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열왕기상

왕상 22:1-14

1.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 물어보소서(5) 여호사밧과 아합은 사돈 간으로 친밀한 관계 발전했다. 하나님의 의를 중심한 연합이 아니고 인간적 타협으로 하나된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은 그 둘 사이를 가르셔야만 했다. 불의와 타협한 여호사밧은 목숨은 건져으나 큰 위험을 당한다. 그가 전쟁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의 자문을 요구한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휘황찬란한 모양으로 가장된 외식은 영안을 어둡게 하고 영적 귀를 먹게 하여 유혹의 소리를 선택하게 한다.

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12)- 아합의 수완은 탁월했다. 갈멜산의 대결 속에 보여진 850명의 전국의 바알 선지자들이 처단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이에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그룹을 이룰 정도로 조직적이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승리를 예언하나 거짓 영의 역사에 이끌린 것이다. 시드기야는 쇠뿔로 아람 왕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행동을 몸소 재현했지만 거짓이었다. 거짓 영의 역사로 거짓 이상, 거짓말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한 것이다. 기이한 형상이라 하여 모두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성령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 여 하나님의 백성을 어둡게 할 수 있다.

3.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14) 미가야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집중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그대로 전하는 사람이다. 여기에 어떤 가감이 용납되지 않는다. 이것이 선지자의 영권이다. 엘리야에게 드려진 세미한 소리처럼 미가야의 마음에 들려진 소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대로 실현되었다. 지금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왕상 21:19 겸비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함으 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왕상21:19)

[해석] 본래 겸비란 겸손한 마음 곧 가난한 마음(마5:3)을 가리킨다. 아합이 그런 자리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일시적으로 베옷을 입고 금식 하며 자리에 누워 풀어 죽은 것을 보면(20) 회개한 것처럼 보이나 참 회개에 이르지 못하였다. 성령의 은혜를 일시적으로 맛보고 회개하는 것처럼 보인 것뿐이다. 훗날 미가야의 참 예언을 무시하고 자기 탐욕의 맞추어 귀맛 좋도록 들리는 거짓 영의 속삭임에 넘어간 것을 보아 그 실상이 알려진다.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겸비라는 태도만 가져도 주목하시고 심판의 손을 돌이키실 정도로 좋아하신다. 겸손이 은혜의 그릇으로 은혜를 계속 받으며 받은 은혜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가장 큰 복은 겸손한 마음(humility)이다.

왕상 19:1-21

1.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4) 불과 소낙비를 끌어내린 혁혁한 역사를 이룬 엘리야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살기 찬 이세벨의 위협에 피신하여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의 영적 침체는 그리스 도인 생애에 항상 반복되는 일이다. 그릿 시내가로의 피신, 한 과부의 공궤로 기근을 모면한 것처럼 대 역사가 일어난 후에도 또 다른 갈등이 일어났다. 그 목표는 겸손한 마음을 배우게 하는데 있었다. 신자의 삶에 계속 일어나는 영적 갈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으로 신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하여 간다.(고후3:18)

2.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12)- 바람, 지진 그리고 불의 현상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다. 이것은 시내산에도 나타났고 성막과 성전 을 세울 때도 나타났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다. 그 현 상이 지난 후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이 찾아 오셨다. 그것은 내용이 있는 소리였다. 엘리야의 말년 사역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소리였다. 하나 님은 기록된 성경을 통해 때로는 바람, 지진 그리고 불처럼 나타나지만 자세히 성경을 해석하심으로 일하신다. 해석된 그 말씀은 현실의 자기 백 성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음식이며 치료약이다. 성경 읽을 때 마다 세미한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이 그 때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3.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명을 남기리니(18)” 엘리야의 불평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자주 일어난다. 나 혼자만 남았다고 소리치는 것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 열매이다. 낙심된 자의 상투적 용어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알지 못하는 거룩한 7천인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것으로만 일하신다.

왕상 18:41 큰 빗소리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 가 있나이다.” (왕상18:41)

[해석] 엘리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 전하는 “나비” 곧, 선지자이다. 도구는 주인의 쓰심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빛이 난다. 철저한 우상 숭배로 이스라엘 온 땅에 하늘의 우로를 중지하고 극심한 기근을 당하게 하는 심판의 메시지와 또다시 지면에 비를 내리는 기쁜 소식을 엘리야에 게 주어졌다. 그래서 갈멜산의 대결을 통해 아합을 만나 회개케 하려고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었다. 그 후 선지자는 아합에게 큰 소망 의 소식을 전하여 여호와에게로 돌이키려는 기회로 삼는다. 그 후 산 위에서 기도한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지금 소낙 비로서 응답하시기를 구했다. 약속대로 복된 장마비가 쏟아졌다. 약속은 기도를 통하여 현실화되기 때문에 엘리야는 기도에 힘썼다.

왕상 15:33-16:14

1. 바아사(34)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된 바아사는 하나님이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손이다. 그가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된 것은 여로보암의 죄에 대한 심판이다. 그러나 바아사 역시 여로보암의 죄를 벗어나질 못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형식은 모두 갖추었으나 내용이 바꾸어지지 않으면 더 큰 심판을 받는다. 죄인은 죽었으나 그 죄는 남아서 여전히 적군, 아군 가릴 것 없이 영향을 미친다. 정말 두려워 할 것은 보이는 승리보다 보이지 않는 죄이고 영혼까지 멸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시다.

2.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2)- 바아사의 쿠테타 성공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의 출신성분이 티끌 같았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여 진리의 길로 향하 는 기회를 주었으나 욕심에 사로잡혀 결국 그 길을 답습하고 심판을 받는다. 하루 아침의 성공은 하나님의 은혜도 되지만 하나님이 회개하여 바른 길로 들어서는 기회일 수 있다. 교만을 금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켜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고 겸손해야한다.

3. “그들의 헛된 것들로…”(13)- 심판받는 죄의 극점은 우상숭배로서 자신도 섬기고 백성으로도 섬기도록 강요한 죄악이다. 일계명의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다음 계명이 다 비뚤어진다. 반대로, 행위 계명에 생긴 문제는 그 뿌리와 기원이 하나님과의 계명에 놓인다. 오늘날 헛된 우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량주의, 쾌락주의 그리고 기술주의 곧 극단적 인본주 의이다. 이것을 이기는 길은 오직 주님이 가르치신대로 자아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것이다. 자기를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바울의 자취가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묘약이다. 그리스도의 진리만이 모든 우상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요일6:21)