓였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이미 승리를 보장하셨음을 확신했다. 혈육을 의지하거나 사람을 신뢰하는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하신대로 무기나 숫자나 전략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실패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반드시 이긴다. 디윗은 바로 그 확신으로 골리앗을 이겼다. 신자의 대적인 세상과 육과 마귀는 이미 예수 안에서 멸한 사실을 믿고 나가야한다. 다윗 앞에 골리앗이 쓰러진 것처럼 예수 이름 앞에 모든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고 만다.

삼상 20:17 필레오의 사랑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함으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삼상 20:17)

[설명] 시기로 다윗을 죽이려는 미친 사울에게서 요나단과 같은 의리있는 사랑의 아들이 나왔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요나단의 뜨거운 사랑이 다윗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 역시 약조를 끝까지 지킨다. 요나단의 그 사랑은 혈연을 초월한 영연에서 나온 것이다.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한 우정 배후에는 아카페 사랑이 흐른다. 마치 그리스도의 조건없는 사랑을 생각게 한다.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던(롬5:8) 그 사랑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랑을 받은 신자는 이기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웃의 덕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선덕사의 길을 간다.(벧전2:9)

삼상 3:1-21

1. 개별적으로 부르시는 하나님(4,10) 엘리와 그의 아들을 행한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13) 선지자를 친히 세우셔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하시는 하나님(20) 말씀으로 나타나시는 여호와

2. 엘리의 죄, 아는 죄악(3) 하나님의 예물을 경시했기에 저주를 자청하는 죄악, 예배의 경멸로 사함 받지 못하는 죄악,

3. 말씀을 잘 받는 순종 자세 – 주여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한마디의 말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는 영권(19)

삼상 29:1-11

1. 열방에서 높아지신 하나님. 다윗의 소년 시절에 불레셋 사람 골리앗을 무찌른 영향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이스라엘 뿐 아니라 불레셋에도 계속되었다. 다윗이 만명을 죽인 것은 아기스와 방백도 아는 정보이다 그 영향으로 왕은 하나님에 대해 마음이 열리고 방백은 두려워했다.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 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계속되었다.

2. 이스르엘에 진 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불레셋 땅에 머무르던 다윗이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간섭하심이다. 아기스 왕과 방백들과의 반목은 다윗이 출전하여 동족인 이스라엘과의 싸움을 모면하게 된다. 다윗의 애매한 고난의 환경과 같은 나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